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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19. 2024

어떤 얼굴도 없이

시(詩) 소등(消燈), 에드워드 토머스

지난여름, 여주에 공간을 마련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주제로 오랜 시간 가꾸고 꾸민 이가 드디어 문을 연다길래 다녀왔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옴팡지게 내렸어요. 사람들 불러 선 뵈는 날 하필이면.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을까……. 먼 발치에서나마 땀냄새 밴 그 시간을 함께해서 그런가, 빗길을 달려가는 제 마음도 오그라들었더랬어요. 휙휙, 창문에 달라붙었다 미끄러지고 흩어지는 빗줄기. 흰 구름 내려앉은 머언 산그리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이랑은 장단이랑 어린 왕자로 맺어지고 가까와진 사이예요. 뭉근하고 오래. 저어기, 보이는 어린 왕자. 그이 닮은 화안한. 한껏 축하해 주고 나서려는데, 그이가 작은 화분을 안겨주며 우산을 받쳐들고 따라나섰어요. 애기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는. 아, 이뻐라! 그 화분엔 단풍나무 닮은 작디작은 어린 왕자도, 살포시. 그 단풍나무를 집에 있는 빈 화분에 옮겨 심었어요. 지난봄 욕심껏 들였다 죽이고만 라벤더가 있던 화분에. 어느 날인가, 그 화분에 연둣빛 싹이. 어? 얘는 뭐지? 누가 심은 적도 없는데, 싹이 났어요. 그러더니 무럭무럭. 넌 누굴까. 단풍나무 물 줄 적마다 꼬박꼬박, 그 애한테도 쏟은 마음. 얼마 전, 거실로 들어오는 볕 쫓다가 반짝, 노란빛에 홀려 스스스, 소파에서 일어나 단풍나무 화분으로. 세상에나. 거기, 노오란, 샛노란,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꽃송이가! 괭이밥, 한 송이. 잡초라고 뽑아버리래도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있어도 잡초는 없다고 안 뽑고 놔뒀는데, 그 애가 괭이밥이었어요. 그거 알아요? 해가 지면, 괭이밥도 꽃잎이랑 이파릴 접는 거. 자귀나무처럼.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그 앨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지 뭐예요. 꽃잎이랑 잎을 가만가만, 감고 있어서. 그래서 고 앞에 쪼그려 앉아 눈 뜨길 기다리다 슬금슬금 물러났어요. 며칠 전엔 한 송이 더, 화알짝. 폴폴, 언제 어디서 날아와 피어났는지…… 신기하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이쁘고도 이쁜 노오란 빛!


며칠째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어요. 그래도 지루하기는커녕 세계 일주를 방금 끝내고 돌아온 것마냥 고단하고 고단하고 또 고단해서 낮잠을 자고도 밤이면 곯아떨어져요. 몸이, 맘이,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종종거리고 동동거리는 통에.


'네 편지를 읽으면서 난 기쁨으로 녹아들고 있어. 오르비에토에서 보낸 네 편지에 답장하려는 참이었는데, 페투자와 아시시에서 보낸 편지가 동시에 도착했어. 내 마음은 지금 여행을 떠나 있고, 몸만 여기 남아 있는 것 같아. 정말 나는 너와 함께 올브리아의 하얀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아. 나는 너와 함께 아침에 떠나서, 전혀 새로운 눈으로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지…… 코르토나의 테라스에서 너는 정말 나를 불렀었나? 네 목소리가 들려왔어…… 아시시 너머 산속에서는 지독히도 목이 말랐지! 하지만 프란체스코회 수도사가 준 한 잔의 물은 어찌나 달던지 아, 제롬! 나는 너를 통해 모든 걸 하나하나 보고 있어!'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중에서)


계절이 피어나고 물들 적마다 떼 지어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래야지, 맘 동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부러운 적도. 어쩌다 그 무리에 끼었더래도 서둘러 빠져나와 반대 방향으로 가요. 피고 물드는 계절은 베란다에 서서도 훤히 보이거든요. 1층 현관문 코앞에 서서 들어오고 나갈 적마다 살랑살랑, 어룽대는 그림자로 꼬시는 단풍나무. 서너 계단 내려서면 요즘 한창 물드는 벚나무 한 그루. 그 아이가 지난 봄 내 가슴팍에 떨군 꽃잎 몇. 그 옆으로 금빛 물결 지운 자리에 3천 킬로미터 머언 모험 채비로 익어가는 갈색 꼬투리 매단 모감주나무 두 그루. 몇 발짝 걸어가면 화단 모퉁이에 무심히 선 빨간 머리 앤의 꽃사과나무. 그 잎새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햇살에 발목 잡혔던 어느 해 질 녘. 제가 매일 숨 쉬고 걷고 보고 듣는 것들에 드리운 계절. 어제의 표정은 지우고 하루하루 새로이 그려넣고 물들어가는 얼굴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어디 딴 데 갈 생각이 지도 않거니와 머얼리 나설 맘이 들지도 않아요. 그것도 그렇고, 저는 집구석에 앉아서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사랑하는 이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은, 그 감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옮겨오는, 쉽게 전염되고 감염되는 사람이라 때로 어떤 건 직접 경험한 이들보다 더 깊이 매만지고 취하기도 해요. 여기, 가만히 앉아서도, 그 바람과, 그 빛줄기와, 그 빗소리가 보이고 들려요. 당신 달콤함을, 당신 열기를, 당신 목마름을, 당신 쓰라림을 만지고 느껴요. 알리사, 그녀처럼.


와서 이것 좀 봐.

뭐?

이 꽃. 너 봤어?

아니.

와서 봐봐.


쪼르르.


어머!

봐. 얘는 잘 때 이렇게 잎을 접어. 신기하지?

어.

꽃송이도 보이지? 여기. 얘도 자는 거야.

얘, 살아있어?

그럼 살아있지!

얘가 혼자서 접는다고?

당연하지! 혼자서 자라고 혼자서 해를 따라 얼굴 들고 혼자서 잎도 접고. 넘 이쁘지?

무서워.

뭐가 무서워?

얘가 살아있는 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어쩜 이 아이들도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해독하지 못한, 그러니까 과학이나 기술로는 아직 읽어내지 못한 이 세계의 언어가. 어쩌면 의식이, 생각이, 감정이 있는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아서 우리가 멋대로 없다고, 그런 거라고 단정 지은 건 아닐까.

아, 몰라! 근데 신기해.


온몸이, 맘이 도체(導體)인 저는 앓고 있어요.

온 계절을. 길을 지우려고, 나를 잃어버리려고.

잠의 도피처에서, 어떤 얼굴도 없이.




소등(消燈)

- 에드워드 토머스


나는 잠의 국경에 다다랐다,

누구나 길을, 아무리 똑바르건

굽어 있건, 이르건 늦건 간에,

잃을 수밖에 없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숲에.

누구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처음 동이 튼 순간 이래로

저 위 숲 가장자리까지

여행자들을 속였던

숱한 길들과 오솔길들이

갑자기 지금 흐릿해지더니

가라앉는다.


여기서 사랑은 끝나고,

절망과 야망도 끝난다,

모든 즐거움과 모든 괴로움은

더없이 달콤하거나 더없이 쓰라리더라도

여기 가장 숭고한 임무들보다도 달콤한

잠 속에서 끝난다.


어떻게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나 혼자 들어가고 떠나야만 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

지금 외면하지 못할

어떤 책도 또 더없이 소중한 눈길을 지닌

어떤 얼굴도 없다.


높다란 숲이 우뚝 솟아오른다.

흐릿한 잎들이 앞쪽에 선반 위에 선반을 내려뜨린다.

숲의 침묵을 나는 듣고 따른다,

길을 또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도록.



글 제목은 에드워드 토머스의 시 <소등(消燈)>에서 인용, 변주했어요. 아래 사진은 비 내리는 날의 얼굴, 얼굴들. 그리고 언젠가 갔던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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