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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Oct 02. 2020

[공연/도서] 베르테르

한없이 순수해서 한없이 슬픈 그 이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를 관람했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원작이 독일 문학인 데다가 워낙 유명해서 라이선스 공연인 줄 알았기 때문에 창작 뮤지컬이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더 커졌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탄생시킬 정도로 이 작품의 결말은 큰 충격과 슬픔을 준다. 주인공이 죽음을 선택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베르테르'의 이름이 붙은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의 마음과 이야기에 공감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은 소설과 큰 줄거리는 같았지만 약간의 다른 부분들로 인해 등장인물들을 조금은 덜 비참하게 만들었다. 비극을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서정적인 연출과 음악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그래, 내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닐세. 그녀의 검은 눈을 보면 나와 나의 운명에 대한 그녀의 진정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네. 그래, 나는 느낀다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내 마음을 믿을 수 있네. 아, 천국을 이런 말로 표현해도 될까? 아니, 천국을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네!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 자신이 내게 소중해졌네. 이것이 과대망상일까, 아니면 실제로 그런 걸까? 하지만 그녀가 그녀의 약혼자에 대해 말하면서 그와 같은 다정함과 그와 같은 사랑을 보일 때면 나는 내 자신이 마치 모든 명예와 품위를 빼앗기고 대검마저 강탈당한 사람처럼 여겨진다네. - p.69


무대에서 자주 보이던 해바라기는 베르테르와 많이 닮아있었다. 희망을 품고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키워가는 모습이 비슷했다.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다가갈수록, 사랑에 행복해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만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마음에 온오프 스위치가 있어서 원하는 대로 껐다 켰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더 많은 마음이 갈라진 틈 사이로 흘러나가기 전에 어느 정도 손으로 막아볼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냥 바라보며 감출까 아니면 조금은 표현해볼까 고민을 한다. 가만히 있다가 놓쳤을 때 생기는 후회가 거절당했을 때 느끼는 슬픔보다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편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반응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때때로 희망을 품거나 슬픔에 빠지는 베르테르에게 공감이 되었다. 그의 결말과 멈춰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타인으로서 말리고 싶었을 뿐이다. 남의 일은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아는데 정작 본인은 그때를 알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원작에서는 베르테르가 롯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베르트의 존재를 알지만, 공연 속의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한 채 롯데에게 고백을 하려고 한다.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안타까움을 더 크게 했다. 희망에 가득 차 한참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찬물을 확 끼얹으면서 정신차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가 술집에서 목놓아 울 때 같이 너무 슬퍼져 눈물이 났다. 그래서 수많은 장면 중에서 그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베르테르도 그녀에겐 아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정서상으로 많은 일치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잘 드러났고, 그와의 오랜 교제와 함께 겪은 많은 상황들은 그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녀가 재미있다고 느끼거나 생각했던 일들은 어느 것이나 늘 그와 함께했던 것들이라서 만일 그가 떠나간다면 그로 인해 그녀의 온 마음에 다시는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 그녀는, 뭐라고 뚜렷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를 자기 사람으로 간직하는 것이 그녀의 은밀한 마음속 요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그를 간직할 수도, 간직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p.183


롯데의 약혼자이자 남편인 알베르트는 신사적이면서도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베르테르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미운 사람이지만 그는 그저 그 나름대로의 사랑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롯데는 이성적인 알베르트에게서 채울 수 없는 정서적 안정을 베르테르에게서 얻었다. 누구와도 나누기 어려웠던 문학적 흥미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테르가 없을 때 그의 빈자리를 느꼈고 그 마음이 사랑인지 아니면 우정인지 알기 어려워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에서 남기는 여운이 베르테르를 더욱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무대 위에서 베르테르가 다시는 만나러 오지 않겠다고 하자 롯데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자신을 만나도 되지만 지나치지 않게만 대해달라는 말이 어찌나 미웠는지 모른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진정으로 그를 아꼈다면 확실하게 밀어냈어야 했다. 

공연에서는 롯데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남편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는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원작에서도 베르테르에 대한 롯데의 마음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타인에 의해 간접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책임감 강한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여인이었던 롯데가 베르테르에게도 연정을 품었다는 건 독자 혹은 관객 입장에서 조금은 갑작스럽다. 원작은 줄곧 베르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나 이를 엮은 이의 글만 담겨있어서 그녀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공연에서는 중간의 그 빈 공간을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롯데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베르테르와 알베르트는 어떤지,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하다.




원작에서는 그저 이름 없이 머슴으로 불렸던 한 남자가 공연에서는 '카인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주인집 여자를 사랑한다는 점, 그리고 한 남자를 살해했다는 점은 같지만 그 내용은 조금 다르다. 공연에서는 주인집 여자를 괴롭히는 오빠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한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원작에서의 그는 주인집 여자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내쫓긴다. 자신의 일자리는 곧 다른 머슴으로 채워졌고 결국 그는 그 머슴에게 질투심을 느껴 살해하고 만다.


어떤 남자도 그녀를 가질 수 없고, 그녀 역시 어떤 남자도 가져서는 안 돼요. - p.166


원작에서 그의 말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광기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신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베르테르의 심리 상태와 머슴의 극단적인 행동이 어우러져 비참함을 절정에 달하게 한다. 공연에서의 카인즈는 사랑으로 인한 희생을 극대화했다면 소설 속의 머슴은 사랑의 광기를 극대화시켰다. 사랑이 가진 다양한 모습 중에서 극과 극의 형태가 하나의 캐릭터에서 표현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 나는 당신과 정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였나 봅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놔줄 수 없었습니다! 이 리본 역시 나와 함께 묻어주세요. 당신은 이 리본을 내 생일에 선물했지요! 나는 그 모든 것을 얼마나 남김없이 삼켰던가! 아, 나의 길이 나를 이쪽으로 인도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권총은 장전되었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치네요! 자 이제! 로테! 로테, 잘 있어요! 잘 있어요! - p.211


이 작품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르테르의 마지막 장면이 어떻게 연출될지 궁금했다. 조금은 무섭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에 예술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마지막에 남은 하나의 해바라기마저 떨어질 때 가슴이 철렁했다. 원작에서 베르테르는 밤 12시에 방아쇠를 당긴 뒤 그다음 날 오후 12시에 숨을 거둔다. 그동안 그는 가는 숨을 유지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롯데만을 그리워했을까. 마치 사랑, 롯데, 발하임 이 세 가지만 인생에 존재하는 것처럼 열정을 다한 그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사랑을 받아 명작으로 기억되어 온 것 같다.





사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내가 중학생 즈음에 학급문고에서 꺼내 읽은 책이다. 그저 명작이라고 하니까, 들어본 제목이라서 읽었는데 진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한 남자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그것도 구구절절한 편지글을 읽자니 눈은 종이 위를 굴리고 있었지만 머리는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뮤지컬을 보기 전 한번쯤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사두고는 그때 기억이 나서 잘 펼치지 않고 있다가 하루 전에야 급하게 읽었다. 기억에서의 그는 그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만난 베르테르는 너무나도 슬픈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이 전달되어 가슴이 너무 아팠고 공연을 보면서 슬픔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래서 관람을 한 후에도 계속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자라긴 했나 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와 그의 친구였던 예루잘렘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은 총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1부의 베르테르는 괴테에 가깝고, 2부의 베르테르는 예루잘렘과 가깝다고 여긴다. 에세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담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괴테는 자신의 일화와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친구의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 안에 녹여내었다. 소설가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허구와 섞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부럽다. 하나의 가면을 만들어 그 안에 숨어서 새롭게 창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을 올곧이 드러내는 글을 쓸 때 어디까지 표현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망설일 때가 있다. 하지만 괴테는 베르테르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금단의 사랑이야기와 극단적인 결말이 지금의 나에게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인용한 도서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펭귄클래식코리아 출판, 김재혁 번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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