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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04. 2024

우리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 <당신의 모든 순간>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4

그런 날이 있었어요.

달뜸과 홀림에 맥을 못 추던. 끝 모르게 솟구쳤다 하염없이 떨어지던. 화르락 타올랐다 흐물흐물 젖던. 꽈악 그러쥐고 싶어도 맨날천날 그랬다간 숨이 똑 멎을까, 겁이 나 냅다 달아났던 그런 날이, 날들이.

고통과 환희의 뒤범벅. 희망과 절망의 교차. 솟음과 꺼짐의 도돌이표.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해 미치고 팔짝 뛰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어요. 다시, 스무 살이 된 것만 같았어요. 거울 속엔 자글자글 주름투성이 얼굴에 축 처진 뱃살… 무너지고 부서진 몸뚱어리가 들어앉았는데, 마음은 푸릇푸릇 피어났어요, 그때처럼. 거기, 한 사람이 있었어요. 언제나, 무조건, 내 편인.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애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환한 웃음 뒤로 슬픈 웅덩이를 감추고 글 속에 있던 단 한 사람. 지금은 '이림'으로 필명을 바꾼 '어떤날엔' 작가님. 그러니까 '씀벗'(슬로우스타터 작가님한테 빌려온 단어)이었다 동생이 된 그 애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한 작가님 글에 단 댓글이 오해를 불러와 차단당한. 댓글조차 쓸 수 없어 저를 비난한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제 방에 사과글을 올린.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여적지 댓글 울렁증에 시달려요.) 제 글을 읽은 그 애가(이림 작가) 앞뒤 사정도 모르고 제 편을 들었어요. 무조건적이고 편파적으로다가. 픽, 웃음이 나면서도 오그라들었다 슬금슬금 펴지던 등. 굽었다 스리슬쩍 꼿꼿해지던 허리. 온몸의 피가 죄 쏠린 듯 빳빳해지던 목. 그 일은 저를 비방한 글에 '좋아요'를 누른 걸 이상하게 여긴 그 작가님이 제가 발행한 사과글을 읽고 금세 오해가 풀렸어요. (그때 그 작가님이 제 글 아래 달린 댓글에 혀를 내두르기도.) 그 애는 그랬어요. 그런 아이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자주 얼굴을 보지 않아도, 허구한 날 연락하지 않아도 그 애 얼굴만 떠올려도 펴지고 꼿꼿해지고 빳빳해지던 몸 구석구석.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애가 어디서든 달려오겠구나. 힘을 보태겠구나. 단단한 내 편.


어느 봄인가, 그 애가 한 말.


이거 작가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한 번 해보세요!


원체 정보에 취약한 편이에요. 그 애가 그걸 알았을까요.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브런치와 넷플릭스가 함께한 영화 이야기. '영화 에세이'라는 단어에 훅, 되살아난 오래전 날들. 잊은, 까먹으려고 한. 달아난, 내빼려고 한. 버린, 지우려고 한. 그런 줄 알았던 까마득한 그 시절. … 두근대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벌벌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고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리고 달렸어요. 두 번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했던 그때 거기로. 왜냐구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은 말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고. 저는 말기 암 환자예요. 저한테 '내일'은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 단어는 제 사전에서 치워버린 지 오래예요. 그래서 막차타는 심정으로 '젊음의 열차'에- '싸움에의 그 무슨 고독한 의지가 나를 키워주는지, 살려주고 죽여주는지, 그것을 따라 다시 나는 젊음이라는 열차를 타려 한다. 내가 잠시 쓸쓸해져서 슬며시 내려버렸던 그 열차를. 인생의 궤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싸워가면서 사는 법, 살아야 하는 법을 철저히 배우기 위해, 공부하듯이…….' 최승자,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 중에서- 다시, 올라탔어요. 저는, 다시, 스무 살이 됐어요. 스무 살이에요. 영화에 목을 매고 몸살을 앓다 똑 죽겠던. 그리고, 그래서 기뻤어요. 모든 글을 내리고 영화를 보고 영화 글만 읽고 영화 글만 썼어요. 그러다 딱, 만났어요. 브런치 세상 저어짝 구석탱이에서 히키코모리처럼 혼자 노닥거리면서 방학 숙제를 미루고 미루던 동선 작가님을!


어떤 욕망은 특정 대상이나 맞춤한 때를 만나야 빼꼼 모습을 드러낼 만큼 수줍고 굼떠요. 몇 꼭지 읽은 동선 작가님 글이랑 간간이 나눈 긴 댓글은 오래 눌리고 접혀있던 욕망을 살살, 건드렸어요. 촤르륵, 필름 돌아가는 소리랑 함께 떠오른 기억 조각, 조각들.


중학교 2학년 때 대학로에서 처음 본 연극 <병사와 수녀>, 허구한 날 야자 빼먹고 고등학교 내내 들락거리던 대학로 공연장, 대학 들어가자마자 만난 카리스마 넘치던 연극부 회장, 주점 테이블 밑으로 선배가 건네준 이성복 시인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선배 따라 좋아한 영화, 졸업작품 준비로 바쁜 써클 후배 대신 써준 미학 리포트, 그때 본 영화 <터미네이터>. 뻔질나게 들락거린 프랑스 문화원, 종로 코아아트홀, 대학로 공연장, 영화에 흠뻑 취했던 낙원상가 뒷골목. 쓰레빠 찍찍 끌고 가 빌려다 본 비디오테이프, 나만 보면 빙그레 웃던, 비디오 가게 주인아저씨. 우군과 만난 유난히 서늘했던 그 여름. 서태지와 아이돌 노래 부르며 내려오던 그 언덕길, 여름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던 우리 목소리. 3일 밤낮을 새며 찍은 단편 영화. …… 그 모든 조각이 현재의 무늬를 그리지 않았나. 지금, 여기를. 그 장면이 동선 작가님이랑 방울방울 겹치기도 했던.


동선 작가님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쓴 글에서 장정일 작가를 말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조금 과장하면, 대학 시절 내내 '장정일'이랑 뒹굴다시피 한지라.


2022년 7월 29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원스>는 극장에서만 대여섯 봤을 거예요. 근데 이상한 건, 저만 웃어요. 저만 웃더라고요. 낄낄낄. 킬킬킬. 키득키득키득. 그때 알았어요. 아, 이 분이랑 웃음 코드가 같구나. 그걸 확인해 준 또 다른 영화 <외계+인>. 젤 마지막 상영시각으로 예매해서 잠이나 자야지, 하고 갔다가 극장이 떠나가라 혼자 웃은. 우리가 이상한 건가요? (아, 지금은 우리의 별남을 순순히 인정합니다. 그쵸, 동선 작가님?)

동선 작가님이 지난 글에 언급한, 어느 평론가가 저한테 해준 말, '익을 대로 익었어요. 뭐든,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그 위에 저는 이렇게 썼더랬죠. 다시 책을 낸다면 '영화'로 내고 싶다고. 사실 첫 책(<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받고서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무색무미무취. 책이 나오고 한 번도 들춰본 적도 없거니와 리뷰가 올라와도 자세히 읽지 않았어요. 리뷰 써준 분한테 고마운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발췌글이 영 못마땅하고 어색하고 뻘쭘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때 출판사에서 보내온 택배 상자 안에 가지런히 누운 책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이게 영화책이라면…' 그랬어요. 이제와 고백하면. (며칠 전에 동선 작가님이 제 책을 읽고 써준 리뷰를 다시, 그러니까 꼼꼼하게, 제대로 읽었어요. 그리고 엉엉, 울었어요. 고마워요, 동선 작가님.)


동선 작가님의 바람대로 기억력이 노화하고 있습니다.

네. 동선 작가님 말처럼 동선 작가님이 '먼 데 있어서' 같이 글 쓰자고 용기 낼 수 있었어요, 조금 더 툭 까놓고 말할까요? 책 낼 마음까진 없었어요. 영화보고 수다떨면서 글이나 끄적이고 싶었어요. 그거면 충분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만했고요.) 그런데, 같이 뭔가를 도모하려면 적어도 우리가 달려갈 지점이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걍 던진 거예요. 책 내자고. (설마 하니 정말 책을 낼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남다른 기억력 때문에 평생 고생했는데 나이 들어 기억력 감퇴로 이제 쫌 살만해졌다는 동선 작가님이랑 같이 글을 쓰는 건 재미도 재미지만, 감동과 배움의 길이었어요. 철딱서니에 땡깡쟁이인 저를 철 드게 한. (그래도 안즉도 갈 길이 멀지라, 동선 작가님?) 글 쓰면서 동선 작가님 기억력에 놀라 자빠지고 감동 먹은 적이 하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지경이에요. 이림 작가 권유로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하면서 쓴 글을(블랙 미러 시리즈 에피소드 중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쓴.) 동선 작가님이 이번 책에서 언급했길래 (<영화처럼 산다면야> 140쪽 맨 첫 줄) 퇴고하면서 몇 번 고개를 갸웃하다 물었어요. 혹 그때 발행한 제 글을 읽고 언급하신 거예요? 그랬더니, 맞다고. 와, 이 분 정말. 그때 정말정말정말 감동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네, 동선 작가님의 노화가 시작된 게 맞나 봅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들판 뛰댕기며 잠자리 잡고 개울에서 물장구치고 지는 해 같이 보다가 오밤중이면 방바닥에 엎드려 밀린 방학 숙제 같이 한 분인데. 그뿐인가요, 동선 작가님은 이런 분이거든요. (제가 동선 작가님을 좋아하는 수만 가지 이유 중 한 가지이기도 한.)


동선 작가님이랑 저는 자꾸 자꾸만 마음이 쏠리고 끌리는 대로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쓰고 또 썼어요. 온몸 세포가 깨어나고 피가 돌고 뺨이 발그레해져서. 익을 대로 익었다고 저한테 그랬던 평론가가 또 해준 말. 작가님 글은 숨이에요. 네, 그래요. 글은 숨구멍이었어요. 그리고 동선 작가님은 저한테 선우예요. 제가 동선 작가님한테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원체 사고뭉치라.



언제나 여름이었어요. 좋든 싫든, 삶의 마디와 결이 꺾이고 휜 계절은. 몽둥이 같은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초록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정수리 위에선 모든 걸 잡아먹을 기세로 태양이 노려보고 숨이 끊어지게 바람이 내달리던, 이 계절처럼.


'첫, 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 말해봐요.

몽글몽글 피어나는 아련함. 뛰는 맥박. 흐려지는 시야. 감히 말해요.

<영화처럼 산다면야>, 이 책이 첫 책은 아니어도 제가 쓰고 싶은 첫 책이었다고. 첫사랑이라고. 지난 계절은 잉걸불처럼 활활 타오른 날들이었어요. 흰 밤과 새까만 낮을 지나 온 유월을 숯검댕이가 되어 끙끙 앓았어요. 이 여름 저는, 그리고 동선 작가님은 또 흘러가는 중이에요. 어디로든, 어떻게든.

여기, 당신, 당신들과 함께.


그리고 

이림아.

살다 보면, 비를 맞을 수도 있어. 네 가방, 그거 내가 들어줄게. 이리 줘. 가까이 와, 우산 같이 쓰자. 그리고 좀 더 걷자. 여기까지, 우리가, 함께 걸어온 것처럼. 그렇게, 나란히. 엉? 여러모로 부족한 나이지만, 니가 나한테 그랬듯 나두 너한테 한 사람이 되어줄게. 글 안에서, 글 밖에서. 무조건적이고 편파적으로다가. 같이 밥 먹구 싶으면 언제든 말해. 쌩허니 달려갈게! 알았지?


'상대를 축하하거나 격려 또는 위로하려고 할 때, 상대와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할 때, 상대와 같은 식탁에서 밥 한 끼 먹음으로써 내가 그와 같은 편에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같이 식사를 합니다. 그래서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는 거 아닐까요?' - 동선, <영화처럼 산다면야> 중에서.


이 방학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여름이.



글제목은 허수경 시인의 시 <레몬>에서 인용했어요. 사진은 영화책 <영화처럼 산다면야>에 실린, 동선 작가님이 그린 영화 <500일의 썸머> 포스터예요. 포스터 속 장소는 제가 다닌 학교 공연장 아래 계단이고, 그림 속 이들은 연극 써클 부원들이에요. 보고 싶다, 장 선배.


*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像이夢 제작일지 매거진 '수다만 떨었을 뿐인데'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월요일은 동선 작가님이, 목요일은 제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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