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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색머리 Dec 16. 2016

사랑하는 일

내 인생 그토록 아름다운 날들이 또 있을까




10. 



내게는 정말 오랜 시간 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했던 친구가 있다. (외로운 사람들) 그는 내 첫 애인이었고 친구이자 보호자였으며, 내 곁에 가족이 함께하지 못할 때에 내 가족이 되어주었다. 헤어지고 만남을 반복하는 사이사이에도 우리는 친구로서 곁을 지켰다. 더 이상 아무 미련도, 눈물도, 애틋한 감정이나 책임감조차 남지 않은 상태로 지긋지긋한 연인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나서도, 우리는 가끔 안부를 묻고, (아니, 우리가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그냥 그의 소식은 나한테 흘러들어오고 내 이야기는 그에게 전해진다고 하더라) 같이 갔었는데 기억이 안나는 레스토랑 이름을 물어보고, 멀리서나마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더 이상 그는 내가 잠에 들기 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뭔지,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잠에 들기 전 내가 어떤 순서로 나만의 하루를 마치는 의식을 치르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내 냉장고에 마르지 않고 항상 구비되어있는 재료가 무엇인지는, 그래, 아마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그는 나를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끊임없이 샘솟아서, 가끔 내 그릇에 차고 넘칠 때도 살짝 부족하게 담길 때도 있었지만 나를 목마르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사랑을 받는 게 너무나도 당연해서 정말 오만하게도 내가 그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그가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가장 큰 비극은 상대와 나의 감정의 크기가 늘 같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도시락을 싸주고 편지를 써주고, 온갖 이벤트와 선물을 준비하고 지친 그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던 내가, 어느 날 모든 게 지쳤다며 이별의 말을 꺼냈을 때, 그는 울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다시 연인이 되었을 때 내게는 이미 전과 같은 감정이 없었지만, 그는 전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그 여백을 채워주었다. 아직도 가끔 생각하지만, 그래, 만약 우리가 좀 더 나이와 경험이 있는 상태로 만났더라면, 혹은, 그가 지금의 나에게 그만큼의 믿음과 용기를 보여줬더라면, 난 아마 그를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서빙을 했던 식당의 셰프님은 늘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식탐을 버려, 식탐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야.' 그러면 나는 한 손에 고구마튀김이나 연어구이 조각을 들고 입을 오물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아니,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한다. 한참 잘 먹을 때에는 부끄럽지만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식탐이 많았다. 눈 앞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나는 온통 음식에만 정신이 팔려서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곤 했는데, 가끔 내 친구들과 애인과 함께 식사를 한 날이면, 식사가 끝나고 내 친구들이 꼭 내 곁으로 와서 소곤거리곤 했다. '야, 네 남자 친구 먹지도 않고 네 접시에 네가 좋아하는 거 골라서 올려주더라. 본인은 밥도 안 먹고 너 먹는 거 흐뭇하게 쳐다만 보다가 네가 웃으면 꼭 따라 웃더라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아, 내가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해도 남들 눈에는 이 사람이 날 사랑하는 게 티가 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만난 지 7년이 다 되어 가도록 그의 눈에는 변함없이 내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영원히 변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 줄 것만 같았다.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변치 않는 사랑이, 그와 함께라면 가능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그가 나의 본모습을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받는 것보다, 내가 하는 사랑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설렘에 잠 못 이루고, 그 사람을 알고 나를 알려주고 싶어 하고, 손익을 따지지 않고 끊임없이 주고 싶은 사랑. 나는 정말 오랜 기간에 걸쳐, 그에게 이별을 준비시켰다. 그에게 내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게 하고, 그에게 중요한 가치와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의 순위가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보게 하고, 그와 내가 꿈꾸는 미래가 얼마나 간극이 큰지를 고민하게 했다. 그가 마침내 진정으로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나는 사랑이 사람을 발전시킨다고 믿는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친밀해지는 관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르침을 주고, 뼛속까지 저리는 사랑의 경험은,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을 넓히고 내가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의 깊이를 키운다고 믿는다. 그 경험은 내가 받는 사랑과 하는 사랑 모두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고, 원래의 사랑의 깊이가 달라지거나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때마다 다른 형태로, 다른 깊이로, 다른 크기로 느낄 수 있다.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서 지고지순했던 내 첫 연인을 떠났다. 그리고 몇 번의 정차 후에 지난 8편의 글에서 내내 씹어댔던 그 사람을 만났다.




사랑의 시작이 아름다우려면 그 시작 이후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아름다운 사랑은 그 시작이 어떠하였더라도—얼마나 찌질했거나 보잘것없거나 지루했더라도—당사자의 머릿속에 낭만적이고 특별하게 기억되기 마련 아닐까. 분칠을 잔뜩 하고 색을 입혀 아름답게 내보였지만, 사실 <별 헤던 밤>은 픽션에 가깝다. 그 사람과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감정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한 지 며칠 후에, 나는 <별 헤던 밤>을 썼다. 처음 펜을 들어 생각나는 대로 종이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가 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별을 보러 간 시간을 기억하고 싶었고, 그 시간, 그 공간에 그가 함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첫 두 문단을 쓰고 나서 그에게 쓴 글을 보여주니 그는 내가 쓴 글을 '우리 사랑의 로맨틱한 시작'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 시각, 그 장소에 함께했던 그를 글의 주인공으로 둔갑시켰다. 그는 틈만 나면 글을 얼마만큼 썼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고, 글 속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로맨틱하였는지를 우리가 함께 본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교해가며 만족해했다. 어쩌면 내가 맨 처음 별을 보러 올라간 절벽의 새벽 공기가 더 달콤하고 로맨틱하였는지 모르지만, 그 날은 너무 오래돼서 빛바래고 희미해져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반면, <별 헤던 밤>의 공기는 문자로 분칠하고 단어로 색을 입혀 단장해 놓으니 그 특별함이 그 밤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문장에서 오는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만큼 예쁘더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떠올리는 내 인생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하였던 나와 그의 사랑이 슬픈 이유는, 둘이 신이 나서 머리를 맞대고 그 밤공기와 풀벌레 소리가 어땠는지를 논의하던 그 시간이, 그리고 그때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훗날 우리의 아이들에게 들려주자던 그의 말이 형편없이 찌그러져 버려졌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열렬히 사랑에 빠졌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했던 그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짧아서 기억할 것도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기억해내면 할수록 우리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누고, 참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참 많은 꿈을 같이 꾸었더라. 글로 옮겨 적지 않은 밤들이, 그 시간의 공기가, 도저히 버릴 수 없게 아름답다. 시간이 지나고 분명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겠지만, 아, 정말 그렇게 로맨틱한 시간들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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