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위에서 열창하는 둘째 딸들의 한풀이
과감한 가사를 읊조리는 래퍼처럼 차녀의 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차녀 힙합'이라는 책이 나왔다. 보통 장남이나 장녀의 고충을 소재로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차녀의 입장을 대변하는 매체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장녀가 많아서 모이면 각자의 동생을 흉볼 때가 있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둘째여서 혹은 막내여서 철이 없다는 거였다. 거기서 유일한 차녀로서 억울해하며 항변하고자 했지만 나의 말은 그저 '철이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좋은 시절을 만나 이렇게 차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책을 만나서 반갑다.
참 신기하다. 같은 일이 두 개의 몸을 다르게 통과한다. 같은 공간에 앉아 같은 것을 먹어도 판이한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했던 날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슬픈 날로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해맑은 얼굴을 하고서도 자신에게 기울어지는 애정의 각도를 집요하게 곁눈질한다.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모두가 엄마를 언니의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이 무척 불만스러웠다. …누구 하나 실수로라도 엄마를 내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나도 엄마 딸인데. 내 엄마이기도 한데.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p.29)
엄마를 언니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도 서운한데, 내 이름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슬프기까지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엄마에게 울먹이며 말했더니 '그래, 지혜 엄마 말고 지선이 엄마 하자'라고는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순전히 편의상 그랬다는 것을 안다.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나 이미 자녀가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솔직히 그 이름을 다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할 때, 웬만하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서 물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첫째도 가물가물한 와중에 둘째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찾으려면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 그토록 서운해했음에도 나도 그러한 어른이 되고야 말았다. 메모를 해놓아서라도 둘째의 이름도 꼭 기억해서 예전의 나처럼 슬퍼하는 아이가 없도록 해야겠다.
어릴 적 앨범을 들여다본다. 첫아이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긴 언니의 사진이 가득하다. 익숙한 옷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이 옷은 내 사진에서 본 적 있다. 내가 입었던 옷은 '조금 사용감 있'지만. 특히 성별이 같은 두 아이를 기른다면 첫째가 쓴 물건을 둘째가 물려받는 것은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어른의 합리적 선택을 이해할 의무가 없다. 충분히 서운할 만하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소유하는 모든 것이 중고인 둘째에게, 여성성을 뽐낼 아이템은 잘 주어지지 않는다. 튀튀 스커트나 레이스 리본 따위는 연약하고 잘 망가지니까. …아이를 키워본 경험치가 쌓인 부모는 둘째에 이르면 예쁘고 불편한 옷보다는 활동적이고 튼튼한 옷을 선호한다. (p.108/p.133)
'둘째의 설움'이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옷의 대물림이다. 사실 나는 언니의 옷을 입는 걸 싫어하기보다 좋아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 옷을 입은 언니를 보았을 때 예쁘기도 했고 스스로 그만큼 자랐다는 생각에 뿌듯했기 때문이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분명 언니가 입고 사진을 찍었던 여성스러운 원피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하얗고 레이스가 달린 옷들은 이미 수명을 다했을 것이다. 옷을 사준다는 말에 그런 원피스를 기대했지만 엄마가 골라준 건 방수가 잘 되는 재질의 남색 원피스였다. 내 머릿속에 그리며 선망해온, 초원에서 뛰노는 듯한 여자아이의 옷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서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언제나 그랬듯 엄마의 뜻에 따라 편하고 질긴 원피스를 사고야 말았다. '빨간머리 앤'에서 소매가 부푼 원피스를 원했지만 결국 민소매의 수수한 옷을 얻고 엉엉 울던 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은 실용적이고 깔끔한 제품을 선호하셔서 무엇을 사도 오래가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문구용품도 언니로부터 받아서 사용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탬버린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아마 장인이 가죽을 덧대어 만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튼튼했다. 대부분의 반 아이들이 사용하던 예쁜 그림이 그려진 플라스틱 탬버린이 부러운 마음에 나의 탬버린이 망가지도록 최대한 손톱을 세워 강하게 두드리고 흔들었지만 끄떡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칼이나 가위를 사용할 만큼의 대담함은 없었다. 소꿉놀이나 퍼즐도 언니가 쓰던 것들이 많아서 이미 몇 개는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한글 퍼즐이지만 어딘가 맞지 않았고 주전자는 뚜껑 없이 가지고 놀았다. 그런 점 때문인지 다 자란 지금도 문구용품을 좋아한다. 내가 스스로 골라 마음껏 쓰면서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고 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다. 그래서 나의 모든 순간이 그들에게는 앙코르 공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이제는 언니와 나, 첫째와 둘째라는 위치가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첫째는 잔뜩 긴장하고 서툰 부모를 감당하면서, 강도 높은 사랑과 통제를 동시에 받았을 테니까. 나에게 막연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관심과 애정은, 언니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뚫어야 하는 견고한 벽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오답 노트도 있었다. 언니와 부모의 갈등을 지켜보며 다른 전략을 연구하고 실패를 피해갔다. …키타미치 마사유키의 만화『백수 고양이』에는 아기 고양이가 엄마에게 언니를 낳아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나온다. 여동생은 안 되고 꼭 언니여야 하는데, 그 이유는 '언니의 서툰 인생을 참고삼아서, 요령 좋게 살아가는 둘째 딸이 되고 싶어서'다. 언니가 그런 사전 정보 없이 맨몸으로 부딪쳤다고 생각하면 좀 짠하다. (p.65/p.67)
언니가 수능이 끝나고 귀를 뚫었을 때의 집안 분위기가 기억난다. 마치 언니가 비행 청소년이 된 것과 같은 싸늘함에 바짝 긴장했다. 요즘에는 중고등학생들도 귀를 많이 뚫지만 부모님이 엄하기도 했고 언니가 청소년이던 시절에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 내가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귀를 뚫었을 때는 전혀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예쁜 걸로 사서 끼지 그랬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나보다 5년 앞서 있는 언니를 보면 가끔 삶의 예고편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예고편과 본편에 차이가 있듯 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꼭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 도움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에 시달릴 것과 대학 생활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니가 결혼하고 조카를 낳았을 때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고 대학 시절에 잠깐이나마 어린이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힘들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 엄마로서의 삶은 단순히 몇 시간 들러 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고 결코 녹록지 않았다. 첫째 조카가 태어났을 당시에 형부는 야근이 많았고 엄마도 바빠서 내가 잠시 언니네 집에 있었다. 우리 조카는 너무나 작고 참으로 귀여웠지만 통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는 아기였다. 새벽 5시까지 최대한 소리를 지르며 울었는데, 안고 어르고 달래도 전혀 소용이 없어서 마치 알림 장치가 고장난 화재경보기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느낌이었다. 언니도 나도 갓난 아기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행여나 내가 이번 경험으로 다음에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할까봐 미리 걱정하며 모든 아기가 그런 건 아니라고 은근히 달랬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둘째 조카는 이리저리 눕혀놔도 잘 자는 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요즘에는 언니를 만나면 어느새 많이 자란 조카들의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아직 나에게는 모호한 미래이지만 만일 결혼을 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에 대한 예고편을 보고 있다. 덕분에 기혼자들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만일 나라면 어떻게 해 나갈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언니는 그럴 기회가 없이 모든 일을 부딪치며 깨달아야 했다는 점에서 조금 억울할 것 같다.
가족들이 내 취향을 몰라주면 어떨 때에는 꼬박꼬박 정정해줬고 어떨 때는 적당히 체념했다. 좋아하는 걸 양육자가 안 챙겨줘서 못 먹을 나이도 지났고, 막말로 그거 못 먹는다고 죽지도 않으며, 그들도 정보의 처리량에 한계가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설움을 알기에 나는 타인의 사소한 취향이나 식성을 챙겨주고 싶다. 뭘 못 먹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빵을 좋아한다면 짠 빵이 좋은지 단 빵이 좋은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지나가다 맛있는 걸 보면 네가 생각났다고 말해주고 여유가 될 때는 사서 안겨주려 한다. 친구들에게 티를 내고 싶다. 이렇게 너를 신경쓰는 사람이 있다고. 너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p.176)
네 가족이 다 같이 살 때 많이 경험했고 또 서운했던 기억이다. 아빠와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우선적으로 먹을 수 있었고, 나는 좋아하는 음식이어도 다른 누군가가 싫어한다면 먹을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반면 내가 못먹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른 가족들이 안 먹는 경우는 잘 없었다. 물론 내 눈치를 보느라 다른 사람들도 먹지 않는다면 그만큼 불편한 일도 없겠지만, 난 그저 좋아하는 걸 자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피해야 하는 음식을 가족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멀리하는 초코나 커피가 들어간 아이스크림만 한가득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이 한 예다. 예전에는 매일 적어도 커피 두 잔은 마셔야 피로가 풀렸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은 초콜릿이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배가 자주 아파서 내시경을 한 결과 식도염이 있다는 걸 알았고 의사가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먹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 조금만 먹어야지 했지만 입에 대는 이상 습관을 고치기는 힘들어서 배앓이를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정확히 2007년 여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단호하게 초콜릿과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고 지금까지 잘 지켜온 결과 확실히 좋아졌다. 한 친구는 만날 때마다 '아직도 커피 안 마셔? 대단하다'라는 말을 하며 괜히 그 맛을 그립게 만들었지만 내게 맞는 차를 즐기면서 크게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가족들이 이러한 나의 노력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특히 아빠가 '초콜릿 많이 먹더니 왜 안 먹니'라며 매번 물어봤고 나는 그때마다 이유를 답해야 했다. 언니가 결혼한 후 세 가족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피하는지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기억하시는 듯하다. 이러한 사례들을 겪어서인지 누군가 사소한 걸 챙겨주면 고마움을 크게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나도 가까운 사람들의 취향을 신경 쓰게 되었다. 작은 거라도 기억해두었다가 슬쩍 건네기도 하고 피하는 음식은 주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차녀는 일찍이 접한다. 첫째를 위해 마련된 활자의 세계를. 집에 들어오는 최초의 문물은 언제나 첫째의 것이다. 많은 양육자들은 우리 애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며 각종 전집을 사들인다. 차녀는 자연스럽게, 조금 높은 수준의 독서를 하게 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풍부한 독서 경험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이지만, 읽는 행위에서 쓰는 행위로 이동하려면 결정적인 한끗이 필요하다. 음식맛을 결정짓는 한 꼬집의 소금 같은 그것은 아마도 '결핍'.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고 그에 연루될 때는 내 안의 어떤 결핍이 응답할 때다. 태어난 이상 우리는 모두 결핍에 시달리고, 그것을 해소하고자 평생 분투한다. 나의 경우엔, 글쓰기가 결핍을 채워주었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아 도피하고 싶거나 타개책이 필요할 때, 책과 이야기는 나에게 너른 처마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밑에 서 있어도 자꾸만 어깨 한쪽이, 발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올려다보니 나에게만 보이는 구멍이 있었다. 그걸 메꾸고 싶었고, 그러려면 직접 연장을 들어야 했다. (p.228/p.231)
일요일에 가끔 가족과 함께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문고에 가고는 했다. 상당히 넓은 데다가 책도 많아서 마치 신세계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언니 연령에 맞는 책이 있는 코너에만 들렀다 오는 거였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들여다보는 언니 옆에 서서 기다리고는 했다. 자연스럽게 책장에도 내 수준보다 높은 책들이 가득해서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심심한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꺼내서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았다. 덕분에 한글을 자연스럽게 배웠고 한국 단편소설과 같은 책들을 이른 시기에 접했다. 당시에는 내용을 알기 어려웠지만 이후에 교과서에서 발견했을 때 낯설지 않아서 좋았다.
가끔 내가 무엇 때문에 블로그를 열어서 글을 쓰고 있는지와 습관처럼 서점에 가는지, 그리고 항상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기 어려웠는데 저자가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사실 작가가 아닌 이상 글은 일기장에 쓰는 걸로도 충분해서 공개된 플랫폼에 올려두고 행여나 지나치게 표현하지는 않았는지, 결과물을 내놓기에 부끄럽지는 않은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은 긴장하며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주제를 정하고 흐름에 맞추어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배열하는 과정이 일기를 쓸 때와는 달라서 재미있다. 비록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거의 일기장과 같다고 해도 블로그가 공개된 공간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이상 집중해서 쓰게 된다. 또한 관심 분야에 대한 정보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에 보람을 얻는다. 저마다 취미 생활을 통해 허전함을 채우듯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중 하나다.
이 책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차녀는 위로 언니가 있는 '둘째 딸'에 한정된다. 하지만 위로 오빠가 있는, 순서상 두번째 자녀인 딸의 고충 또한 책으로 쓰자면『토지』뺨치는 분량이 될 것이다.
하나의 웃음 포인트는 '그나마 언니라서 다행이지'라는 자조였다. '언니가 만약 남자였다면, 내가 장녀가 아닌 장남과 경쟁해야 했다면?' 나도 늘 같은 생각을 했던 터라 뜨끔했다. 실제로 오빠 있는 차녀의 사연은 눈물 없이 못 듣는다. (p.116/p.166)
중학교 때 친구가 오빠와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울고는 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갔는데 상당히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지 물었더니 현관 옆에 가방이 놓인 걸로 보아 오빠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생존 신고를 하듯 서로 인사하는 우리집의 분위기와 달라서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방에 들어가 놀고 있던 중, 집에 오신 친구의 아빠가 문을 확 열고는 '오빠 배고프니까 빨리 라면 끓여'라고 말했고 친구는 언제나 그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갔다. 그 모습에 약간 충격을 받아서 나에게 오빠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만일 오빠가 있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약간의 장담과, 과연 그럴까 하는 조금의 의심이 뒤섞여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 장면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친구가 그동안 눈물을 보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녀는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처럼 자기가 원하는 구성을 고를 수 없건만 사람들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바람직한 전형으로 착각한다. 똑같은 성별을 둘 이상 낳을 때도 아들 둘과 딸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아들 둘은 1+1인데, 딸 둘은 1-1로 취급된다. (p.88)
부모님은 아들에 대한 미련을 표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딸만 있는 가정을 부족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외갓집의 잔치에 가서 정면으로 직면한 적이 있다. 당시에 손님이 워낙 많아서 정확히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를 보고 '네가 아들로 태어났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고는 '네 이름도 사실 남자 이름이야'라고 해서 동시에 두 번의 상처를 줬다.
순간 대체 왜 내가 아들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하거나 선택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자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못 차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엄마가 무심코 사준 로봇이 그려진 스케치북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으며 12색이 들어있는 색연필 세트에서 분홍색이 가장 빨리 닳을 만큼 천상 여자아이의 취향을 가진 내가 갑자기 대뜸 남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별명 및 영어 이름을 남녀 모두 사용하는 걸로 선택해서 쓰고 있지만, 어릴 때는 그런 것에 민감했다. 어른이 된 후에 아직 나와 본명이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는데 당시에 그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저 내 성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딘가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별로 상처를 주거나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파묻혀 들리지 않도록 바른 소리를 내는 어른들이 많아져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상처를 받는 여자아이들이 없었으면 한다.
여전히 어떤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 콧물을 한 바가지 쏟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덤덤하게 인정했다. 나에게도 '처음'은 늘 특별한데, 부모에게 첫아이는 오죽했겠냐고. …첫번째가 아닌 사랑도 사랑이다.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든 우리는 다 자랐고, 여기부터의 삶은 '내가' 결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요.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까봐 마음 졸였던 모든 딸들이 이제 자기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길. (p.243/p.307)
저자는 3녀 1남 중 둘째인 데다가 언니와 연년생이어서 설움을 더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나마 나는 2녀 중 둘째인 덕분에 나름 막내로서의 장점을 누렸고 언니와 나이 차이가 나서 치고받으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다섯 살 터울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어릴 때는 언니가 상당히 어른처럼 보였고, 혼자서 간단히 계란프라이라도 해 먹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언니에게서 배웠다. 같이 다니면 자매인 줄 모를 정도로 외모나 성격이 다르지만 조화를 잘 이루었다. 이상적이며 감성적인 나와는 달리 언니는 이성적이자 현실적인 편이어서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자라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족은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되어 출생 후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온 원가족이 있고, 성인이 되어 형성한 가족이 있다. 원가족은 일생에서 처음 맺는 관계이자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이 안에서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가 성격이나 태도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한 예로,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상담을 받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시작은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가도 결국 부모가 그러한 양육 방식을 택하게 된 이유를 찾는 것으로 넘어간다. 깊게 들여다보면 부모가 어린 시절에 겪은 가족 관계에 답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으로 인해 형성된 내면의 갈등과 결핍은 여러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고는 한다. 자녀의 양육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관계 형성과 문제 해결 방식 등에 있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뒤틀려서 또 다른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하더라도 태어나면서 원가족을 선택한 사람은 없으며 어쩔 수 없이 누구나 겪는 것이기 때문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며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꾸어 나갈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있다.
나는 '가족'이라고 하면 세상이라는 망망대해를 함께 밀고 끌며 헤쳐 나가는 하나의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관계망을 형성하지만 가정이라는 기본 단위만큼 전 생애에 걸쳐서 깊게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부분이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원가족도 여느 가족처럼 관계 속에서 소소한 서운함과 불만을 주고받았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팀이어서 다행이다.
'돌 사진이 없고 어릴 적부터 중고 물품을 물려받은 사람'을 서평단으로 모집한다는 공고에 호기심이 생겨서 참여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둘째 딸들의 한풀이에 공감하며 신이 났으나 점점 가족의 의미와 그를 둘러싼 사회의 인식 및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족마다 구성원이나 특성이 천차만별이어서 모든 둘째 딸들이 책 속의 내용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가족 내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을 차녀들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서로 이해할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연 차녀 외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져줄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한 명의 차녀로서 이제야 조명을 받아 목소리를 내는 시기가 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