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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15. 2024

니가 보여, 내 냄새를 맡아!

시(詩) <지금 오는 이 이별은>, 박규리

시월, 하고도 중순이야, 재희야.

오늘은 날이 꾸물거리나 했더니, 한두 방울 먼지처럼 빗방울이 흩어져. 차라리 왁, 쏟아지기라도 하면 그때처럼 비 핑계 삼아 춤이라도 추련만. 울똥말똥, 뾰루퉁헌 낯으로 내려다보기만.


지난 밤, 어떤 이가 물었어. 요즘 어떻게 지내요? 뭐 하면서? 가만, 생각했어. 기억 덤불 더듬거리며. 뭘 하며 지냈더라. 곱씹고 헤집어도 딱히 잡히는 게 없어서 좀 놀랐어. …. 영화 봐요? 아니. 책 읽어요? 아니. 음, 그럼 사람은 만나요? 딱히. 근데, 바빠. 왜요? 어? 나는 왜, 뭐 하느라 바빴을까. 영화를 보지도, 책을 읽지도, 딱히 누굴 만나는 것도 아닌데. 아, 그래. 가을볕! 기우는 계절 따라 덩달아 기운 햇살 각. 낮은 포복으로 볕이 기들어오기 시작하면 나는 고만 정신이 혼미해져, 재희야. 한 떨기 해바라기가 되어 화분을 요리조리 옮겨가며 볕의 일거수일투족을 죄 훔치고 박제할 요량으로 핸드폰을 꼬옥 그러쥐고 그 뒤꽁무니를 쫄쫄, 따라댕기믄서. 책상에 앉았다, 소파에 앉았다, 벌떡 일어나 베란다 앞에 섰다… 꼭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쩔쩔매. 그러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에 깜짝 놀라. 그게 끼니를 거를 일이냐구? 그러게나 말이다.


벌려놓은 일을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며칠 전부터는 책을 잡고 읽기 시작했어.

욕망과 상상과 환상과 사랑과 환멸이 한 덩이로 뒹구는, 가을볕보다 더 환장할. 결핍이 낳은 욕망, 그 욕망에 불어넣은 상상, 한껏 부푼 상상이 조각한 사랑이라는 환상. 나, 뿅 갔잖아. 그러고 말았어, 재희야. 그 뒤에 찾아온 환멸에 꼴까닥, 나자빠지고. 다시, 잿더미 위에 피어난 욕망 그리고 상상. 다시 조각한 사랑, 또 다시 환멸. 끝없는 되돌이표가 빚은 사랑 조각, 조작들. 재희야, 나는 그제야 알았어. 사랑은 내가 사랑한 그이가 아니라 내 상상이 빚은 조각품이란 걸. 하여, 그 종착역이 환멸로 달린다는 걸. 여지껏 내 사랑이 왜 환멸 진흙탕에서 다시, 일어나고 일어서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내 사랑극이 왜 맨날 텅 빈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노드라마였는지. 사랑 끝자리가 왜 번번이 사랑으로 달겨드는 출발선이었는지. 환멸의 종소리가 왜 순전한 안심과 중단 없는 작정의 신호탄이었는지.


난 가끔 궁금했어, 재희야.

날 사랑한다던 이들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 내가 사랑한 이들은 정말 그가 맞나. 우리는 모두 '사이', 그 틈새에 빛처럼, 바람처럼 들었다 사라지는 무언갈 붙들고 늘어진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는, 나란 존재는 반사된 무엇은 아니었을까. 그의 눈동자에 누운, 그의 마음가에 박음질된, 그의 기억에 날아와 박힌, 그의 영혼에 엎어진. 빛이 없으면 사라지고 마는. 너울너울.


그날, 물었어.

지난날 비겁함, 그 오랜 부끄러움이 지금 글을 낳게 했냐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재희, 넌 알지? 겁쟁이에 도망꾼인 나한테 그런 투사적인 정의감이나 전사적인 전투력이 있을 리 없단 거. 눈곱만큼도. 그럼 왜애? 갑갑했고 참담했고 울화통이 터졌어. 우왁, 소리라도 내지르지 않으면 미쳐버리게. 그래… 그랬던 것도 같어. 누굴 살리겠다는 의로움?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포부? 너도 알다시피, 나 그렇게 이타적이지도 않거니와 거창하고 치밀하지도 않아.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 이젠 세상 사람 다 알지 않나. 내가 똥덩어리라는 거. 살고 싶어서, 나 살자고, 그래서 그랬지 싶어. 숨 쉬려고, 미치지 않으려고. 손 내밀고 싶었고, 눈 맞추고 싶었고, 목소릴 내고 싶었고, 마음 두르고 싶었어. 여기, 이렇게, 내가, 있다고. 할퀴고 뜯겨 피투성이된 당신 내가, 다, 봤다고. 알어, 나두. 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근데 말이야, 재희야. 내가 대단하고 잘난 사람 아닌 줄 다 아는데, 그런데도, 그러고 싶더라. 왜애? 몰라, 모르겠어. 정말정말로, 모르겠어. 재희야. 내가 얼마나 새가슴인지, 넌 알잖어. 그런 내가 색을 가져야 한다면, 꼭 그래야만 하면, 나한텐 어떤 색이 어울릴까. 나는 어떤 색으로 물들어야 할까. 재희, 넌 혹시 아니?


얼마 전엔 먼 데 사는 이가 소식을 전해왔어.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겨울나기요? 네, 밖에서부터. 아, 겨울을 나려면 밖에서부터 안으로 준비해야 하는구나. 그이 말에 나는 배웠어. 어디서 들었더라. 외로움은 홀로 방에 있는 거라는 말. 마주하는 얼굴도 없이.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도 마주할 얼굴이 없는 게 외로움이라면 같고도 다른 고독은 홀로 얼굴이랑 있는 거래. 고독이 있는 방엔 거울이 있어서 마주 볼 얼굴이, 내 얼굴이 있다나. 그래서 고독이랑 오래 있으면 이 세상 떠날 때 그리 공허하지 않을 거래. 그렇구나. 또 하나, 배웠어. 고독엔 거울이 있구나. 외로움엔 없는 얼굴이.


재희야.

우리가 맨날 주고받는 인사말이야. 안녕! 안녀어어어엉!

흔하디 흔한 그 단어, 그 인사가 온 천지 물드는 시월이면 나는 왜 이다지 사무치니. 으응?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카파르 족이 나누는 인사가 나와. '신선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그 인사, 들어볼래? 카파르 족은 말이야, 내 몸을 상대 몸에 딱 붙이고 "자네가 보이네!" 그렇게 인사한대. 그 인사를 인디언들은 "내 냄새를 맡게나!"로 바꾸었고. 참, 좋지? 며칠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려 그날따라 더, 더 샛노란 조각달을 올려다보는데, 문득 인사가 고픈 거야. 너무너무. 몸과 몸을 착 붙이고 한다는 그 카파르 족 인사가. 그 안녕이.


'사람이 아무리 밤마다 달을 쳐다본들 그 달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지긋이 그를 매혹시키지 않는다면 혹은 달이 그의 살결을 어루만지고, 그를 홀리고, 길흉 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가 달 때문에 심란해질 까닭은 없다. 처음으로 달을 보았을 때, 그 운행하는 광체라든가, 거기 부수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요괴적 존재에 관한 무슨 표상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초에는 달의 동세적(動勢的)인 힘이 그의 몸속으로 밀려옴에 따라 달의 자극상(刺戟像)만이 남게 되지만, 차츰 작용해 오는 달에 대한 인격적 이미지가 구체화된다. 말하자면 이러한 과정을 겪는 뒤에라야 밤마다 그의 품에 안겨드는 그 미지의 것에 관한 회상이 번쩍이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작용의 주동자 또는 그 부대자로서의 달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저 미지의 것이 하나의 대상으로 변화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그렇게 해서 본디 경험의 대상이기를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용납되기만을 요구하던 하나의 '너'가 하나의 '그'또는 '그녀'로 변모하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얼마 전엔 침대랑 책장 위치를 바꿨어. 그랬더니 거울 달 자리가 없는 거야. 대신 침대에 누우면 창 밖으로 하늘이, 달이 보여. 노옵다랗게 솟은 나무도. 이번 겨울은 이렇게 나자. 거울이 없어 외롭긴 해도 넘실넘실, 와그르르, 들이닥치는 푸른 하늘, 노오란 달빛, 키다리 나무에 흠뻑 취하고 까무룩 기대어.


재희야.

나는 '나고' 있어. 먼 데 사는 그이가 겨울나기를 준비하듯 이제야 마주한 얼굴로 '인생을 고쳐' 쓰면서 계절을 나고 기억을 나고 사랑을 나고 환멸을 나고. 아픔을 나고 삶을 나고 죽음을 나고… '나'를 나고. 팔랑팔랑, 한 마리 흰나비처럼 부드럽고 투명하게. 바스라질듯바스라질듯, 단.단.하.게.


니가 보여! 내 냄새를 맡아!

재희야.



요…

지금 오는 이 이별은  

- 박규리


이 나이에 오는 사랑은

다 커서 오는 사랑이다

뱃속을 꾸르럭거리다

목울대도 넘지 못하고

목마르게 내려앉는 사랑이다


이 나이에 오는 이별은

멀찍이 서서

건너지도 못하고

되돌이키지도 못하고

가는 한숨 속에 해소처럼 끊어지는 이별이다


지금

오는

이 이별은

다 져서 질 수도 없는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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