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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Jul 03. 2023

인간의 신

자기 자’신’

<미국사 산책 1>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부터 시작해서 종교전쟁에 대한 이야기까지 왔는데, 1권 전체가 거의 다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전쟁하며 이권다툼을 하게 되는 도화선은 종교와 식민지 쟁탈이다. 인간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어떤 '믿음'을 믿음으로써 라고 생각한다면, 종교는 인간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념일 것이다.


같은 종교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또 소수로 나누어져서 새로운 교리를 믿게 되고, 약간만 다른 각도로 이념을 세우고 나니 기존 종교와 확연히 달라져있고, 이념적 독립을 하기 위해 끝내는 전쟁까지 하게 된다. 칼뱅과 루터의 차이, 30년 전쟁, 또 청교도인들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 그리고 원주민 학살까지.


이런 과정들은 미국사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종교가 다르고 나라가 다를 뿐 어떤 '이념'과 '믿음'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은 같다. 종교는 단지 신을 숭배하고 신의 말씀에 따라 산다는 주의에서 끝나는 게 아닐 것이다. 종교는 하나의 이념이고 가치관이고 개인 생각의 뿌리다. 그 근간을 너무 믿어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고, 범위를 넓히고 서로 연대하며 인간이 벌인 짓은 결국 약탈, 전쟁, 식민지화였다.


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어딘가 성스럽고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는 것처럼 그 신을 인간이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신은 실체 없는 인간의 또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그게 이념이고 신념일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기도 하고, 전쟁에 이용하기도 하고, 권력을 잡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어차피 종교와 신은 인간의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러나 충분히 채울 수 있게 하는 도구에 불과할 테니까.


물론 순전히 신을 믿고 신의 가르침에만 따라 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신을 믿든 안 믿든 차별 없이 그들을 대하며 정치질이나 이간질 없이 그저 그들을 위해 기도 해주는 사람도 분명 있다. 변질된 건 ‘집단'이지 '개인'이라고 볼 순 없을 것이다.


나도 종교를 믿은 적이 있었다. 믿었다기보다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믿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은 없다. 신이 정말 있다해도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은 아닐 거다. 라고. 신이 있다면 아마 그는 개입하지 않는 신, 관심 두지 않는 신, 악마가 살아 숨 쉬도록 놔두는 신, 그리고 고통을 관음하는 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세상이 느끼는 고통이 신에게는 고통이 아니라면 그건 공감하지 못하는 신일 테고.


어쩌면 인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형체 없는 신이 자신들의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거란 걸. 특히나 권력을 손에 넣고 질서를 확립하고 싶어 하는 자들에겐 너무나 좋은 재료가 되어줬을 거다.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도,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집단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이런 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냈겠지만 시작은 어떤 '믿음'에서 출발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이념을 향한 믿음. 신과 종교라는 이름하에 합당한 권한을 두고 확립하고 싶었던 믿음 말이다.


요즘이라고 달라진 건 없을 거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당이 있고, 믿음까지 가진 않더라도 약간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당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종교의 색채는 많이 없어졌지만 우리는 늘 무언가를 믿으며 산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인해 다툼을 하고 이간질을 하며 차별을 하고 의심도 한다. 같은 것을 믿는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연대하고 싶은 욕심, 자기들을 제외한 타인은 전부 의심해야 할 존재. 그러다 어떤 갈등의 불씨가 붙으면 혐오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요즘은 참 인간이 하잘 것 없고 웃기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도 인간에 대해서 그다지 좋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지만 갈수록 더 그렇다. 인간이 고등한 생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다다. 고등생물이라 해서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든가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든가, 선의를 더 베풀 수 있는 대단한 존재라든가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게 된다. 인류는 과학이 빨리 발전하는 걸 즐기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과학과 함께 공존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고도 하지만, 결국 인간은 그런 과학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하려 할 것이다. '질서'와 '번영'이라는 명분 하에 말이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정착한 것도, 아프리카 노예를 사고팔며 경제를 발전시킨 것도, 동물을 먹고 이용하기 위해 기르는 것도, 환경을 파괴해 온 것도, 입고 있는 옷, 다니고 있는 대학, 출퇴근하는 회사, 연봉과 재산 등으로 차별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모두 인간이다. 심지어 어쩔 수 없는 척, 자기는 그러지 않는 척, 나름대로 명분이 있는 척을 잘할 수 있는 것도 고등 생물이라서 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인간이 발전이라고 여기며 자위하는 것들도 전부 '믿음'에서 나온 결과들일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서로 죽고 죽이며 나누고 차별하고 질투하고 의심하는 건 당연한 자연 법칙이라고 생각할 순 있다. 그런 나도 어쩔 수 없어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많으니까. 안 그래야지 하다가 또 그렇게 되는 날이 너무 많으니까. 심지어 그러지 않은 척도 할 수 있는 스스로가 싫어지기도 해서. 그리고 그걸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기분 좋은 믿음 하에 외면하고 회피도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연에 태어난 이상, 고등한 머리를 가진 이상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도 생각한다. 정말 피할 수 없는 '믿음'의 필연적 결과들이라고. 하지만 그런 결과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도 고등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신이 만들었고 그런 신을 만든 건 인간일 테니까.


사진 : The Great Miseries of War by Jacques Callot, 1633. https://en.wikipedia.org/wiki/Thirty_Years%27_W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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