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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일 Oct 13. 2023

#01. 내 구멍 난 양말

아빠, 난 아빠를 닮았어

08월 05일 새벽 5시쯤 중환자실에서 매형과 교대하고 아빠 곁을 지켰다. 엄마와 누나가 도착하자, 아빠의 심박수와 호흡 수치가 급격히 낮아졌고 오전 08시쯤 소천하셨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아빠의 마지막 숨이 내뱉어지고 전하지 못한 말들도 함께 흩어져버렸다. 나는 안일했다. 아빠가 조금 더 버텨주시겠거니 안일함에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마음이 많았다. 더 표현하고, 자주 만나고, 안아드렸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내가 원망스러웠다.


장례 기간 동안 우리 아빠가 얼마나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는지 말해주듯 주변에서 조문을 잔뜩 와주셨고 시끌벅적 상주답지 않게 밝게 아빠를 보내드렸다. 실감도 나지 않고 눈물이 쉬이 나오지 않아 제대로 슬퍼하는 게 뭘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린 마음에 아빠를 자주 원망했었는데, 지금에서야 아빠에게 받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저릿하게 느끼고 있다. 왜 이런 것들은 이제야 깨달을 수 있게 된 걸까?


몇 달 전 아빠의 마지막 생일, 입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말들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마저도 부족했지만 아빠는 그날 그 짧은 편지 한 통에 신이 나 아픈 몸을 끌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외출을 하셨다.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빠에게는 생각보다 편지를 몇 번 쓰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표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있는 표현을 제 때 전하지 못하면 때와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 다시는 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표현을 아끼지 않고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정작 아빠에게는 그 표현들이 쑥스럽다는 이유로 미루다 전하지 못한 채로 남겨지고 말았다. 편지 한 통으로 마음을 덜어내기에는 후회가 너무 크게 남는다.

휴대폰 메모장에 쓰여진, 전할 수 없는 편지들이 계속 쌓이는 중이다. 아빠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을까. 나보다 먼저 이별을 경험한 지인이 돌아가신 가족분과 딱 한 번만 전화 통화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나도 딱 한 번만 아빠의 안부를 직접 전해 듣고 싶다.


딸에게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남기고 있다. 물론, 적당히 미루다 달을 넘겨서야 쓴 적도 있다. 언젠가 딸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남아있을까 겁이 나고, 초조함과 그리움이 마음을 시끄럽게 한다.

임종 몇 시간 전 아빠의 손을 잡았던 촉감. 아빠의 호흡, 냄새.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에서 새벽 어스름과 함께 두리번거리던 아빠의 눈 빛. 이렇게 생생한데, 내가 겪은 이별이 믿기지 않아 여전히 착각을 한다. 아직 아빠는 병실에 계실 것 같은데.. 아빠와 문자, 영상 등을 보며 그리워하다 보면 지금도 금방 안부 전화가 올 것만 같다. 표현하지 못한 만큼 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너무 많다. 오히려 점점 쌓이는 터라 자주 먹먹한 기분이 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텅 비워진 기분 탓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 순간이 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이 후회가 익숙해질까. 얼마나 시간이 흐르면 아빠를 다시 만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아빠는 내게 해준 게 없다고 말했다. 나도 내 20대를 받은 것 없이 홀로 견딘 시기라고만 생각했다. 지방으로 학교에 다니며 차비와 밥값 중 선택해야만 하던 시기가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할 수 없나 원망하며 아빠 탓을 했었다. 그 탓에 무뚝뚝함을 넘어 차가운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작은 돈이라도 보태주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리운전을 하고, 투 잡을 뛰며 일을 나가던 아빠가 있었다. 본인은 배부르다 나에게만 갈비탕 한 그릇을 시켜주며 먹이던 아빠가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모른 체하며 원망했는데 그럼에도 아빠는 늘 고맙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딸아이를 만나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자랑스럽다고.. 그저 내 인생만 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야 조금은 무언가 해드릴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운이 좋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덕분에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주변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음을 배웠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별은 낯설고, 두렵고, 아주 많이 아프게 느껴진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지만 최대한 미루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빠에게

사랑하는 아빠, 아빠를 보내기 전에 생긴 생채기들이 하나 둘 아물어가고 있어. 언젠가 이 생채기들이 흐릿해서 눈에 띄지 않으면 그땐 실감이 날까.
나는 아직 아빠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고 싶었고, 아빠가 따라주는 술을 한 잔 받아보고 싶었어.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며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싶었어. 온 가족이 모여 가족사진을 찍고 싶었어. 아빠의 어린 시절,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장소 그런 일상적인 것들을 묻고 싶어. 지금에서야 왜 그런 당연한 것들을 묻지 않았을까 후회스러워. 내가 원망스러워.
아빠, 나는 아빠를 닮았더라고. 아빠에게 배우고 받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왜 몰랐을까. 이제야 아빠가 해준 말이 이해되는 것 같아. 가끔은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하고, 사람에게 빚을 질 줄도 알아야 갚을 줄도 감사할 줄 아는 거라고.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도록 할게. '나'보다 '우리'를 향할게. 아빠와 작별하면서 너무 아팠지만 잘 살아가도록 할게.
우리 시간이 흘러서 다시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천천히 아주 긴 시간 함께 하자.
사랑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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