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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Oct 12. 2024

나쁜 꿈, 슬픈 꿈, 그저 엄마 꿈

나는 가끔 몸이 많이 아프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러니까 한마디로 심신이 지쳐 있을 때면, 악몽을 꾼다. 그럴 때 꾸는 악몽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첫 번째 악몽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꿈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 아니었고, 엄마도 성적에 대해서는 크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다. 한마디로 나는 입시스트레스, 학업스트레스 별로 없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보냈는데,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주로, 수능시험장을 못 찾아 헤매거나, 수능시험장에는 들어갔으나 시험 볼 교실을 못 찾거나, 교실은 찾았는데 내 자리가 없거나 뭐 그런 식으로 계속 수능시험장에서 우왕좌왕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다 잠에서 깬다.

두 번째 악몽은, 길을 잃는 꿈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시장 근처에서 길을 잃은 적이 한번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큰 트라우마였나 보다. 꿈속에서 나는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기만 하고, 아무리 열심히 가도 가도 아까 갔던 그 길만 다시 만난다. 그러다 울기도 하고 벌벌 떨기도 하다 잠에서 깬다.

또 자주 꾸는 꿈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번호가 계속 안 눌리거나 잘못 눌려서 전화를 할 수 없는 꿈이다. 예를 들어 남편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열면 전화번호가 다 삭제되어 있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누르려고 숫자를 누르면 나는 분명 2를 눌렀는데 4가 눌리고, 천천히 차근차근 번호를 눌러 통화버튼을 누르면 번호가 다 지워져 버린다. 그럼 꿈속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 울고 소리 지르고 핸드폰을 집어던지기도 하다가 꿈에서 깬다. 

이런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다시 자면 비슷한 꿈을 또 꾼다. 그런 날이면 어떻게 해서든 심신을 회복하고자 애를 쓰고 몸과 마음을 환기시키려 이것저것 새로운 자극들을 만든다. 그러다 몸과 맘의 컨디션이 좀 돌아오면 비로소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뒤, 나는 위에 말한 악몽들 보다는 엄마 꿈을 자주 꾸었다. 

엄마가 꿈에 나올 때면, 나는 많이 힘들었다.      


꿈에서 만난 엄마는, 아픈 모습이었다. 백혈병 투병당시 엄마는 다리 쪽에 종기 같은 피부병이 생겨 무척 힘들어하셨다. 어느 날 꿈에서 만난 엄마의 모습은, 그 피부병이 온몸에 번져 끙끙 앓고 계셨다. 나는 꿈속에서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울었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참을 울었다. 

또 어떤 날은, 엄마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의 행색처럼, 삐쩍 마르고 초췌한 얼굴에 머리털이 듬성듬성 몇 가닥 남아있는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할딱거리며 숨 쉬고 계셨다. 그런 모습의 엄마를 꿈속에서 만나고 깨어났을 때의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날은, 꿈에서, 엄마가 살아 돌아왔다. 꿈속에서도 얼떨떨해하며, ‘우리는 분명 엄마 장례를 치렀는데, 엄마가 살아 돌아왔네, 엄마 사망신고도 다 했는데, 엄마가 살아났네.’ 중얼거렸다. 엄마를 보고 엄마를 만지고 엄마랑 이야기하며 ‘엄마 이제 안 아파?’ 묻고 서로를 어루만졌다. 그러다 나는 꿈속에서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엄마 그러면 다시 아파져야 하는 거야?’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살아 돌아와서 너무 좋은데, 엄마가 그 병을 다시 겪고, 다시 아프고 다시 헐떡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 다시 죽어야 하는 건가. 그걸 우리는 다시 봐야 하는 건가. 그 생각이 밀려와 엄마를 붙잡고 또 엉엉 울었다. 그렇게 울다 잠이 깼다. 한동안 그런 꿈을 반복해서 꿨다.

또 어떤 날은, 꿈속에서, 엄마가 그렇게 아픈데도, 어디 나들이를 가겠다고 누구누구 아줌마랑 약속을 했으니 나들이를 가야겠다고 한참을 우겼다. 나는 안 된다고, 아픈 사람이 어딜 가냐고 엄마의 짐을 뺏고, 엄마는 다시 짐을 싸고,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꿈에서 깨기도 했다.     


그렇게 대략 3년 정도, 그런 모습의 엄마 꿈을 꾼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그날도 꿈속에서 엄마는 살아 돌아왔다. 엄마가 진료받으셨고 장례를 치렀던 병원 근처를 지나면서 ‘엄마 여기서 아팠던 거 기억나? 우리 여기서 엄마 장례도 치렀었어. 근데 엄마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네. 엄마가 이렇게 내 옆에 있네. 근데 엄마, 그러면 다시 엄마 아파야 돼? 엄마 다시 아프면 우리 어떻게 해? 엄마 그때 정말 많이 아팠는데, 엄마 그렇게 다시 아파지면 안 되는데.’ 하면서 엄마를 끌어안고 길가에서 엉엉 울었다. 근데 엄마는 울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엄마 걱정 말고 너는 니 인생 살아. 너는 그냥 살면 돼. 살아.’ 하셨다. 그러다 꿈에서 깼고,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파 펑펑 울었다. 그 뒤로 한동안 엄마는 내 꿈에 나오지 않으셨다.     


요즘도 엄마는 내 꿈에 자주 나온다. 요즘 내 꿈에 나오는 엄마는, 그냥 평상시의 엄마다. 아프지도 않고, 아팠던 기억도 없고,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닌, 예전의 엄마다. 꿈속에서 나는, 큰언니가 내 가방을 뺏어갔다며 엄마에게 투덜거리기도 하고, 남동생이 나를 괴롭혀서 엄마한테 고자질하기도 한다. 엄마가 건강하셨을 적 지내던 엄마 집에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기도 하고, 치킨을 시켜 먹기도 하고, 계단에 있는 화분들을 정리하고 계신 엄마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엄마는 일상을 사는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난다.     


꿈은 그저 꿈 일뿐, 해몽 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났든 상관없이, 엄마는 천국에서, 아름다운 꽃밭에서, 하느님 나라에서 편히 계실 테니, 믿어 의심치 않으니, 나는 엄마의 말처럼 그저 내 인생을 살면 된다. 

아픈 기억, 슬픈 기억, 고통스러웠던 기억, 그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남아 꿈을 꾸고 깨우고 발버둥 치게 하지만, 그 기억을 잘 다독여가며 나는 또 살아내야지. 행복했던 기억, 사랑했던 기억, 웃고 떠들고 서로를 품에 안고 냄새 맡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는 나의 삶을 잘 살아내야겠다.   

   

가을이 깊어간다. 

엄마가 있는 하늘나라에도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물들겠지. 

오늘은 엄마와 단풍 구경 가는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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