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으로의 탈주를 위한 모색
.숨을 따라 오른 시선이 마침내 그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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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천장이다. 지하까지 포함해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외관도 내관도 모던한 카페의 2층의 천장이다. 이 카페는 아지트 같은 아늑함을 추구한 지하를 제외하고, 1층과 2층의 외부 세 벽면이 통유리여서 건물 자체만 놓고 보자면 전망이 좋다.
건물 단독으로는 그러하지만, 주변 환경과 함께 보았을 때는 그 사정이 좀 달라진다.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전망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건물 전면은 넓은 골목이라 제법 전망이 좋을 법하지만, 앞쪽에 마주 보고 있는 크고 높은 건물에 시야가 완전히 막혀있다.
게다가 그 건물에는 술집이나 고깃집과 같은 우리네 지친 일상이 층층이 담겨있어서, 현실과 거리를 둔 채로 공상을 이어가거나 가을바람 같은 감성을 얻기에는, 그 현실감이 너무 어지럽다.
나머지 두 벽면 중에서 한 면은 건물 뒤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 창으로 볼 수 있는 건 다른 건물들의 뒷모습뿐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간판과 현란한 불빛 그리고 하소연 같은 소란스러움을 마주한 전면과는 달리, 건물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침묵처럼 묵묵히 내뿜는 구조물들이, 연통에 묻은 검댕처럼 시야를 막고 있다. 마치 미소라는 분장을 한 채로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누군가의 부서질 듯 지친 어깨, 그 위의 헝클어진 머리처럼.
남아있는 마지막 벽면은, 하루의 고단함을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지하철 역사의 고가선로와 마주하고 있다. 하늘을 보여줄 것만 같은 통유리로 올려다 보이는 것은 사실, 고가선로다. 코앞으로 바싹 다가 선 고가선로는 주기적인 소음을 통해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거기에 있음을 알린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아침이 다시 돌아왔음을 재촉하는 알람 소리처럼.
고가선로 아래로 겨우 보이는 공간에는 똑똑한 사람들은 지키지 않는 신호등의 불빛이, 황망히 횡단보도 위로 떨어진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지혜인 세상 속에서 횡단보도는 어떤 의지처럼 검은 도로를 가로질러 누워있다. 그 의지는 매번 새로 하얗게 칠해지지만, 이내 현실이라는 환경 속에서 풍화되어, 검은 모래사막에 박힌 이름 모를 동물의 뼈처럼 스러져있다. 저기 그 위를 건너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억압된 갈비뼈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해 질식한 채로.
외부에서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한 시선은, 그러므로 카페 안으로 허무히 돌아온다. 의자 위에 앉은 다른 사람들, 그 들의 찻잔 위 물결 속에도 언제나 박혀있는 플라스틱 빨대 속에도 일상의 날숨이 담긴다. 그리고 그 날숨은 이리저리 오고 가며 현실이 된다.
압착된 포부가 포기가 되기 전에 고개를 쳐들고 갇힌 숨을 내쉰다. 내쉰 숨을 따라 시선이 오른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이 천장에 가득 차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내려는 의지를 보이려는 듯 반듯하게 뻗어 나가고 또 들어온다. 카페의 주인은 그 구조물들에 신경을 썼다. 무채색이 어울리거나, 빤빤한 무언가에 의해 가려졌어야 할 그것들에게, 오히려 나름의 색을 더해 주었다. 숨을 따라 오른 시선이 마침내 그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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