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베리 Apr 16. 2023

엄마에게서 할머니를 본 날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의지해왔는지 좀 볼래요?

부모님 댁에 들렀다 가는 길. 엄마는 애인의 손을 꼭 붙잡고 고맙다고 했다.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온, 그러니까 본인의 집에 직접 운전해서 온 아빠에게 고맙다고 했다. 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할머니는 아빠를 끔찍이 챙겼다. 김치를 담아두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도 꼭 "이서방 좋아하는 매운 고춧가루로 담았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부러 엄마를 나무라고 아빠를 치켜세우는 게 할머니 나름의 비법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전업주부인 딸이 혹여나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아 무시당하거나 마음이 구겨져 있을까 봐 할머니는 항상 한껏 부푼 채로 엄마 뒤에 서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도 그 옆에서 아빠의 손을 항상 잡으며 여기저기 '사위'란 말 대신 이름을 부르며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어제의 엄마를 보며 앞으로 나를 위해 어떻게 할지 눈에 선했다. 아빠가 본인 아버지가 아닌 장인어른 같은 태도를 가질지는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우리를 배웅하며 함께 계시던 큰엄마가 그랬다. "너는 집에서도 사랑받고 결혼해서도 사랑받고, 이거 다 어쩔래?"라고. 그런데 난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꼭 그만큼 되갚아야 한다고 배운 적이 없다. 엄마는 본인 마음 편한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하고 배려하라고 가르쳤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넘치게 받을 이 사랑을 내 방식대로 소화하고 내보이려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하고 말고는 어차피 오랜 시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 거니까. (영원히 모를 수도 있고.)



작가의 이전글 나는 이제서야 나의 결혼식을 조금, 기다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