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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Sep 27. 2021

우리의 애러비-1

애러비

#사춘기를 겪는 소년 

 중2병이라고도 불리는 사춘기를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라고 칭한다면, 우리는 다른 말로 인간으로서 성장이라는 첫 단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별의 인간과 교류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이는 상당한 자질을 요한다. 인내, 배려, 올바른 가치관, 존중. 이전까지는 어쩌면 결여되어있었던 것들이지만, 이성과의 조심스러운 교제로 하나둘씩 배우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사춘기를 겪는 소년의 소심한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순수함과 무지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아직은 덜 농익은 성인이 아닌 소년의 어수룩함으로 독자의 취기 어린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아일랜드의 목가적이고도 평화로우며 화목한 분위기를 더해 낭만적이기까지 한 배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소년은 사춘기를 겪음에 있어 항상 시련이 다가오기 마련임을 제임스 조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이성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과 더불어 찾아오는 성장의 관문은 아마도 이 시기에는 크나큰 벽일 것이다. 그의 소설 <애러비>를 통해 사춘기를 겪는 소년의 스토리를 들여다보자. 


#짝사랑을 겪는 소년

 '나'라고 하는 어린 소년은 맹간(Mangan)이라는 친구의 누나를 짝사랑하고 있다. 물론 그의 말투나 행동은 맹간네 누나도 알만큼 어설프다. 하지만 그의 순수한 흠모의 마음은 독자들에게 아이다운 면모로 시선을 옮기게 하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맹건네) 누나가 문간 층계로 나오면 가슴이 뛰었다. 나는 현관으로 뛰어가 책을 집어 들고 누나 뒤를 따랐다. 누나의 갈색 형체를 줄곧 눈으로 좇다가 각자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께 이르면 걸음을 빨리해서 누나를 앞질러 나갔다." -애러비 中-

 정말 순수하고 어쩌면 귀엽기까지 한 '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랬을 법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사춘기 소년 때 이런 행동은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이성이 하교하기를 기다렸다가 얼굴을 보고는 하루를 기쁘게 마친 아이처럼 웃으며 집에 가거나, 조금 더 용감한 친구는 앞질러가서 멈춰서 인사를 건네고는 했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 순간에 '나'라는 소년의 시점으로 들어간 것만 같다. 


 "마침내 맹건네 누나가 말을 걸어왔다. 누나가 내게 첫마디를 걸어왔을 때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나는 내게 '애러비'에 갈 거냐고 물었다. 대답을 간다고 했는지 안 간다고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애러비 中-

  한 장면만 더 보자. 마침내, 좋아하고 있던 맹건네 누나가 말을 걸어왔다. 이전에는 어쩌다 몇 마디하는 것 외에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녀의 첫마디에 말 그대로 얼어버렸다. 여기서 '애러비'는 가상의 공간으로 중동의 시장을 뜻하는 *바자르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애러비를 통해 맹간네 누나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나'의 이야기가 이후로 이어진다.

 제임스 조이스는 사춘기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관심이 있는 이성을 대하며 성장하는 방식을 설명함에 있어 '내가 무엇을 해주면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질까'라는 원초적이면서도 기초적인 발상을 통해 순수했던 사춘기적 사랑의 모습을 그대로 독자에게 돌려주고 있다. 맹간네 누나와 말을 섞은 이후 수업에는 집중할 수도 없고, 생각이 더 많아진 '나'는 애러비를 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에 매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초조해한다. 

 마침내, '나'는 애러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맹간네 누나에게 선물을 해줄 들뜬 마음을 안고 애러비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성장을 겪는 소년

 '나'의 애러비는 전적으로 맹건네 누나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수단이다. 맹건네 누나에게 어떤 것을 선물함으로써 자신과 그녀의 관계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고 한다. 하지만 저녁 늦은 시간 도착한 애러비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내가 들어선 큰 홀은 중간 높이쯤에 회랑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매점은 거의 문을 닫았고 홀의 대부분이 어둠에 싸여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교회에 감도는 것과 흡사한 정적이 문득 느껴졌다." -애러비 中-

  어둡고 고요하며 매점이 모두 닫은 애러비의 모습은 사춘기 소년의 황홀감과 기대감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라는 듯 냉담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의 이 우려를 떨쳐 놔 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을 남겨놓은 '가요 카페'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친절한 환대 속이 아니며 핏기 어린아이의 동심과 축제 혹은 바자르에서 느낄 수 있는 활기찬 분위기가 아닌, 속세에 물들어 이미 때를 지난 어른들의 시큰둥하며 냉소적인 모습들, 담배 연기가 자욱할 듯한 무거운 분위기는 '나'가 가진 모든 환상을 모두 깨버린다. 


"나를 보자 처녀가 내 쪽으로 건너와 살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말투가 심드렁한 것이 그냥 의무감에서 건성으로 말을 던져 본 눈치였다. ---(중략)---- "아뇨. 됐어요."---(중략)--- 회랑 한 끝에서 불이 나갔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홀의 윗부분은 어느새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그 깜깜한 속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허영심에 쫓기다 꼴불견이 되고 만 푼수 같은 내 모습에 두 눈이 참담함과 분노로 이글거렸다."  -애러비 中-

 마지막 '나'의 독백은 이 애러비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허영 된 것이 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푼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것을 권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비단 사춘기뿐 아니라 우리가 성장하는 평생의 기간 동안 허영은 우리 주변을 쫓아다닌다. 이를 하나의 인간의 욕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혹은 지양하느냐는 차치하고, 우리는 허영심을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작 속의 '나'는 마지막 독백으로부터 거대한 환상과 이상을 좇던 것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허영심이었음을 고백하며 참담함을 느낀다. 이는 사춘기 소년이 맹목적이고 분별없는 행위에서 어둠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깨닫고 사유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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