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많아 힘들어 병이 났는데, 수업을 몰아 놓고다하라니 죽으라는 얘기군!"하고 속으로 불평이 올라왔다.
몸이 아파 남의 덕 좀 보려 했던 내 맘이 부끄러웠지만 이내 그 맘이 쏙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엔 장난이 아니다.
'외조모상'으로 3일 경조사휴가를 갔다 왔더니
빠진 수업 전부를 나에게 다시 돌려놓았다.
교감에게 물었다.
"제가 부고로 특별휴가를 썼는데 제 수업이결보강 처리 안 되고 시간표를 바꾸어 제가 돌아와 전부 보강하는 것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강사를 못 구하면 그렇게 합니다"
"저는 서울 30년 교직생활에 경조사 특별 휴가로 인해 빠진 수업을 본인이 보강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저는 강원도 30년 교직 생활에 전부 그렇게 하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럼 결혼해서 일주일 특별휴가 받는 사람도 전부 자기 수업 일주일치를 전부 보강합니까?"
"네"
"헉!"
"강원도 교육청의 결보강 원칙이 그렇습니다."
교감의불확실한 말은 이어졌다.
경조사휴가를 낸 본인이 보강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내가 부고를 알린첫째 날, 나와같은 교과 교사들에게 한 시간씩 보강을 넣었다고 한다.
원칙이 고무줄처럼 제멋대로늘었다 줄었다 한다.
(이후에 듣게된 기막힌 사실은 보강 들어간 교사들에게 보강 수당도 지급하지 못한다"는 교감 스스로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같은 교과 교사들이 보강을 원해서 넣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들이 원했을까?
후배 교사 중 막내교사는 일주일 21시간 수업에 담임까지 맡고 있다.
34도 땡볕 아래의 운동장 수업과 담임 업무만으로도 그의 교직삶은 녹초가 될 지경인데 수업 보강을 원했다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하지 못한 그의 입장을 헤아려 봤는가?
요즘 시대, 교직이 의리로 굴러가는 조직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철저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무의미하게 손해를 보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교감의 주장대로라면
만약, 막내교사가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시게 된다면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서 21시간수업을보강해야 한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경조사로 인한 결보강을 당사자가 해야 한다면
복무에 공무원의 경조사휴가 조항은 왜 따로 있는가?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힘들거나 의미 있는시간임으로 특별휴가를 주고 그에 따른 결보강은 강사를 구하거나 단위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내가 거쳐왔던 학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전근 와서 전혀 다른 말을 듣고 있다.
결혼이나 장례가 놀다 오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경조사로 인한 결강을 본인이 메꾸는 것이 합리적인 것입니까?"라는 내 질문에
교감 왈
"비합리적인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입니까?"
...
경조사로 인한 결강 시간을 다음 주로 전부 옮겨놓은 시간표다. 일주일에 23시간 수업을 하란다. 보강 무서워서 장례 치르기가 겁난다.
'강원도 규정'과 '학교 규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역 지회장의 도움으로 강원도 교육청 수업 보결에 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 결손에 대한 방지는 학교장의 기본 책무로 정하고 있었고, 예측하지 못한 수업 결손은 구성원들의 협의를 통해 교내 규정으로 정하고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교감은 마치 강원도의 모든 학교는 모든 수업 결손을 본인이 메꿔야 하는 것이 규정인 것처럼 말했다.
수업 보결에 대해 전교조와 강원도 교육청이 단체협약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연가, 병가, 공가, 특별휴가 등으로 인한 수업 결손 방지 책무는 관리자에게 있다.
*수업 결손 방지를 위해 (교외) 보결강사제를 적극 활용한다.
*특별휴가(경조사 휴가, 출산휴가 등)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보장된 권리의 휴가로 본인이수업 교체로 운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결국,
교감은 예측되지 못한 나의 부고 첫날을 제외하면 이틀은 강사를 채용하는 등의 적극적 대처를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수업 결강을 마치 본인이 메꿔야 하는 것이 강원도 교육청의 규정인 양 말하며 강사 채용을 알아보지 않았다(후에그는 또국영수 외에는 강사풀이 없다고도 하였다)
손익계산하는 부장들
금요일. 부장회의가 열렸다.
결보강에 대한 회의를 했다. 심각한 철학 부재가 보였다.
경조사 휴가와 병가에 대해 교내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보강을 하자는 논의에서 모 부장의 야박한 주장이다.
"원칙대로 자신의 수업은 자신이 하면 되지. 왜 이런 논의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모부장이 말하는 원칙의 근거란 학교 구성원 교사들이 심도있게 논의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달랑 몇 줄의종이 한장이었다. 이 교사는 앞으로자신과 관련한 경조사도 없을 것 같고, 아파서 결근할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이 교사에게 직장에서의 '상부상조'란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장회의시간은공동체의 배려적 논의보다 철저히 자기 손익만 계산하는눈치작전같았다. 수업이 적은 부장은 자신이 결보강을 많이 들어가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해 결보강의 책임은 결근한 교사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안'에 반대하였다.
결국, 그런 부장들의 주장으로 전체 교직원들의 찬성 투표 결과(20표 : 13표)에도 불구하고 '경조사와 병가로 인한 보결 안'은 "겨울에 논의합시다"란 교장의 말을 끝으로 백지화되었다.
난수업 시수 많고 서로 돕기를 거부하는 풍조의 학교에서 주의할 점을 깨달았다.
이 학교에서 부모님 상을 당하거나, 아파서 병가를 내는 그런 끔찍한 일은 추호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