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곁의 내 모습이 나는...
3.
정말 운 좋게도
나는 넘쳐나진 않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꽤 공부를 잘했고, 또래에 비해 키도 컸으며, 어딜 가나 어른들의 예쁨을 받았다.
가족들은 나를 사랑했고, 나는 그 사랑을 의심해본 적 없이 자랐다.
아빠는 성실하고 능력이 있으셨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를 따라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는 가족과 떨어져서 미국에서 혼자 살았다.
혼자 살면서도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었고, 독립적이었고, 긍정적이었으며, 낙천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밝고 사랑스럽고 대견하다고 이야기했다. (조금 창피하지만 진짜다ㅋㅋㅋ)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냈음에도 나는 비교적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다. 내 곁에는 가족을 대신해 의지가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은 내 엄마, 아빠였고, 형제였고, 동료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잘 맞으면 나는 그게 그렇게 기쁘고 즐거웠다.
하루는, 새로운 사람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 들어왔다.
대화와 취향이 잘 통해서 우린 정말 빨리 친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 사람도 좋아했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했다. 좋은 친구사이로 지내다가 같이 별을 보러 가게 되었다. (별 헤던 밤) 그리고 그 밤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
그가 나에게 보이는 달콤한 말들과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눈빛에, 나는 그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곁에서 낯선 내 모습을 반복해서 마주했고,
그 모습을 부정했고,
자괴감에 빠졌고,
자책했고,
끊임없이 작아져만 갔다.
점점 서로가 서로에게 독이 되어갔다.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고,
더 이상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내 에너지가 주변까지 환하게 밝혀준다고 말했다.
내 웃는 모습에 참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이 그들에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밝혀주고 싶고 기분 좋게 해주고 싶고 힘이 되고 싶었던 사람은,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나와 있는 시간이 힘들고 상처가 된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서 나는 더 이상 밝지 않았고, 사랑스럽지 않았고, 에너지 넘치지 않았고,
더 이상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긴 대화와 고민 끝에 우리는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기로 했다.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는 정말 멋지고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나는 그런 그를 변하게 한 나 자신을 탓했다.
내 친구는 떨어진 내 자존감을 걱정했다. 그를 욕하고 내 편을 들어줬다. 그렇지만 그건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는 정말, 멋지고,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