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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Jan 06. 2022

불행과 행복의 공존

스토너

# 새롭지 않은 스토리

 <스토너>는 스토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새로운 이벤트들이 등장은 하지만, 흐름을 전환하는 것이 아닌 살을 이어붙이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고루하고 지루하며 정적인 이벤트들이 흘러감에 따라 이 책을 마치게 되면, 이 책이 2021년 최고의 책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새롭지 않은 스토리를 엮어 낸 이 <스토너>가 대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 불행한 남자 이야기

 스토너는 대학의 영어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로 뽑힐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또한, 아름다운 아내도 있고, 사랑스러운 딸을 가진 그는 누가봐도 번듯하고 행복한 남자인데, 불행하다니? 실상은 그의 겉모습이 아닌 저 깊은 마음 속 상처에 있다. 아름다운 아내는 히스테릭한 기질로 항상 스토너를 괴롭히며 사랑이 아닌 하나의 가정이라는 의무조건아래 그를 대한다. 스토너 순수하고 소극적인 모습은 아름다운 여자를 위해 희생했지만, 결국 아내의 알 수 없는 회피와 하대에 희생당하는 것은 그의 정신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 누구보다 딸을 아꼈던 것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아내가 아니라 모든 짐을 떠 안은 스토너였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딸을 아끼고 있으며 그의 교육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그는 무기력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집 안에서 그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었으며, 종국에 그가 병으로 눈을 감을 때, 아내의 배가 불러오는 것. 그리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학과 내에서 벌어지는 파벌싸움과 그를 괴롭히는 세력. 그는 과연 번듯하고 행복한 남자일까?


# 행복한 남자 이야기 

 그럼에도 스토너는 행복하다. 전혀 아내라고 생각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밀려나는 그였으나, 그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있었으며, 사랑일지도 모르는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작고 사랑스러운 딸은 항상 아버지 스토너를 사랑했고, 그는 그녀가 나이를 먹은 후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이 시간들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겼다. 


 스토너는 항상 자신의 본업에 최선을 다했다. 집필하고 싶었던 책을 냈을 때는 누구보다 기뻐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순간에는 희열을 느꼈다. 오히려 아내가 자신을 멀리하고 그녀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스토너 자신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묘한 합리화마저 그에게는 진심으로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그리고 스토너는 아내의 핍박 속에 진정 사랑을 만난다. 대학에서 자신의 수업을 청강하던 여자와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하기에 이른다. 내편이라고 믿을 만한 여자가 그의 옆에 반듯이 선 것이다. 불륜이라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음에도, 스토너 개인의 모습만 보자면 이토록 그의 순간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과연 그는 불행한 것일까 행복한 것일까.

 

# 범작이라 부를 만한 가치

 <스토너>는 항상 주인공 스토너를 기대에 찬 순간을 길지 않게 가져가며 다시 좌절로 진행시킨다. 어느 덧 그의 인생은 항상 -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좌절을 특유의 순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벗어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원하는 일 열정과 애정을 쏟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의 명이 다하면서 책이 끝날 때, 먹먹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이 소설이 지닌 우악스럽고 고집스러운 상황 속에서 드러난 감정들의 집합 때문일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거부감은 점차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어쩌면 그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감정으로 변하는데, 이 소설이 이상하게도 은연중에 벅찬 감정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감정을 교차시키는 이 소설은 평범한 스토리 속에서 인생의 행복과 슬픔이, 행운과 불행이 항상 공존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대단하지만 답답하고 거칠지만 우아한 작품으로써 범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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