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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Feb 27. 2023

1986년, 거수경례를 하고 등교하다.

군대식 중학교에서 팝송을 듣던 86

실로 오랫만에 이 매거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그 예전에 자라나면서 많이 들었던 노래들을 개인적으로 추려보고픈 단순한 마음이었는데

과거를 되짚는 일은 가끔은 현실도피성 패배의식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에

별 것 아닌 이 작업이 꾸준하게 이어지기 힘든가보다. 

아무튼 지난번 쓴 글을 보니 이미 일년이 훌쩍 넘었지만

어차피 개인적인 기록일 뿐이니 다시 가끔이라도 글을 이어나가 보려 한다. 




1986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처음 중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느낀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교문 앞에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고, 교문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은 한 줄로 서서 들어가면서 그 선생님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들어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살면서 그 날 그 시간까지 거수경례는 제대로 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나는 그 광경을 보고 꽤나 당황했다. 

교문에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서 들어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선생님 앞에까지 가서 차렷자세로 선다. 

경례를 한다.

구호는 붙이지 않는다. 


그리 어려워보이진 않았기에 나는 적당한 시점에 다른 학생의 뒤에 서서 이 경례의 대열에 섞였고, 

별 탈 없이 경례를 하고 교문을 통과했다. 


그 날부터 매일 아침,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거수경례는 계속되었다.

다행이도 약 1년 반 후, 그 때의 교장선생님이 퇴임하고 다른 교장선생님이 오시면서 그 아침의 행사는 종료되었던 듯 하다. 

생각해보니 교장선생님이 이유가 아니라 87년의 민주화라는 사회분위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운동장에 모여 하던 조회시간에도 이 군대 문화는 적용되었다. 

각 반 반장들은 맨 앞에 서서 반 학생들 줄을 세웠고 

전체 학생을 통솔하는 역할이 한 명 단상 바로 앞에서 서 있었는데

그의 직함은 '대대장' 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올라오시면 대대장은 뒤로 돌아서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전체 차려엇~~!!!"

"교장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우리는 교복자율화 세대라 교복은 입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자세로 경례를 했다. 


군대를 안 가본 사람도 TV에서 대통령이 국군의 날에 부대 앞에서 경례를 받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 교장선생님께서는 1800여명 되는 전교생의 경례에 대해 한껏 절도있게 좌에서 우로 몸을 돌려가며 경례를 받았다. 


무언가 재미난 놀이를 하는 듯한 이 행사가 당시의 나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앞에서 우리에게 구령을 붙이는 이 '대대장' 형이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다. 


아무튼 당시에는 이런 군대식 규율의 잔재가 아무런 거부감없이 행해지던 때였고

그 규율은 형식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중학교는 내가 3회 졸업생으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의외로 여선생님들이 많았다. 

하지만 학교안에서는 여선생님이나 남선생님이나 모두 한결같이 폭력을 행사했다. 

돌이켜보건대 중학교 3년동안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폭력을 당했던 시기였고 그 주체는 다름아닌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누구나 알만한 모범생이었음에도 이정도라면

그렇지 않거나 말썽 좀 피웠던 아이들은 어땠을까는 상상에 맡긴다. 


맞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던 시절, 

선생님이 때리면 맞고 고개숙여 인사하고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친구들과 학교생활, 선생님들 모두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때였다. 


이 무렵부터 밤에 혼자 라디오 방송을 듣기 시작했는데

국민 디제이 이문세씨의 '별밤'을 들은 것도 이때 즈음인 것 같다. 




같은 반 친구가 어느 날 녹음한 테이프 하나를 빌려주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녹음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Baltimora의 '타잔보이'가 맨 앞에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kmgcvr5Ezc

이 곡은 당시 라디오에서도 엄청 많이 나왔었는데

앞부분의 중독성 소절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곡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무척 좋아했던 이 곡

Gazebo의 'I like Chopin' 도 들어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rGjD1rTNyg


쇼팽이 뭔지도 몰랐던 때였지만

뭔가 기존 팝송들과는 약간 다른 스타일로 피아노 멜로디도 꽤 인상깊었던 이곡 역시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곡이었다. 



86년은 아시안게임이 열린 해이기도 했는데

글쎄,, 서울 아시안게임에 대한 기억은 왠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라면 소녀 임춘애의 비쩍 마른 모습과 무표정한 얼굴외에는...



중학교 생활은 지금도 나에게는 인생에서의 재미있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이다. 

그리고 1986년은 그 시작이 되는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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