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951년생이셨다. 그 시대에 태어난 엄마들은 모두 알뜰살뜰 살림하셨다. 물과 전기를 절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옷은 양말과 속옷까지 모두 구멍을 매워가며 입으셨다. 전쟁 후의 빈곤을 겪고,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 IMF시대를 살며 전부를 잃어본 엄마세대는 궁상맞다 싶을 만큼 아끼고 아껴가며 사셨다.
나의 엄마는 물이 아까워 양변기 물을 매번 내리지 않으셨고, 길에 누가 깨끗한 것을 버리면 주워와 사용하셨다. 나 역시 그런 엄마를 궁상맞다 생각했다. 없이 살 때는 가난했으니 그렇게 산다지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무얼 저렇게 애쓰시며 살까. 그런데 요즘의 나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나 인스타를 보면 예쁘게 집을 꾸며놓고, 살림노하우라며 이것저것 올려놓는 사람들이 참 많다. 관심 있게 보다 보면 매우 편리한 살림 아이템도 많고, 청소노하우도 제법 신기한 것들이 많아 자주 찾아본다. 그런데 예쁘고 깔끔하게 살림하기 위해 구매하는 아이템들 중에는 과연 저것들이 꼭 필요한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아이템들도 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나는 살림살이 수납이나 정리를 할 때, 기존에 있던 것들 중 쓰지 않는 것들을 활용하는 편이다. 안 쓰는 큰 스텐솥은 튼튼하고 손잡이도 달려있어 무거운 것들을 수납하기에 좋다. 한*림 귤박스는 주방에서 양파나 감자, 당근 등 실온보관 채소들을 담아두기에 사이즈가 좋다. 교*치킨 쇼핑백은 비닐봉지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아 보관한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금가고 깨진 반찬통은 화장대서랍에 머리핀이나 액세서리 등을 담는 용도로 쓴다. 약상자에다 넣어두고 알코올솜이나 밴드, 각종 연고들을 보관하는데 써도 사이즈가 알맞다.
굳이 새것으로 수납함을 사지 않아도 살다 보면 이것저것 하자가 생겨 쓰임을 다한 물건들이 생긴다. 그것들을 재사용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매립과 소각에서 발생되는 유해물질을 덜 발생시킬 수 있다.
나는 가구나 비품들을 살 때 나무를 선호하는 편이다. 집성목이나 MDF도 좋다. 이들의 장점은 분해가 가능하다. 나는 머리를 굴리고 남편은 전기드릴을 충전한다. 회사에서 사용하던 모니터받침대와 자투리 나무판을 이용해 욕실 앞에 수건함 올려둘 작은 선반을 만들었다. 사이즈가 우리 집에 딱 맞아 만족스럽다.
작은 책장으로 사용되던 나무를 분해해 컴퓨터 책상 옆 선반을 만들었다. 낡은 나무는 오일칠이 군데군데 벗겨졌지만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무는 흠집이 나고 모서리 부분이 까져도 그마저 자연스럽게 보인다. 어느 가구와도 잘 어울리고, 어디에 배치해도 혼자서 튀지 않아 좋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자세가 이랬다 저랬다 엉망이 된다. 발밑에 고아둘 발받침대가 있으면 편할 것 같아, 받침대로 쓸만한 상자가 없을까, 집안 살림을 이리저리 뒤져보는데, 남편이 뭐 하냐고 물어왔다. ‘책상에 앉아있을 때 쓸 발받침대가 뭐 없을까?’ 물으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반가워하며, ‘내일 회사에서 가져다줄게’ 대답한다. 남편이 가져온 것은 빨간색 목욕탕 의자였다. 얼마 전 퇴사한 여직원이 책상에서 일할 때 발받침용으로 쓰던 욕실의자인데, 퇴사 후 주인을 잃고 탕비실 구석에 있던 걸 남편이 슬쩍 가져온 것이다. 어차피 곧 버려질 의자였는데, 나보고 잘 쓰라며 깨끗이 닦아주었다. 이런 플라스틱 소재는 재활용이 어렵다. 땅에 묻혀 미세플라스틱이 될 때까지 부서지고 흩어져 땅과 물과 대기를 오염시키겠지. 내가 잘 사용해 줘야겠다.
엄마는 침대에 매트리스를 깔지 않고 요솜을 깔고 주무셨다. 매트리스는 뭔가 찝찝하다 하셨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집이 작아 좌식생활을 하며 살았고 밤엔 이불을 깔고 자고 아침이 되면 이불을 개고 바닥에서 생활하는 방식이었다. 집이 넓어지고 엄마의 무릎이 삐걱거리기 시작하자, 엄마는 어디서 침대를 구해와 그 위에 요를 깔고 주무셨다. 솜은 대부분 목화솜이었다. 목화솜은 세탁을 하지 않고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 몇 년에 한 번씩 솜틀기를 해오면 엄마는 이불커버를 직접 새로 교체하는 바느질을 하셨고, 그렇게 이불관리를 하며 지내셨다.
나도 결혼 후 내 살림을 마련할 때 목화요솜을 사서 바닥에 깔고 잤다. 신혼 첫 집은 집이 작아 침대를 둘 데가 없었다. 두 번째 집에서 침대를 마련했는데, 나 역시 엄마처럼 매트리스가 너무 크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빨 수도 없고 햇볕에 말릴 수도 없는 매트리스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것일까. 기존에 쓰던 목화요솜을 그대로 침대 위에 깔고 자보았는데,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그래도 혹시 등이 배길지 모르니 그 위에 하나 더 깔라며 엄마가 쓰던 남는 요솜을 새것처럼 솜틀기 하고 요커버를 교체하여 가져다주셨다. 나는 그 요솜들을 10년이 넘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목화솜은 보통 평생 쓴다고 한다. 몇 달에 한 번씩 햇볕에 말리고 바람맞게 해 주면 금방 솜이 포근포근 살아난다. 5~6년에 한 번쯤 솜틀기를 해주면 새 솜이 되어 돌아온다. 물론 솜틀기 가격이 많이 올랐다. 그 돈이면 새 이불을 사도 될 만한 가격이다. 하지만 내가 잘 관리하고 공들여 사용하면, 쓰레기가 되지 않고 오래오래 쓸 수 있다.
옷장을 열어보면 옷걸이가 알록달록하다. 여기저기서 굴러온 옷걸이들은 크기 모양 색깔이 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사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통일되지 않은 옷걸이가 맘에 안 들어 굳이 그것들을 다 버리고 새 옷걸이로 교체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정 보기 안 좋다면, 비슷한 모양 색깔 크기들을 모아 배치하면 그나마 좀 낫다. 물론 새것이 깔끔하고, 색깔과 모양을 통일해 배치하면 보기 좋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보기 좋으라고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것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보기 좋기 위해 쓰레기를 배출하기보다는, 깨끗이 관리하고 단정히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한다. 궁상맞다 싶었던 엄마의 모습, 굳이 불편하게 그렇게 까지 해야 되냐며 타박했던 엄마의 모습들이 지금의 나에게서 이따금씩 발현된다. 도무지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엄마의 생활습관들, 단정하고 깨끗했던 엄마의 살림살이들은 귀한 유산이 되어 내 안에 남아있다. 미니멀라이프가 별거인가. 멋지게 영어로 이름 붙였을 뿐, 엄마들의 단정한 삶은 그 자체로 본받을만한 미니멀라이프이다. 불필요한 것들은 줄이고 적게 소유하는 것, 새것을 사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는 것, 새것은 아끼고 귀하게 사용하여 최대한 그 쓰임이 다 할 때까지 쓰는 것, 대수롭지 않고 별것 없는, 우리의 엄마들이 살던 방식 그대로가 미니멀라이프다.
엄마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짐들을 정리하며 매우 많은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게 되었다. 한 인간의 삶이 소멸되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이 버려진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나는 평소에도 환경이나 자원 등에 대해 관심이 있고 가끔 성찰해보기도 하였는데, 두 분의 장례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되돌아봄의 기록으로 ‘미니멀라이프’라는 제목의 글을 3편 써보았다. 누군가에겐 이 글이 불편할 수도 있고,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트럭으로 실려 가는 폐기물들을 보았던 나의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한숨짓게 한다.
이제는 그만 한숨짓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나의 집과 나의 공간을 단정하고 알뜰히 채워나가야지.
나의 엄마처럼, 우리들의 엄마처럼.
멈추지 않는 미니멀라이프 Minimal Life.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