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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7. 2024

11월의 편지

시(詩) <詩 혹은 길 닦기>, 최승자

한계령엘 갔어요.

길은 많아요. 뻥뻥 뚫린 고속도로부터 허름허름 옛길까지. 몇 해 전 이맘때에도 산을 넘었어요. 넘고 넘다 홀린 듯 젖은 흙길을 달려 어느 절간엘 갔어요. 우산도  없이 자분자분, 가을비 내리는 경내에 들어서기 전부터 희고 길따란 꼬리로 귓불을 핥는 목탁소리 사이로 피어오른 향내 따라 대웅전 염불 소리 맡으며 계단을 올라섰어요. 열린 문틈으로 꿇어앉은 검은 그림자 몇이, 슬몃. 49제를… 올리나. 엄마 품에 안겼다 몸을 비틀며 빼꼼 밖을 내다보던 대여섯 살 아이. 그 까맣던 눈망울 흩트리던 젖은 풍경소리가 뎅그렁뎅그러엉. 둥그런 울림막 아래로 공양간이랑 대웅전을 오가는 어지러운 발걸음. 그 자욱 옆으로 나란한 낙숫물. 똑똑, 또옥. 절간 마당 자욱한 음식 냄새. 잔칫날처럼.


며칠째 잠도 입맛도 달아나게 한 생각에 어디든 가야겠다 싶어 무작정 나섰어요. 어디 갈까. 문득, 한계령이 보고 싶었어요. 담배 연기 같기도, 사연 많은 혼백 같기도 한 오르막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속이 뻥 뚫릴 것도 같아서. 쭉쭉 뻗은 길 마다하고 부러 옛길 따라 구불구불, 꼬부랑꼬부랑… 깃발처럼 화악 다가온 흰구름. 보초병처럼 두툼한 파카를 껴입고 뻘건 봉을 연신 흔들어대는 주차요원들 앞으로 시위대처럼 꾸역꾸역 몰려드는 차들. 그 뒤로 어깨를 나란히 한 절벽이랑 울긋불긋 상기된 봉우리들. 더 멀리로 아스라한 산그리메. 그리고 바람. 그 펄럭이는 함성. 그때처럼.


당신이 꼭 보라던 영화 <와일드 로봇>는 역시나, 좋았어요. 영화를 보고는 '최고의 생존전략은 친절함이다'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단 당신 말을 들으며 우리가 함께 좋아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생각났어요. 다정함을 말하던. 그래서인지 영화 <와일드 로봇>을 한 번 더 본 날은 의심과 물음으로 뜬 밤이었어요. 친절과 다정, 그리고 당신이 즐겨 말하던 예의, 그 시원(始原)은 어딜까. 혹, 그 모두는 한 어머니 자궁에서 나고 자란 한 핏줄은 아닐까. 시뻘겋고 끈적끈적한 탯줄로 이어진.


'요즘 저는… 편파적이고 싶어요. 어떤 무리엔 무조건적으로 편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볼 수 없는 이들의 눈이 되어주고 만질 수 없는 이들이 손이 되어주고…. 나한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가는 몰라도, 자꾸만 기울어요. 한쪽으로 쏟아지는 마음.' (이연, <영화처럼 산다면야> 중에서)


작년 여름엔 미국에서 오래 살다 들어온 대학 후배가 실버타운으로 보금자릴 옮겨 간 엄마 집을 정리하다 오래전 써클에서 올린 공연 팸플릿을 발견했다며 한 부를 줬어요.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팸플릿을 받아 들고는 폴짝폴짝 뛰었어요. 그 팸플릿 맨 뒷장엔 동기 녀석이 쓴 기획의 변이 실려있었어요. 지금은 시(詩)를 쓰기도 한다는 그 애가 오래전에 쓴 글을 읽던 그 밤엔 좀 울컥하기도 했어요.


'연극은 전쟁이다.

난 항상 패자의 편이고 이번에도 승자가 되리란 생각은 갖지 않았다.

(…) 패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연극을 할 수 있는 건 더 큰 사랑을 위해서이다. 오직 그 이유뿐이다.

이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 가을, 그 동기 녀석을 다시, 만났어요. 30여 년 만에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언덕을 올라오던 동기 녀석이 어색하긴커녕 훌쩍 반가웠던 건 우리가 여전히 패자의 편이고 그쪽으로 쏟아지고 기우는 마음이어서 그랬을까요. 어느 시인은 노래했어요. '여러 넘버를 새겨준 도시를 더는 알고 싶지 않다'며 '웃어주고 증발하고 은퇴'하겠다고, 더는 '당신의 마음'도, '당신의 처절'도 알고 싶지 않다고. 또, 어느 시인은 노래했죠.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을. '사람들이 오해하고 심하게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감각하지 않으면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는'데 '어떻게 다들 이러고 사냐'고, 그게 '후방에라도 있'냐고, 따지듯 물으며. 어느 소설가는 썼어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고.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해보니, 저도 그랬더라고요. 맨날 내빼고 숨고 도망쳤다고… 숫기 없음을, 늦됨을 변명처럼 둘러댔지만 실은 문을 열어본 적도, 문 안으로 들어선 적도 없었어요. 그래놓고는 뻔뻔하게 패배한 척. 회의에 쩔은 척 굴었어요. 글을 쓴 적도 사랑한 적도 문을 연 적도 없으면서, 나불나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그런데요, 수십, 수백 번을 곱씹고 곱씹어도 온통 비극인 제가 무서움 뚫고 여적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사랑이더라고요. 잘은 몰라도그런 것 같아요. 그거 말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를 일어서고 걷고 뛰고 흥얼거리고 흐느적거리게 하고 마침내 예까지 흘러들게 한 건 그게 다였고 그뿐이고. 두 눈 질끈 감고 수술 베드에 누울 수 있었던 것도, 뼈가 녹는다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가면서도 콧노랠 흥얼거릴 수 있었던 것도, 마디마디 갈라진 손가락으로 종일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었던 것도, 새끼발톱이 빠져가면서도 걷고 또 걸을 수 있었던 것도, 꼴랑 한 글자 고치겠다고 자다 말고 발딱발딱 일어나 앉을 수 있었던 것도, 번번이 돌아선 등을 보면서도 다시, 사랑으로 달겨들 수 있었던 것도. 저는요, 여지껏 그랬듯 조금 더 매달려 보려고요. 끈기로운 어리석음으로, 이렇게나, 죽고 못 사는 사랑에, 달랑달랑. 그거 말곤 아는 것도 없고 달리 수  있는 것도 없는 똥덩어리라.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한 몸짓이고 거스름이고 어거지고 못됨이고 삐딱함이고 쓸모없음인 떠돌이, 부랑자. 망명자.


작년 겨울 작고한 서경식 교수는 어느 책에선가 '노스탤지어는 피억압자에게 저항의 무기'라고 한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미셸 클레이피(Michel Khleifi) 얘길 꺼내더니 그래요. 노스텔지어에는 달콤함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괴로움도 있는데 툭하면 추억에 잠기는 자신은 '돌아선 인간'이라 '과거의 기억을 무기 삼아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늘어놓는 인간을, 거짓을 거짓인 줄 알면서도 환영하는 이들한테 저항하고' 싶다고. 돌아봄, 돌아섦이 저항이 될 수 있단 말에 저는 떨렸어요. 부들거리는 가슴팍 위로 그가 떨군 루쉰의 문장. 화끈거리고 따끔한.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고향> 중에서)


이어지는 그의 말은, 그러니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걸을 수밖에 없다. 두목은 제 피의 성분이, 제 세포 하나하나가 사랑이라는 걸 진즉에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같이 가자고, 더 늦기 전에 걸어가 보자고, 손을 내밀었는지도. 차마 그 손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 슬픔의 강가에 서서 검푸른 물빛만 멀거니 보고 있었어요. 안 되는 이유를 촘촘히 짜내며. 무섭지 않았다면, 달아나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그런데요,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말기 암 환자잖아요. 저한테 '나중'은, '내일'은 없어요. '지금'과 '여기'만 있을 뿐. 그래서 당신과 모험을 떠나던 그때 그 여름처럼 일어나 발짝을 떼어보려구여. 강기슭에 닿기도 전에 좌초된대도 우리가 떠났던 그 여름처럼 혼자는 아니니. 곁에서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줄 두목이 있어 다는 아니어도 얼마쯤은 외로움도, 두려움도 가셨거든요.


지금 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지금 당장 그걸 알 방법은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지금 여기선 우리가 가닿을 강기슭이 보이지도 않거니와 거기가 어디쯤이라고 손가락으로 짚을 수도 없고요. 길은 다 건너간 뒤에야 보일 거예요. 우리가 여름 내 걸어온 길이 지금에서야 훤히 보이듯. 저는…… 가볼래요. 어떤 계획도, 어떤 목적도 없이 당신이랑 예까지 온 것처럼. 손을 잡지도 달아날 낌새도 없이 슬픔의 강가에 서서 바람만 맞고 서 있던 저한테 두목이 그랬거든요. 어떤 몸짓도 어떤 노래도 아니어도 괜찮아. 우리끼리, 꼼지락꼼지락, 그래도 돼. 네, 맞아요. 개울에서 물장구 치구 들판에서 뛰댕기고 노을 보다 방바닥에 엎디어 숙제하던 그때 그 여름, 우리가 함께 보낸 그 방학처럼. 꿈틀꿈틀, 그렇게.


영화 <와일드 로봇>을 한 번 더 본 날, 마음에 들어온 대사가 있어요.  


'어떨 땐 생존 본능을 넘어서야 해.'


당신이 우리 책에서 최고의 글이라며, 마치 고풍스런 춤을 보는 듯하다던 김진해 교수의 추천사, '어떻게든, 넘어가겠죠'. 어쩌면 저는 지금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시간도 공간도 아닌, 저를. 저 자신을. 우리의 펠레가 그런 것처럼. 그리고 또, 저는 넘어가고 싶어요. 어느 시인이 알고 싶지 않다던 그 '도시'와, '당신 마음'과, '당신 처절'을. 어느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인생에서 후회할 건 사랑밖에 없다니, 중단 없는, 사랑으로. 몇 날 며칠 하염없이 겹고 겹고 또 겨웠던 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한계령을 넘던 날, 오색약수 근처 식당에서 곤드레솥밥을 먹었어요. 밥만 먹어도 어찌나 맛나던지 한 그릇 뚝딱, 비웠어요. 밥을 다 먹고 슬렁슬렁, 식당 근처를 걷다 작은 텃밭에 핀 괭이밥을 봤어요. 어느 결에 날아와 빈 화분에 둥지 튼 우리 집 괭이밥하곤 딴판으로 바람이랑 볕에 흠뻑 취해 친구들 틈에서 노오랗게 웃는. 몇 발짝 떨어져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 텃밭엔 흰 고추꽃이랑 보랏빛 가지꽃, 노오란 호박꽃도 있었어요. 살리고, 살리고, 살리는, 빛으로.


우리가 내 삶의 목격자이자 증언자가 될 수 없다면, 서로의 목격자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서로의 삶을 증언해 줄 수는. 저녁 밥상에 오른 고등어 한 토막, 그 살을 발라주던 젓가락질을. 오물거리는 입술과 혓바닥과 이빨 틈새에 낀 비릿한 한 생(生)의 끝자락을. 저녁놀로 붉어진 두 뺨과 그 위에 그어진 빈 한숨을. 퍼어런 힘줄 따라 구르는 땀내음과 한낮 뙤약볕 폭정을. 들썩거리는 이불에 박제된 간지러운 신음과 살갗을 뚫은 아찔한 비행(批行).  


요즘 저는 자주 속이 울렁거려요. 가만 앉아만 있어도 멀미가 나요.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이상하댔더니 두목이 마술적 사실주의래요. 마술적 사실주의. 맞아. 걸어가 보자. 흐느적흐느적, 휘적휘적, 사브작사브작, 폴짝폴짝, 겅중겅중. 차근차근 천천히.


시는 뭘까요.

시를 짓는 그 마음은. 그리고 사랑은.

혹… 당신은 알까요. 아실까요.


다시, 바람이 불어와요.

그때 그 여름처럼.


'이것이 나의 투쟁이다.

천만 줄기 뿌리를 뻗어, 저 멀리 인생 밖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저 멀리, 세상 밖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



詩 혹은 길 닦기

- 최승자


그래, 나는 용감하게,

또 꺾일지도 모를 그런 생각에 도달한다.

詩는 그나마 길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내가 닦아나가야 할 길이다,

아니 길 닦기이다.

내가 닦아나가 다른 길들과

만나야 할 길 닦기이다.


길을 만들며,

길의 흔적을 남기며,

이 길이 다른 누구의 길과 만나길 바라며,

이 길이 너무나 멀리

혼자 나가는 길이 아니길 바라며,

누군가 섭섭지 않을 만큼만

가까이 따라와주길 바라며.


글 제목은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시(詩), <11월의 편지> 제목에서 인용했어요. 그림은 그녀가 그린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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