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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딴지 May 01. 2023

서울교사 강원교사되기

#1

2023년,

서울에서 30년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로 전출을 냈다. 수많은 동료 교사들이 말렸다.

"왜 연고도 없고, 남들은 원하지도 않는 지방으로 가려고 해?"

그러나 난 어떤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쳇바퀴 같은 교직 생활에 변화를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해마다 같은 느낌의 학생들, 미약한 교육의 변화, 쳇바퀴 같은 생활, 정체성 혼돈 등 그렇게 30년 교직생활은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

"마지막 학교는 뭔가 달랐으면 좋겠어"

그런 막연한 희망이었다.


내가 '강원도'를 선택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그저 동쪽이 끌렸다.

난 서울에 근무하며 강원도 교육이 어떠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얼핏 '보수적'이라거나 '권위적'이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다. 그러나 사실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눈앞에 현실이 되었다.


타 지역 교사들이 로망 하는 강원도는 이런 기대일지 모른다. 산골짜기 작은 학교, 순박한 아이들과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피라미 잡는 자연 다큐 같은 그림상상하는.... 나 또한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난 강원도의 대도시, 원주의 한 학교로 발령나버렸다.


낯설고 싶었지만 낯선 구석을 찾기 힘들었다. 25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 O다방, 신O떡볶이, 맘O터치, O도날드, PC방, O이소, OO마트, OO몰 등 모든 게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1일 생활권 일 뿐만 아니라 '페이지 문화권'이 되었다. 전국 구석구석이 똑같은 간판, 똑같은 물건, 똑같은 가격으로 움직인다. 산업화, 현대화는 인간성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 실종도 가져왔다. 이젠 풍물시장의 물건조차도 지역 산물이 아니라 중국산 대량 수입물품들이 어디를 가나 똑같이 진열되어 있다.


발령받은 원주시 OO학교는 전교생 1천 명에 육박했다. 학급 당 인원수는 30명이나 되며, 평균 수업 시수는 19시간쯤 되었다. 땅 값이 싼대도 운동장은 서울 학교보다 작았고, 운동부는 두 개나 있었다. 이전 학교에 비해 학교 시설과 크기는 줄어들고 작아졌지만 학생 수는 세 배쯤 늘었다.


개학 전이지만, 오늘은 발령 후 첫 직원연수다. 새로 부임한 교사와 전출 간 교사 소개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전출 간 교사 중 한 명이 8년간 강원도에서 근무하다가 임용고시를 다시 봐서 인천으로 발령받았다는 소개였다. 그런데 듣고 있던 동료교사들이 축하인지 부럽다것인지가 구분되지 않는 '와~'하는 탄성을 질렀다.

강원도 전출 과정에서 내가 신문을 통해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강원도 다수의 교사들이 강원도를 떠나 다른 대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는 기사였다. 그 이유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난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난 다른 교사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이곳 사람들은 임용고시를 다시 보더라도 서울과 인천 같은 대도시로 떠나고자 하는데 서울에서 거꾸로 이곳에 온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미쳤다고 할까?"


직원회의 중, 오래된 낯익은 풍경이 있었다. 교장이 자신의 교육 철학을 전체 교사들에게 2~30분가량 강의했다. 준비를 많이 한 흔적이 보였고 의미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대도시 서울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강의 요청이 있지 않으면 교장은 자신의 교육관을 다른 교사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다.


산골짜기 작은 학교, 꽃이 만발한 교정, 따뜻한 햇살 속에서 아이들과 뛰어다니는 수업을 상상했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아직 2월 중순, 바람은 목덜미를 파고들고, 가족을 서울에 두고 시도를 넘어가늙은 교사의 늦은 발령은 심란하고 조급해졌다. 당장 보름 뒤면 개학인데,  집도 없고, 돈도 부족했다. 고금리에 전세는 집값에 육박했고 조금 깨끗해 보이는 전셋집은 1억 원 이하가 없었다.

전셋집을 찾아 헤매며 우울함이 밀려왔다. 소개해주는 원룸들마다 가슴 답답하게 했다. 작은 크기의 방도 문제지만 덕지덕지 붙은 앞 건물에 가려 창문으로 해가 들지 않아 대낮임에도 동굴 같았다.

"젊은 시절도 아니고 이 나이에 먼 지방까지 와서 이런 생활을 해야 하나?!"


과 협의시간, 평균 수업시수 19시간, 끔찍했다. 결국, 서로 눈치 살피기 끝에  스물아홉 살 막내 교사는 21시간에 담임을 맡았다.

화요일과 수요일 오후는 스포츠 클럽이 수업 시간표의 지뢰밭이었다.

'몸'으로 하는 노동과 '말'로 하는 노동은 차이가 있지만 둘 다 힘들다. 그런데 체육수업은 몸과 말을 함께 해야 함으로 상대적으로 힘들 때가 다. 수업과 공강 시간이 적당히 섞여야 수업의 질이 보장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스포츠클럽으로 인해 수업이 특정 요일에 쏠려있어 수업 편중이 몸과 맘을 지치게 한다.

"서울에서의 걸림돌은 지방에서도 걸림돌이다."


불나방처럼 뛰어든 강원도 교육에 적응하고 이해하려면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든다.

보름 후면 개학인데 난 지금도 원주시에서 등 붙이고 잘 수 있는 집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을 헤매고 있다. 끔찍한 하루다.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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