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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색머리 Nov 16. 2016

감정의 공유

나는 이런 그가 못 견디게 좋았다.




2.



그의 두 눈에는 언제나 내가 가득 차 있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술 한잔 기울이며 대화할 때도, 늦은 밤 집 앞을 산책할 때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 

그 밤은 무척 짧았던 것 같고, 무언가 대화도 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내용은 정말이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의 마음을 느꼈었다.

두 눈에 온 마음을 담아 나에 대한 마음을 소리치는 것 같은 그를 보며, 나는 굉장히 빨리 그의 마음에 동화되었다.




그의 집은 내 작업실이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집안일을 조금 하고 내 볼일을 보다가 점심때쯤 노트북을 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우리는 간단히 점심을 해서 그의 책상에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내가 그릇들을 치우면, 그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를 위해 따뜻한 차를 끓여주었다. 나는 또 차에 대해 까다롭기 그지없어서 팔팔 끓는 뜨거운 물로는 차를 내리지 않았는데, 그는 그런 나를 위해 끓인 물과 미지근한 물을 조심스럽게 섞어서 온도를 봐가며 차를 내려줬다. 


연하게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한 손으로 감싸 쥐고 그의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한참 하고 있노라면 그는 맞은편에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이메일을 쓰거나, 가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가 내 나약한 집중력이 무너지면 우리는 그의 집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고, 장을 보고 와서 저녁을 해먹기도 했고, 바람을 쐬자며 동네를 서너 바퀴씩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날도,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그의 모습에 일은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그와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갔다가 장을 봐와서 같이 저녁을 해 먹었다. 저녁을 먹고 그는 축구를 하러 나갔다. 나는 그가 없는 그의 집에 혼자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너무 외로웠다.


한번 나를 파고든 외로움은 벅찬 마음과 감정과 생각들로 나를 휘저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는지, 아니, 사실은 그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한참 축구를 하고 있을 그에게 "나 집에 가고 싶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 놓고 가방을 챙겨서 그의 집을 막 나서려는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느냐고, 괜찮으냐고, 축구 그만 하고 지금 집에 오겠다고 말하는 그를 말리고, 그에게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가 한 시간 내로 집에 돌아오겠다며 얼굴만 보고 가라고 했다. 나는 불 꺼진 그의 방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그를 기다렸다.




그는 시간을 맞춰 돌아왔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땀 냄새 때문에 미안해,라고 말하며 나를 꼭 끌어안아줬다. 나는 그 품이 좋았다. 그는 나를 소파에 앉혀두고 재빨리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는, 밖에 날씨가 좋더라, 하며 내 손을 잡아끌어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따뜻한 손이 좋았다. 우리는 나란히 동네를 걸었다. 그는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내가 좋아하는 유리잔에 따라 내 앞에 한잔, 그 앞에 한잔, 두고, 따뜻하게 일렁이는 촛불을 하나 켜고, 나도 좋아하고 그도 좋아하는 잔잔한 노래를 틀었다. 나는 촛불이 비치는 그의 눈빛이 좋았다.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얘기해볼래?,라고 그는 물었다. 내가 별일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 그는 또 잠시 있다가,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이제 한번 얘기해볼까?,라고 말했다. 그의 그런 마음에 나는 실없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그 마음만으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가 너무나도 좋았다. 




그래, 내가 사랑한 그는 늘 내 감정에 책임을 지려고 했다. 


어느 날 밤 내가, 기분이 꿀꿀해,라고 말하면, 그는 나와 함께 양손에 맥주와 과자와 과일을 가득 들고 집 앞에 주차되어있는 그의 차에 들어가 앉아서, 모든 창문을 다 열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차 앞 유리창에 발바닥을 찍어놓고선, 몇 시간씩 노래도 따라 부르고 맥주도 마시고 이야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오늘 왠지 신나는 거 하고 싶다! 놀러 나가자!,라고 말하면, 그는 예쁜 옷을 꺼내 입고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서, 같이 드라이브도 하고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 어느 날 같이 꼭 끌어안고 잠을 자다가 내가 새벽에 이유 없이 깨서, 나 너무 답답해, 하고 말하면, 그 늦은 밤에 우리는 담요를 덮어쓰고 동네를 산책했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둘이 잠옷바람으로 슬리퍼를 끌며 산책하는 게, 나는 그렇게도 좋았다. 




어느 날,


이별을 앞두고, 내가 그 새벽의 산책을 떠올리니 그가 말했다,




그땐 네가 그만큼 사랑스러웠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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