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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색머리 Nov 21. 2016

어린 남자

그래, 너도 어렸는데.




4.



너를 만났다. 


너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좋아서 나는 네가 좋아졌다. 네가 좋아서 너랑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너와 함께 시간을 나누다 보니 헤어지기 싫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나는 너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좋았다. 


너는 생각이 다양했고 단어가 깊었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그런 네가 좋았다.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네가 어른스럽다고 느껴졌다. 갈팡질팡 삶의 이정표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너는 굳건한 등대가 되어줄 것 같았기에, 나는 너를 따라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나누고 너를 더 많이 알아갈수록, 너는 나에게 등대이고, 방파제이고, 선장이고, 함께 하는 선원이었다가, 파도이기도 하고, 태풍이기도 하고, 부서진 돛이기도 했다. 너는 내 가는 길을 비춰주고, 내 불안을 잠재워주었으며, 손을 잡고 길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가끔 나를 덮치고 뒤흔드는 너의 말과 행동은 나를 망가뜨렸고, 가끔 처참하게 부서진 너의 모습은 차마 눈에 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네가 좋았기 때문에 너는 나의 등대였다. 




인정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고작 나보다 361일 먼저 태어났을 뿐이었고, 너는 겨우 나보다 이 바다에서 일 년 선배였다. 너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내가 너와 사랑에 빠지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었다. 너에 대한 나의 기대나 의존도가 높아졌을 뿐이었고, 너에게의 나의 가치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너는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이었다. 




네가 나를 만나서 더 깊게 뿌리박고 더욱 빛나길 바랬는데, 내가 찾아간 너는 아직 정착하지 못한, 떠다니는 부표 위의 작은 등대였다. 나를 이끄는 파도는 너도 이끌었고, 나를 덮치는 태풍은 너도 덮쳤다. 내 부서진 돛처럼, 너의 등대도 성하지 않았다. 나의 외로움만큼 너도 외로웠고, 내가 지친 만큼, 너도 많이 지쳐있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좋아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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