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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색머리 Nov 27. 2016

외로운 사람들

나에게도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있었으면




6.



우리 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나를 낳았다.






내 첫 남자 친구는 내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내내 나와 함께했다.


나도, 그도, 우리는 서로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 그는 내 애인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 보호자였고, 정말 말 그대로, 내 전부였다. 갓 스물이 넘은 어린 남녀에게 사람들은 자주, 너희 몇십 년은 같이 산 부부 같아,라고 말했다. 사실 설레고 끌리고 애타는 마음은 진작에 소모됬는데 내가 아는 게 그 사람뿐이고 그 사람이 아는 게 나뿐이라 억지로 옆에 끼고 두르고 맞추며 우리는 함께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 이상 학교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홀몸으로 둥둥 떠다니는 내 모습이 자꾸만 상상돼서, 나는 내가 언제든지 돌아가 안길수 있는 품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와 앞으로의 평생을 함께한다고 상상하니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긴 시간 곁에서 함께였지만, 많은 대화 끝에, 결국 우리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길었던 연애를 힘겹게 끝냈다. 


그도, 나도,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그래도 꽤 괜찮은 이별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두렵지만 가벼운 기분으로 혼자 사회에 나왔다.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둔 돈으로 졸업 여행을 길게 다녀오고, 운 좋게도 바로 취직을 해서 회사를 다니고, 또 남는 시간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어딘가 한편이 허전하기는 해도 대학교 졸업과 여행을 통해서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정말이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이나 외로움 따위는 없었다.




그 후 나에게 찾아왔던 모든 사랑은 '내 가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조사였고 면접이었다.


나와 같이 외로웠던 그 사랑은, 


'내가 너 하나쯤은 책임질 능력이 되지' 라거나,

'이정도면 나 꽤 괜찮지 않아?' 라던가,

'너는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될 것 같아' 라거나,

'너를 알면 알수록 놓치기가 싫어져' 라며 저당을 잡으려고 하거나 구매를 권유했다.


그리고 내가 잡히지 않으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반복되는 그 과정에 나는 다시 불안해지고 외로워졌다. 혼자 견디기 힘든 이별이 찾아오면 나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한국으로 향했다. 




나에게도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있었으면, 사랑이 좀 더 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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