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하나로 뭉치면 강한 힘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존재를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약한 존재는 뭉쳐도 약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접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뭉치면 강해지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버려지는 신문지로 만든 일회용 종이 헬멧 ⓒ urbancycling.it
지금 소개하는 ‘종이로 만든 면도기’와 ‘종이로 만든 헬멧’은 바로 약한 존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종이가 과학기술을 만나 강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 대표적 사례들이다. 낱장의 종이일 때는 갓난 아기라도 간단히 찢을 수 있는 약한 재질이지만, 과학기술이 접목되면 강철처럼 강한 재질로 변신하는 역발상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수염을 깎을 정도로 예리한 종이면도기
종이면도기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딤 하이다리(Nadeem Haidary)’라는 디자이너가 개발했다. ‘페이퍼 컷 레이저(paper cut razor)‘라는 이름의 이 종이면도기는 어떤 금속성분도 포함되지 않은 오직 종이로만 이루어져 있는 제품이다.
페이퍼 컷 레이저는 단단하고 평평한 종이판지 형태로 제작된다.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접기 장난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얇지만 단단한 종이판지에 형성되어 있는 주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접으면 면도기가 완성된다.
어떻게 종이로 면도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하이다리 디자이너는 “예전에 실수로 종이에 손이 베인 후 면도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라고 밝히며 “피부를 벨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한 종이의 기능적인 면을 살려보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 면도를 해야 하는 남자들의 습관적이고도 지루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보고자 종이면도기 개발을 시도해 보았다”라고 설명했다.
약한 재질의 대명사인 종이도 수염을 자르는 도구로 변신할 수 있다 ⓒ fastcodesign
이 면도기를 시험해 본 사람들은 종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제품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아무리 종이가 예리하다해도 수염을 깎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흔들 정도로 잘 깎인다는 것이다.
또한 방수 처리가 된 종이로 만들었기 때문에 물이나 면도 크림에 젖어서 찢어질 염려가 없고, 100%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경보호 측면에서 볼 때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 면도기 업계는 페이퍼 컷 레이저가 친환경 이미지를 갖고 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과 저렴한 비용 등 경제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사용횟수만 좀 더 늘릴 수 있다면 기존 일회용 면도기 시장을 위협할 제품으로 경계하고 있다.
이 같은 업계의 반응에 대해 하이다리 디자이너는 “종이면도기는 아직 시제품 단계여서 보완할 부분이 많다”라고 언급하면서도 “다만 친환경적이고 편의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상용화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충격에 강하고 방수도 되는 종이 헬멧
미국의 디자이너가 종이로 면도기를 만드는 역발상 제품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면, 영국의 디자이너인 에드워드 토마스(Edward Thomas)는 종이로 일회용 자전거 헬멧을 만들어 ‘발상의 전환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탈 때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탈 때도 헬멧 착용이 점점 의무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무사항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이용할 때다.
영국의 런던은 공공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 중 하나지만, 자전거를 탈 때 헬멧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헬멧을 빌리는 과정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썼던 헬멧을 다시 착용하는 과정에서 위생관련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토마스 디자이너는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다가 길거리에 나뒹구는 신문지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로 신문지를 가공하여 일회용 헬멧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
종이 헬멧의 거푸집과 완성된 제품들 ⓒ Paper Pulp Helmet
그는 버려진 신문들을 모아 물에 담근 후에 이를 갈아서 마치 종이죽 같은 펄프를 만들었다. 여기에 친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화학 첨가제를 넣지 않고 유기농 첨가제를 투입하여 펄프들이 더 잘 결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어서 종이죽에 작은 구멍이 많이 뚫린 거푸집을 담그고, 진공 흡입관을 연결하여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수분은 진공 흡입관을 따라 빠져나가고, 펄프에 헬멧 모양의 거푸집을 씌웠다.
그 후 거푸집을 제거한 뒤 건조기에 넣고 말리자 그럴듯한 모양의 자전거 헬멧이 탄생하게 됐다. 토마스 디자이너는 “헬멧의 이름은 페이퍼 펄프 헬멧(Paper Pulp Helmet)”이라고 밝히며 “다소 거칠고 허술하게 보여도 충격에 잘 견디며, 몇 시간 씩 비를 맞아도 괜찮을 정도로 방수기능까지 뛰어난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용 후 폐기된 종이 헬멧은 전량 수거되어 다시 새 종이 헬멧으로 탄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회용이라 위생적으로도 안전하고, 버려지는 신문지를 활용하는 만큼 가격도 대단히 저렴한 것으로 파악됐다.
토마스 디자이너는 “사용하기 편리하고 버려지는 신문지를 다시 재활용하기 때문에 환경도 지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언급하며 “리사이클링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업사이클링 제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