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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Aug 28. 2024

여름 단상

단상斷想 -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여름이 시작될 무렵, 5월 6월 내내 동네골목이 시끄러웠다. 아침 이른 시각, 대략 8시 전부터, 중장비가 오가는 소리, 트럭의 후진 알림음, 작업자들의 발소리 호루라기 소리 등등이 들려왔다. 골목마다 붙은 하수관로 정비사업 안내문의 그 공사가 시작되었다. 골목마다 구역을 정해 하루씩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은 앞길, 내일은 뒷길, 그다음 날은 옆길, 옆 옆길. 이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성당을 가다 보면 어느 날은 그 구역 골목이 작업 중이었고, 운동하러 체육관에 가다 보면 그 동네 골목도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장마철이 시작되고 큰비가 내리기 전, 노후 하수관 교체공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작업자들은 참으로 부지런히 각자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별일 없이, 무탈히, 장마철을 넘겼다.     


6월 말~7월 초에 걸쳐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 다녀왔다.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이 목표였으나, 제주에 북상한 장마전선은 우리와 한라산 사이를 갈라놓았다. 하지만 오락가락 비바람과 구름 낀 하늘의 제주 역시 아름다웠고 걸을 만했다. 떠나기 전날 오후부터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고, 마지막 날엔 눈부시게 아름다운 쪽빛바다를 보고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7월의 제주는 처음이었다. 쪽빛바다의 '쪽빛'이 무슨 색인지 제대로 보고 올 수 있어서 감격스럽고 감사했다. 지금도 나는 그 바다가 잊히지 않는다. 꼭 다시, 그 쪽빛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7월 1일, 내가 제주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을 때, 서울 한복판 시청역 근처에선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너무나 평범했을, 우리 모두의 어제와 내일과 다르지 않았던 그들의 귀갓길에, 그들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갔다. 여름의 시작을 너무나 아프게 맞이했을 그들의 유가족, 친구 지인 동료들, 사고 후에도 그 현장을 지나며 일상을 살아 내야 할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늘로 데려가신 9명의 희생자들에게, 꼭,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아멘.


7월 중순 이후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34도, 35도, 36도의 찜통더위, 연일 계속되는 기록경신, 역대 최장 열대야, 굳이 뉴스기사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체감되는 날씨였다. 말 그대로 '역대급 무더위'라는 단어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추를 지나고 말복이 다가오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았다. 8월 중순이 되면 태풍 대여섯 개가 연달아 오며 무더위를 몰아내는 법인데, 무더위가 태풍을 이겨버려 태풍이 죄다 일본열도를 강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불행인가 다행인가.

그 와중에 열심히 살아서 도착해 준 태풍 종다리는 제법 많은 비를 뿌려주었다. 광복절이 지나고 개학을 맞이한 어린이들은 단단히 우산을 꼭 붙들고 학교에 갔다. 며칠 비가 오더니, 드디어, 모기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왔다. 역대급 무더위에 모기도 죄다 타 죽어 버린 것 같은 날씨였으나, 그래도 태양과 달과 우주는 제 할 일을 하며 처서매직을 실현시켜 주었다.    

 

낮에 창문을 열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으니, 바람의 변화가 느껴진다. 지난 일요일, 새벽미사 반주를 하러 5시 40분쯤 집을 나서는데 분명, 공기의 질감 혹은 냄새 혹은 결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새벽공기가 달라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며칠 전, 한강 길 걷기 운동 1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뚝뚝 떨어지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 한 자락에서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그래, 정말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   

  

어제, 8월 27일은 모니카 축일이었다. 둘째 언니와 조카와 남편과 함께 엄마의 연미사를 드리고 왔다. 그리고 다음 주면, 엄마의 기일, 벌써 4주기다.     


무더위가 너무 버겁고 힘들어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도, 엄마의 축일과 기일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는 여름을 붙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또한 내가 넘어야 할 나의 파도겠지.

몸도 마음도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 말고, 나의 이때를 잘 보내야겠다.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이때, 앞 뒤가 맞지 않는 모순矛盾의 시기.     

기어코, 기어이, 마침내, 여름이 가고, 엄마를 아프게 보내줘야 했던 그때가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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