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깝지
어제 학원에서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한 명이 흑흑 울었다.
그 아이는 새 교재를 준비하면서 단어 시험을 볼 차례였는데, 내가 단어 시험에 대비하라고 미리 문제를 종이에 쭉 써줬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도와주니 고맙지?? 하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애가 워낙 반응이 없어서 고마워서 눈물이 나지? 라고 더 심하게 헛소리를 했다. 아이는 왜 이러시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 나서 다음 공부까지 이어서 하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확인받으러 오지 않더니 갑자기 내 앞으로 와서 흐느끼는 거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ㅠㅠ
운 이유는... 그 전날 수학 단원평가를 위해 수학을 두 시간 하고 영어는 안 했는데 이날 수학은 안 하고 영어를 두 시간 하라고 한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참다가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0' 깜짝 놀라서 어깨 토닥토닥 해주고 얼른 가라고 했다. 걔는 뒤도 안 돌아보고 울면서 집에 갔다.
급한 일 처리하고 10분 정도 후에 원장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원장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그럼 빨리 보내세요, 너무 심하게 강요하지 마세요, 라고 하심. ㅠㅠ 내가 그런 게 아닌데. 그래서 '아니에요, 아무 말 안 했는데 혼자 앉아 있다가 울어서 보냈어요.'라고 하고 끝냈다.
요즘 앵두와 오디와 뱀딸기가 열리는데 아이들도 공부의 결실을 맺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어서 자주 운다.
나따라 물마시러 온 학생이 오늘 학원에서 세 명이 울었다고 했다. 한명은 나방이 무서워서(헐..) 한 명은 수학이 힘들어서...
다행히 나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시험 점수에 대한 부담이 없는데 수학은 단원 평가를 자주 보고 그걸 대비해주기 때문에 시험 전날이면 저렇게 머리에서 김 나게 공부를 한다.
나도 수학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많이 헷갈렸던 것 같다. 분수에서 분모를 통일해서 빼고 더해야 한다는 것도 한참 지나서 터득했다. 하지만 수학 머리가 좋지는 않아도 머리 자체가 아주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도와주고 학원도 가서 선생님이랑 머리 터지게 공부했으면 수학을 못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포자까지는 아니어도 수학에는 늘 안개가 낀 기분이었는데 그 안개가 걷혔을 수도 있고 그럼 서울대에 갔을 수도 있고 그럼 지금쯤 의사나 판사나 뭐든 돼서 잘살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 가능성을 붙들고 매일 머리 쥐어뜯고 살다가 골룸이 됐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은 없다. 뭐 어쨌든 과거는 과거니까 지나간 가능성 붙들고 있어 봐야 소용도 없고 말이다.
한참 있다가 한 명이 또 '집에 가고 싶다'고 흐느적거렸다. 그래서 집이 그렇게 좋냐고 했더니 자기도 원래는 집을 싫어했는데 지금은 침대 위치를 바꿔서 아무도 못 보게 침대 안에 콕 들어가서 핸드폰만 하면 엄마가 어떻게 하든 편하다는 것이다. 이건 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암튼 핸드폰에 스크린 타임 걸려 있지 않냐고 하니까 자기 거 다 쓰고 나면 동생 폰을 몰래 본다나, 카톡의 오픈 채팅을 본다나... 뭐 갖가지 방법으로 핸드폰을 붙들고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본인들은 핸드폰 더 많이 보고 인스타도 한 시간씩 하면서 애들은 못하게 한다고 애들이 단체로 원성이 폭발했다. 애나 어른이나 쇼츠, sns에 빠져서 질식해가는 세상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즘은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애써봤자 소용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는 것 같다. 자생할 수 있게, 아니면 본래의 성질대로 죽거나 살 수 있게 두는 것이 오히려 최선인 것 같고 내 인생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인생, 의사나 판사나 뭐든 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인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