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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11. 2023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를 봤다. 평이 높아서 예고 없이 보게됐는데 며칠이 지나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내가 예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걸 알려줘서인 것 같다. 아니 실은, 사랑했다기보다 조금 흉내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들의 얼마 안 되는 멋진 부분만 뽑아서 내것으로 삼고 싶어서였다. 다른 사람들과 절대로 통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부분을 하나쯤은 만들어 놓고싶은 심보였는지도 모른다. 타인이 나를 이해 못하길 바라면서 정작 이해해주지 못했을 때는 슬펐다. 그러면서 또 다시 이해받지 못할 사람이 되고만 싶었다. 그게 나를 특별하게 해줄 것만 같았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민망하다.


언제부터 그런 시절을 잊고 지냈는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를 봤다고 다시 그걸 잊지 않는 삶을 살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난 계속 잊을 거다. 잊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거다. 그게 조금 더 편할지도 몰라서다. 조금이라도 더 튀지 않게 해주고 나를 안전하게 해줄 것 같아서. 무엇에든 미친듯이 매료되는 것보다 안전한 것에 더 끌리는 시기도 오는 거라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난 더이상 동요하고 싶지 않고 복잡하고 싶지 않고 그런 게 온다 하더라도 금방 이겨내고 싶다. 그런 인간이 강하고 건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 생각이다.


근데 자꾸만 잘못을 하는 기분이 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딘가에 조금씩 잘못을 저지르고 사는 기분이 든다. 매일 그런 건 아니고 가끔씩 이런 게 훅 찾아올 때가 있다. 내가 뭔가에 잘못을 하며 사는 기분. 그래서 아주 잠깐동안은 당당해지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때. 어떤 말을 해도 가식 같고 위선같고 포장하는 것 처럼 느껴지게 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도 잘못한 감정을 감추려고 화장이 번진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말이다.


<파벨만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는데 며칠 내내 이런 생각들이 떠나질 않는다.

어쩌면 난 영화에 매료됐다기 보다 한 사람을 보고 부끄러운 감정을 느껴서인것도 같다. 그래서 잘못한 것도 없이 잘못한 것만 같고 나는 절대 이 잘못을 벗어난 삶을 살 수 없는 인간인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그냥 조금 '어른 답게'사는 것 말고는 자신이 없어진다. 그나마 자신 부릴 수 있는 게 어른 '처럼'사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외로워지기도 한다. 그마저도 힘든일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토닥이기까지 하겠지? 자기개발서나 에세이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들 처럼 말이다.


영화에 대한 스포는 안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보지 않고는 말 할 수 없는 영화고, 보지 않은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는 영화며 보아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화다. 여기서 몇 자 찌끄려봤자 어른 '처럼' 사는 내게 살짝 살짝씩 반하는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이야기 하고 싶은 , 현실과 영화를 동떨어진 세계로 보고싶어진다는 거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영화나 , 노래같은 것들로 도피하는 습관들이 있었다. 언젠가부턴 그게 잡다한 공부로 바뀌기도 했지만 여전히 예술은  하나쯤 도피할 구멍은 넉넉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예술을 사랑했던 건데 내가 예술 없이는  사는 예술가라 사랑한 거라고 착각하며 살고 싶었던  같다. 그냥  살다가 힘들 때면 어쩌다   예술에게 위안같은 거나 받는 그저 그런 어른일뿐인데.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우선했나보다. 현실에선 현실을 살고 영화에 빠지고 싶을  빠지면 된다. 굳이 도피처로 생각할 것도, 그렇다고 아주 밀어낼 것도 없다. 현실과 영화   서로에게 해결책은 되어줄  을 거다.


난 앞으로도 의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같은 사람이 만든 예술품을 보고 감동 받고 위로 받고 의지하고 가끔 리뷰라고 떠들어대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을, 어른이 될 거다. 절대로 시청자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시청자로만 남으려 했으면서 시청자 이상의 애정이 있었던 것처럼 살았던 시절이 부끄러워지는 거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고달픈 현실에 속한 불쌍한 자기 자신에게 도취하지 않고 그런 현실을 '사건'과 '이야기'로 담는 사람이 되려고 할 때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을 예술과 동일시 하지 말고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해할 때, 서로가 상부상조하고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냥 다른 공간의 개념으로 인식할 때, 그런 예술가가 보여주는 세상을 오히려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본 영화 중 <파벨만스>가 이런 느낌을 가장 잘 전해준 영화였고 이렇게나 슬프고 외로운 이야기를 이렇게나 안전하게 즐길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마음에서 잘 떠나지 않는 작품이 정말 좋은 작품인 것 같다. 그게 찝찝함을 남기든, 행복감을 남기든 외로움을 남기든, 자꾸만 마음 속에 맺혀 잘 사라지지 않는 작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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