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미사 반주자 모집합니다. ]
올해 초쯤, 우리 동네 성당 주보에 반주자 모집한다는 안내문이 실렸다.
‘아. 반주자.... 평일미사 반주자....’ 연락해 볼까 말까 계속 주저했다.
나의 반주 경력은 매우 오래전 경력이다.
시작은 중학생 때였다. 원래 반주하던 고등학생 언니가 병이 났었나, 다리를 다쳤나, 대충 그런 사정으로 반주자 자리가 매우 급하게 공석이 되었는데, 선생님들이 몇 번 메꾸다, 어찌어찌하여 나에게 전담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졸업을 할 때까지 나는 성가대 반주자로 활동했다.
20대가 되어 백수 시절, 어쩌다 엄마랑 새벽미사를 갔었는데, 그때 수녀님에게 붙잡혀 반강제로 새벽미사 반주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반주교사까지 활동이 확장되었는데, 취직을 하게 되면서 관두게 되었다. 대략 6개월 정도 봉사했었다.
20대 후반, 나는 청년단체 중 ‘레지오’라는 기도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 모임에서 하는 봉사활동 중 병원봉사가 있었다. 성당에서 가까운 그 지역 대학병원 원목실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주일미사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이동을 돕고 전례봉사도 함께 하는 일이었다. 원래 그 미사에 매번 반주봉사 하시던 자매님이 있었는데, 이사 가시면서 공석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넘어왔다. 결혼하고 레지오 모임을 관둘 때까지 대략 3년 정도 봉사했다.
그 이후로는 대략 10년 넘게, 나는 건반이란 것을 만져본 경험이 없었다. 20대 중반에 잠시, 오르간 레슨을 6개월 정도 받아본 경험이 있지만, 고작 6개월이었고, 그것도 15년이 흘렀다. 어린 시절 했던 반주는 모두 키보드였고, 오르간 반주 경험은 백수시절 새벽미사 반주 6개월이 전부였다.
이런 내가 평일미사 오르간 반주를 해낼 수 있을까.
그러다 피아노 개인레슨 등록을 하게 되었고, 집에 디지털 피아노를 사게 되었고, 내친김에 용기를 내어 평일미사 반주자에 도전했다. 성당 주보 안내문에 적힌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 반주단장님과 만났다.
나에겐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미사>의 반주 임무가 주어졌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반주 단장님이 매번 미사에 오셔서 봐주셨다. 다른 성당은 보통 2층 성가대석에 오르간이 위치해 있는데, 우리 동네 성당의 오르간은 제대 오른쪽 맨 앞에 있었고, 신부님과 매우 가까웠다. 신자들과는 등지고 앉아 반주를 하게 되어 등과 뒤통수는 매우 따가웠고, 신부님과 가까운 탓에 매우 매우 부담스러웠다. 오르간소리는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처음 한 달은 손만 떨리는 것이 아니라 다리까지 덜덜 떨렸다. 당연히 실수 남발이었고, 관두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정 많은 단장님께서 처음엔 다 그렇다며 날 다독여주셨고, 꼼꼼히 손가락번호 메모하며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일타강사처럼 핵심위주의 속성레슨을 1시간 정도 해주셨고,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갔다.
3개월 정도 지나 반주에 제법 익숙해지고 나니, 나에게 또하나의 임무가 추가되었다.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미사>의 임무였다. 아니, 일요일 새벽 6시라고?? 나는 전혀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반주하다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어쩌나, 늦잠으로 미사에 지각한다거나 펑크라도 내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지만, 해보기로 다짐하고 나에게 온 기회를 감사히 받았다.
이제 반주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다 보니 여유가 생겼다. 실수를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게 되었고, 자주 만나는 전례 자매님, 다른 봉사자분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게 되었다. 지난 주일미사 마치고 나오는 길엔, 보좌 신부님께서,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났냐며 고맙다고 인사도 해주셨다. 나는 보람되고 감사하게 나의 봉사를 해내고 있다.
엄마는 성당활동하시며 많은 봉사를 하셨다. 구역장, 여러 봉사단체의 단체장, 연령회원, 이것저것 많이도 하셨다. 그 덕에 코로나19 첫해에 장례를 치르는 데도, 정말 많은 성당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그 은혜는 도무지 갚을 길이 없다.
갚을 길은, 나도 엄마처럼, 그분들처럼, 감사히 봉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가대가 없는 평일미사는 다소 밋밋하고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들을 감싸는 오르간 소리가 성당에 채워지면, 고요함은 거룩함이 되고 그 안에 경건함과 감사의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다. 그럴때면 나는, 나의 하찮은 재주로 큰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히 해내며,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간다.
내일이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이다. 늦더위가 조금 물러가고 나면, 15년 만에, 오르간 레슨을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잘해보고 싶다.
엄마.
예전에 집에서 피아노로 성가 반주 연습할 때면, 반주에 맞춰 따라 부르던 엄마 목소리, 나는 기억해.
엄마랑 미사 함께 하고 집에 오는 길이면, 그날 불렀던 성가 흥얼거리며 골목길 걸어오던 그때,
그 따듯하고 평온했던 기억이, 나는 너무 소중하고 애틋해.
엄마처럼은 못하겠지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소임을 잘 해내고 있을게.
성당에서 반주하는 내 뒷모습, 항상 지켜봐 줘. 잘했다 애썼다 응원해 줘.
사랑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