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하는 거 조연은 못 해 안 해
결혼식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랑 살거나, 애인과 살더라도 동거 혹은 혼인 신고 정도만 하지 않을까 어렴풋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식이라니. 결혼식이 싫다면 팝업 스토어를 2주 정도 열면 좋을 것 같다는 애인의 말에 결혼식 하루로 끝내자고 말하긴 했는데 상상한 적도, 기대한 적도 없는 행사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어떤 날은 결혼식을 생각하니 너무 답답했다.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자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하게 된 결혼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엔 역시나 이 물음을 떠올리지도 않은 채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려 했다. 그런데 난 흐르는 강물을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강물에 발이라도 담그는 사람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온라인 벗들의 결혼이 눈에 띄었다. 특히 두 벗들의 결혼식이 큰 영감을 주었다. 한 분은 드레스가 아닌 예복을 입었고, 평소와 같은 짧은 머리였다. 이외 청첩장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소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벗은 직계 가족과 사진을 남긴 채,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연히 일주일 차이로 두 벗의 결혼식을 봤고, 자연스럽게 고민했던 것들이 정리되었다. 가장 고민했던 건 하나였다. ‘과연, 긴 머리카락을 붙이고 안경을 벗은 채 디즈니 드레스를 입은 내 사진을 나중에도 찾아볼까?’였다. 문장 안에 있는 모든 조건 중 평생 크게 변할 요소가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은 희미한 확신이 들었다. 예전에는 나답지 않은 모습이라 찍고 보고 남겼지만, 그런 모습이 이제는 너무 낯설다. 낯설어서 찾아보지 않는다.
그 하루가, 찍고 나서 보지 않는 앨범 같은 날이 아니라 오래오래 몇 번이고 보고 싶은 하루가 되길 바란다. 마침내 나의 결혼식을 아주 조금 기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