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사님의 검열
한창 파릇파릇한 나이 중학교 때였던가. 지금은 어쩌다 폐교가 된 날나리 중학교를 다닐때였다.
반 아이들 대부분이 과산화수소나 맥주로 염색한 머리였고, 개중 집에서 셀프로 펌 시술까지 한 친구들도 있었다. 또한 매달 서너명은 가출을 시도했고, 선생님과 반 아이들 몇명은 수소문끝에 가출한 친구들을 찾아내 머리끄댕이를 잡고 끌고 왔었다.
그런 화려한 학교생활과 함께 그땐 한창 PC통신이 유행이던 때라 통신 커뮤니티에서 만난 지역 오빠들이랑 신나게 채팅하며 가끔 우루루 오프라인에서 모임도 하곤 했었다.
나름 나의 리즈시절이었고, 인생의 암흑기였달까.
뭐 그런 주변환경을 가지고 적잖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을 때 우리 권여사님의 딸래미 단속은 남달랐었다. 집으로 오는 모든 전화는 권여사님이 통신검열(?)할 때였고, 주변 친구들 연락처며 지인통신을 활용해 내가 질풍노도의 늪에 빠지지않길 늘상 단속하셨다.
(뭐 물론 나는 그 단속을 잘 빠져나가 남부럽지 않게 참 잘 놀았다.)
삐삐도 나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당시 친구들은 집 전화로만 연락이 가능해 늘상 집에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불러내곤 했었다. 권여사님은 그 때도 발군의 실력으로 그 무리를 물리쳤으니...
"거기 유진이네 집이죠?"
"아니. 내 집이다!"
딸칵- 뚜우뚜우뚜우-
-
어느 날 저녁 조용한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임완식이라고 합니다.
혹시 유진이 집에 있습니까?"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권여사님은 보란듯이 스피커폰으로 돌려놓고 당황하는 나를 보며 이번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외쳤다.
"유진이 집은 맞는데, 니 누고? 임완식이? 완식이고 나발이고 니는 뭐하는 놈인데 이 밤에 이래 여학생 집에 전화를 막 해싸가 우리 딸래미를 자꾸 불러낼라카노? 어? 니 누고? 어? 생각이 있나없나. 지금 시간이 몇신데 어데 집으로 전화를 하노? "
권여사님은 좀 성급하긴 했지만, 당당했다. 흡사 속사포 랩퍼마냥 숨도 안쉬고 한바탕 쏟아내고 나서 나를 보며 썩쎄쓰의 눈빛을 보냈다. 봐라. 딸아. 이것이 엄마다! 라는 느낌이었다. 난 날벼락을 맞고 도대체 저 남자애는 누군가 그 짧은 시간동안 계속 고민을 하며 그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만 찾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다시 스피커폰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아- 권집사님.
저 00교회 임전도사입니다.
집에 계셨네요?
00교회 권집사님,
아니 권여사님은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Fail.
한동안 나는 권집사님 덕분에 그 전도사님을 피해
교회 뒷문으로 다닐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