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더 비기닝 시즌2
대한민국의 전세입자들이 주로 그렇듯 2년에 한 번씩 집을 이사해야 하는 시점이 오는데 아마 2012년쯤이었던 것 같다. 작은 오피스텔 방에서 뭔 짐이 이렇게 많은지 이삿짐 싸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무거운 책 박스를 옮기던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뒤에서 구시렁구시렁 말도 많았었다.)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맥시멀리스트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던 게... 한편으론 더 넓은 곳으로 가지 못하는 주머니 사정에 씁쓸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사는 가야 했고, 이참에 심플한 집을 좀 가져보자 생각했다. (이사비용도 한 몫 했다.)
그래도 아직 많은 짐이 남아있었고, 버리기보다는 결국엔 그걸 어떻게 잘 정리하는 가(잘 보이지 않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췄었다.
일단은 그 많던 책들을 하얀 종이 바인더에 다 때려 넣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화이트로 맞췄다.
뭔가 화이트로 맞춰서 정리는 되어 보이나 실상은 수납가구 및 붙박이장, 부엌 장안에 가득한 짐. 겉으로는 괜히 깔끔해 보이고 비어 보이긴 하다. 그래도 그땐 그조차도 만족스러웠다. (과거의 사진임을 짐작할 수 있는 화질 구린 사진들ㅠ)
집에서 딩굴거리다 책 한번 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바인더 안에 숨겨진 책을 찾기 위해선 모든 바인더를 다 재껴서 확인을 해야 했다. 게다가 거기 쌓인 어마 무시한 책 먼지 들을 보고 청소를 하다 보니 내가 책을 읽으려고 이러고 있는지 청소를 하려고 이러고 있는지 자괴감이 몰려왔다.
정기구독을 했지만 한번 보고 꽂아놓기만 하던 매거진, 여행 다녀오면 끝나는 여행 책자, 어디선가 표지가 이뻐서 산 책,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않던 전공책자(정역학, 유체역학, 도시설계 이런 거 이제와 기억도 안 난다.)들로 가득한 책장을 비우기로 결심했다.
책을 비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거운 책들을 옮길 근력만 있으면 된다.
주변 지인들에게 나눔, 회사 도서관에 기부, 그것도 아니면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기.(그때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었더라면 쏠쏠했을 텐데..)
돈 주고 샀던 수십 개의 이케아 바인더도 쓸쓸하게 무로 돌아갔..종이 재활용 쓰레기로 돌아갔다.
책장을 비웠다. 그때 한참 보던 책 두어 권과 매거진 B는 남겨두고 다른 건 싹 비웠다. 텅 빈 책장이 보면 볼수록 괜히 설렜다. 그 설렘이 좋았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빈 공간에 대한 설렘을 느꼈던 것 같다.
결국 책이 없어 쓸모없어진 책장도 이후엔 비워지게 된다.
이렇게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인 비우기(버리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