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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Feb 11. 2023

주말이면 요리하는 남자들

아빠와 애인, 그들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빠는 미식가다. 입맛만 예민하고 요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는 부지런한 미식가다. 보고 들은 모든 걸 때에 맞춰 맛보는 걸 좋아한다. 운전하거나 장 보기, 음식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운 좋게도 자신의 입맛을 알아주는 엄마와 살고, 자식 둘 중 하나는 기미상궁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럼 나는? 


생각해 보라. 이미 너무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자라다보면 주눅 들거나, 신경 쓰지 않는데 나는 후자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능력을 옆에서 치켜세우고 의지하는데 거리낌 없었다. 주말이면 아빠는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해서 식탁에 놓아주고, 엄마는 전후 과정을 도우며 풍성함을 더했다. 아들은 왔다 갔다 오가며 간을 보니 나는 그저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되면 식탁 앞에 쪼르르 앉았다. 아빠와 거리 두기를 하던 학창 시절조차 주말 전날이면 아빠에게 비빔국수나 라면을 끓여달라고 말했다. 다행히 아빠와 나는 겉모습뿐 아니라 소통 방식도 닮아서 별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엄마에게는 갖은 아양을 떨며 원하는 걸 말하는 모습과는 정 반대였다.


주변에서는 아빠가 주말마다 밥을 차리고, 꽤 자주 진수성찬 차려진 식탁 위를 보며 좋겠다고 했다. 좋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좋은 거구나 했다.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장 봐다가 만드는 마음, 어울리는 그릇을 찾아 음식을 담는 마음, 함께 사는 사람과 나누는 마음. 그런 마음이 참 귀한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시절에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해 화가 나는 날이 있었다. 아마 화가 났던 건,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이 얽혀있었지만 단순하다. 나는 그런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애인은 아침마다 나보다 꼭 10분 일찍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전날 끓여둔 국을 덥히는 걸로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냉장고를 열어 매일 꼭 다른 반찬을 서너 가지 꺼낸다. 과일이 더해진 날도 있고, 계란말이처럼 막 만든 반찬이 나오기도 한다. 초반엔 옆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딱 붙어 있기도 했다. 이제는 밥을 푸거나 숟가락을 두면서 소소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주말 아침에도 어김없이 애인은 주방으로 향한다. 어제 운동하며 본 TV에서 발견한 원주 국수를 만든다며 전날 저녁 장을 봤던 그. 만드는 뒷모습에서도 설렘 같은 게 느껴졌다. 너무 매운가? 면을 더 넣어야 하나? 면이 너무 많은가? 와 같은 말소리가 귀에 닿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어쩐지 지금껏 그런 걸 피해왔었나 싶다. 아빠도 그런 기쁨이나 설렘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내가 보지 않으려 했었나. 이제와 아빠와 나의 소통법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냥 그런 아빠가 존재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엄마와 꼭 닮은 사람과 살기를 바란 적이 있는데, 그런 엄마도 곁에 아빠가 있어 갖춰진 모습 중 하나였을까? 오롯이 엄마 그 자체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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