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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ceptzine Dec 06. 2016

퇴근하세요?

conceptzine vol.39


지루한 퇴근길을 위한 세 작품.

에디터 이혜인  l 포토그래퍼 최연정





드라마를 책으로

노희경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2년 전 이맘때쯤 막을 내렸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다시 챙겨볼 정도로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건, 극 중에 나오는 인물 모두가 마음에 성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특히 배우 성동일이 맡은 조동민 역을 가장 사랑했는데, 농담식으로 툭툭 던지는 대사를 외울 정도로 좋아라 했다. 그건 의외의 인물로부터 별거 아닌 양 위로를 말하는 노희경 작가 특유의 전달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위로를 영상이 아닌 책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의 대본집을 찾았다. 촬영 용어와 집필 형식에 따른 대사는 다소 생소했는데,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대사를 알게 되고,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그대로 재생되어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면 작품의 의도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녀는 정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를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의 우울증과 알코홀릭, 수면장애와 식사장애, 공황장애, 방어기제로 인한 인간관계 부적응… 퇴직을 눈앞에 둔 남자들의 공포에 가까운 남성 갱년기 우울증 등등…. 내 주변은 그렇게 환자와 환자가 모여 떠드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건 상대는 미쳤고, 자신만이 언제나 정상이라고 우기며 충동하는 세상보다 지극히 덜 위험하고 통쾌하고 감동적이고 재밌다.’ 정상의 기준은 뭘까. 그리고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아무런 소용이 없게 만드는 사랑은 뭘까. <커피프린스>공유의 대사처럼 상대방이 남자든 외계인이든 상관없게 만드는 그 사랑 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읽고 나면 그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자문하게 된다. 나는 이런 식의 결론을 내렸다. 결국엔 우리는 같지 않아서, 저마다 앓고 있는 작고 큰 병이 있어서 사랑을 한다고. 개인마다 손 크기도, 발 크기도 다른데 하물며 자라온 환경과 성격은 오죽할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의 일부(가족, 애인, 친구 등)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사랑을 한다. 내가 없는 것을 상대방을 찾고 내가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나눴을 때 감정의 교류를 하는 것이다. 다만 그 모든 건 ‘진심’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 내가 번번이 사랑에 실패했던 까닭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자르고 깎고 세공했기 때문이다. 품에 조금 남더라도 혹은 벅차더라도 기꺼이 껴안을 수 있을 때 사랑은 시작된다.





볼륨을 높이고

장기하와 얼굴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이 앨범은 베를린으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 지겹도록 들은 것이다. 그곳에 사는 친구가 장기하 신곡을 들어봤냐며 다짜고짜 틀은 게 화근이었다. 첫 곡은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노래가 시작되자 친구는 아픈 도날드덕처럼 목을 뺐다 넣었다 하며 박자를 탔다. 처음엔 별난 노래가 다 있다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중독성 강한 리듬과 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따라 부르고 싶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끼니를 때울 때도, 버스에서 이동할 때도, 잠자기 전에도 모종의 약속을 한 것처럼 반복해 들었다. 찌질한 가사가 귀에 떡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삼류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 같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 어쩜 이렇게 주옥같은 가사만 쓰는지, 친구와 나는 장기하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며 종국엔 괜한 아이유를 밉보기 시작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우 같은 계집애라 했다. 아이유가 장기하와 연애하고 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이 멋진 음악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니 유치하게도 배가 아팠다. 요즘엔 장기하가 쓴 가사만큼이나 담백하고 솔직한 남자가 대세인 것 같다. 드라마 속 재벌 왕자님 같은 포장된 이미지는 이제 너무 뻔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이미 콩깍지 렌즈를 장착한 내게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앨범엔 또 이런 가사가 있다. ‘남의 연애에는 이런저런 간섭을 잘해 감 놔라 배 놔라 만나라 헤어져라 잘해 너 어떡할려고 그러냐 제발 좀 괜찮은 애들 좀 만나라 그렇게 다툴 거면은 이번 참에 차라리 끝내라 남의 연애에는 이런저런 간섭을 잘해 근데 네가 토라져 버리면 나는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겠어’ 사랑꾼 장기하 앨범엔 특별한 부록도 포함되어 있다. 이름하여 콩닥콩닥게임북. 만년 솔로에게 가상의 연애 시뮬레이션을 선사하는 책이라고. 한 여자가 세 명의 남자 중 한 명을 선택하면서 페이지 하단에 위치한 지시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이런 귀신 같은 책이 있을 수가! 마지막 지시를 따른 페이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OO의 연락처를 차단해버린다. 아… 당신은 언제쯤….’ 이것은 나의 미래인지, 현재인지, 과거인지 알 수 없음이다. 아… 나는 언제쯤….





어깨에 힘을 빼고

벤 스틸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50년대에 김일성은 ‘새벽별 보기 운동’이라는 명목하에 가난한 국민에게 무리한 노동력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건 북한의 과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 또한 마감이 찾아오면 의도치 않게 이 운동에 참여한다. 나의 야근은 사회구조의 문제라기보다 잡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힘든 건 힘든 것이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퀭한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삶이 나를 좀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나의 것인데, 일상에 장악당하는 느낌. 명확한 목적도 없이 누군가 그려 놓은 절취선을 아슬아슬하게 따라 걷는 것 같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소시민적인 성격답게 삶에 대한 호기심은 없으며 상상 속 자신의 모습에 빠져 사는 게 취미인 사람. 상상 속 그는 좋아하는 여자를 한눈에 반하게 만들며, 폐간 위기에 있는 잡지를 살리지 못할망정 구렁텅이에 넣어버리는 상사에게 화끈한 한마디를 던지는 상남자다. 아, 안타깝게도 그가 속한 잡지사가 폐간 위기에 놓인 건 상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16년간 《라이프》지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한 그에겐 바로 코앞에 놓인 ‘현실’인 셈. 급기야 유명 사진작가가 보낸 표지 사진을 잃어버린 상황에 몰리게 된다. 사진작가 션은 주거가 불분명한 상태. 이곳저곳을 떠돌며 전설의 사진만을 보낼 뿐이다. 더 이상 최악의 상황도 없을 것 같은 월터는 이상한 기운에 홀리듯, 사라진 사진을 찾아 모험이라는 놀이기구에 탑승한다. 시작은 가볍게 헬리콥터 타기. 그는 그린란드까지 가서 술 취한 조종사가 운전하는 헬기에 오른다. 그러고 나서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뛰어내린다. 어디 그뿐이랴. 아이슬란드에선 폭발하는 화산을 피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로를 달린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너무 빨리 달려 허파가 시린 것처럼 아찔하고도 시원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는 기분.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풍경에 빨려 들어가듯 그 또한 어느새 진짜 모험을 즐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션이 있는 히말라야로 향한다. 사실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히말라야까지 갔지만 결국 사진을 찾을 수 없었던 월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퇴직금을 받고 돌아오는 길, 매점 앞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은 사진이 실린 잡지를 보게 된다. 회사 앞 분수대에 앉아 필름을 보고 있는 월터 미티, 바로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지금도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누가 뭐래도 삶의 정수는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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