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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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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08. 2024

빈자리 견디기

시(詩) 은(銀) 엉겅퀴, 라이너 쿤체

기억 나.

니가 한 말, 니네 동네 어귀, 타박타박 발맞춰 걷다 만난 거기 그 모퉁이, 한쪽씩 나눠 낀 이어폰을 타고와 고막을 간질이던 기우뚱 멜로디, 손깍지 끼고 올려다본 하늘, 그때 쏟아지던 빛무리, 이마를 훑고 내려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건들 바람, 그 자릴 헤매돌던 흙내음 그림자.


어떤 한 사람이 온전히 점령했다 떠난 세계는

어지러운 냉기를 속삭거리며 세기말적 어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얼어가.


한 번도 태어난 적 없는 슬픔 뒤로 물러나

한 번도 죽은 적 없는 기쁨, 그 부신 빛살을 봐. 

찡그림은 고이 더운 그늘에 떨궈.


안녕은

다시, 내미는 악수야.


'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영화 <벌새> 중에서)




은(銀) 엉겅퀴

- 라이너 쿤체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



글 제목은 시몬 베유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기>에서 인용, 변주했어요. 사진은 작년 겨울, 먼 데 놀러 갔다 아침산책길에 만난.




(영화 <벌새> 위로 흐르는 이 노랠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는 안 되는가 봅니다…. 찾아서 보시길요. 저는 그 영상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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