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방울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근 한 달 동안 제일 흥미롭게 읽었던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책으로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꿈을 찾아 떠난다는 소재의 진부함을 탈피하고자 파울로 코엘료가 선택한 배경,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 속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문명의 활로를 띈 스페인, 포르투갈 지역에서부터 지브롤터, 모로코를 따라 이집트까지의 경로는 신선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새로운 기분을 환기한다. 별빛이 내리는 사막, 오아시스, 덩그러니 놓인 밤하늘 아래의 나무 한 그루, 이 책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가 영웅의 모험담을 읽는 것 같은 설렘을 선사했다. 코엘료는 집중적으로 10년 전 혹은 20년 전, 잊어버렸을듯한 낭만적인 서사를 통해 우리를 공략하고 있다.
#산티아고의 꿈과 주변인
주인공 산티아고의 꿈은 나름(?) 소박했는데, 양치기 소년으로써 세상을 탐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여정이 진행되면서 그가 품은 꿈과 희망, 보물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산티아고는 이 여정 속에서 그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그와 마주치고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산티아고에게 길을 제시하면서 안내하는 인도자와 같은 역할도 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거의 전능한 사람들처럼 그의 길을 빛내준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산티아고에게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 이런 성인군자 같은 사람들이 길을 안내해준다면, 특히 꿈과 일관되며 지지해주는 사람을 지칠 때마다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들이 스친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일 테다.) 하지만, 아쉽다면 아쉬운 대로 우리는 그들이 꿈에 대해 제시한 현명한 생각들을 엿보면서 조금씩 취해보도록 하자.
#살렘의 왕, 멜키세덱
'자아의 신화는 자네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바로 그것일세.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 주지.'
(-중략-)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연금술사 中-
양치기 산티아고를 처음 일깨운 것은 멜키세덱이었다. 그는 산티아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며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멜키세덱은 지속적으로 '자아의 신화'를 언급한다. 드넓은 세계를 탐험하고 싶은 마음과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에서 기인하는 두려움이 상충하는 산티아고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멜키세덱이 강조한 '자아의 신화'. 꿈(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신화라는 단어의 의미가 갖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성스러움, 기록해나갈 역사는 결코 거창하고 과장한 것이 아닌듯하다. 우리가 누구나 갖고 있는 꿈은 무궁무진하고 성스러우며 유일한 기록이라는 자아의 신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아의 신화는 어떤 순간, 불가항력적인 힘에 부딪힌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산티아고처럼 한 생활에 정착하면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고, 잃을 것은 더 많아진다. 꿈에 근접하여 삶을 설계했더라도 꿈은 마치 신기루 같아서 더 이상 나아가면 위험해질 것 같고, 이뤄놓은 것을 잃을 것만 같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 순간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본인도 분명 그럴 것 같다. 작게나마 아름다운 꿈을 꾸고 멋진 미래를 그려놓았지만, 어느 순간 유랑선처럼 그 주위를 떠다니지 않을까.
멜키세덱은 이런 우리를 위해 독려한다. 우주의 진실인 이것은 '무언가를 온 마음으로 원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듣기만 해도 황홀하다.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세상.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게 필연적이 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 땅에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것. 마치 내가 그것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그의 독려는 진부하지만, 모든 동기부여의 시작은 이런 것이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