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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20. 2023

가해와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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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폭력 이야기로 인터넷이 뜨겁다. 더 이상 어떤 범죄 가해자든 용인해주지 않겠다는 여론이 드세다. 여론은 예전부터 피해자를 지지하는 쪽에 서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튜브나 댓글, 여러 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 여론 자체가 힘이 없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무마됐던 사건도 많다. 심지어 옛날엔 요즘처럼 네티즌들이 모일만한 명확한 장이 없어서 힘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중은 관심 갖지 않고, 그러니 공권력은 약하게 처벌하고, 기자들은 그것을 기사로 쓰고, 대중은 또 관심 갖지 않고, 이런 패턴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인터넷이 발전했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데 우리가 매일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속도로 핸드폰 속 세상은 매 순간 유행을 만들어내고 매 순간 '발전'한다. 과학발전을 따라가기엔 인간들은 조금 느려서 이런 고도의 무기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그냥 일단 손에 쥐고 본다.

아마도 그런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순기능이라고 하면, 어떤 마음에서 나온 에너지든 그게 한데 모일만한 장소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어느 때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내 의견과 비슷한 의견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의견을 나누고 조합하여 전에 없던 어떤 '가치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요즘 핸드폰 속 대다수 사람들의 가치관은 어떤 범죄의 가해자든 가해자는 무조건 처벌받고 질타받아야 하며 평생 편하게 살아선 안 된다는 신념이고, 피해자는 어떻게든 구제받고 도움 받으며 다시금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잠시 몸 담았던 집단에서 은근히 약자 혐오를 조장했었다. (자신들도 그게 약자혐오라는 사실을 모르고 한 행동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과거 학교폭력을 한 가해자가 시간이 꽤 흐른 후 이름도 바꾸고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며 조용히 집단생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오히려 그의 개선된 행동을 추켜 세우며 두둔하는 식이다.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얘기하면서. 또는 폭행을 여러 번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반복되는 피해에 노출된다는 건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 소재 즉,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식이었다.

이 집단도 지금보다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여서, 약자나 젠더에 관한 의식이 좋지 못한 시대여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걸까? 그저 그들은 시대가 '혐오를 조장하던 때'였기에 그런 분위기를 비판 없이 따라간 '순수한 집단' 정도로 여겨지면 될까?

물론 그땐 대부분의 국민이 혐오에 둔감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도 당연히 오래 지속됐었다. 그러니 외부인에게 폐쇄적이고 자기들끼리의 믿음으로 똘똘 뭉친 집단은 더더욱 발전이 느릴 수밖에 없다.


나도 여러 가지 혐오를 일삼았을지 른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라도  생각을 남기고 싶어서 안달이었을 시절.  생각이 너무 대단해 보이고 내가 생각하는 바가 바른  같고, 왠지 중립이라도 지키는 멋진 가치관인  같아서. 지금보다  발달된 문명 속에  , 그냥  분위기를 따라 우매하게 살았을 뿐이면서, 당시는 그게 마치 엄격한 삶의 잣대나 정답이라도 되는  떠들어대며  시절이 있다.


물론 지금 시대도 앞으로 전개될 시대에 비해서는 또 무언가 부족하고 미숙한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생각들도 언젠가는 통하지 않는 낡은 가치관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인식은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 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느끼는 아픔의 속도보다 항상 느리니까. 인류는 저만치 뛰어가는 것들의 뒤를 늘 허겁지겁 쫓아가는 식으로 인식을 넓혀왔으니까. 그리고선 헐떡이며 뛰어간 애매한 자리에서 마치 미리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앞서서 그런 가치관을 남몰래 생각이라도 해왔던 듯 거짓말을 할 테니까. 문명과 과학을 발달시킨 것이 인류지만 그 발달에 따라가지 못하는 쪽도 늘 인류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아무리 혐오에 둔감하던 시절이었고, 우리가 생각을 모을만한 장이 없어 제대로 된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어도.... (그래봤자 불과 10년 전 정도...)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게 일부라도 책임을 전가하는 식은 그냥 틀린 거 아닌가.

이 논리는 구석기시대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틀렸다고 얘기할 것 같은데.


나도 혹시 조금이라도 가해자를 두둔한 적이 있을까? 설마 기억도 못하고 있는 게 있을까? 요즘은 이런 것들을 자주 곱씹는다.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명백한 잘못들이 있다면 그것만큼 인생에서 비참하고 죄스러운 게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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