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견을 전제로 이야기합니다
예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상품이나 트렌드 중에는, 약 7년 전쯤 일본에서 먼저 히트한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그동안의 흐름을 정리해 보며 자료를 검토했고, 그 결과 몇 가지 분명한 패턴이 보였다.
첫째,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며 '경험'과 '콘텐츠' 중심의 소비로 이행했다. 둘째,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삶의 질, 건강, 환경을 중심으로 한 소비 트렌드가 강세를 띠었다. 셋째, 음악과 엔터테인먼트에서도 흐름이 있었는데, 90년대 일본이 현실도피형 감성 발라드가 중심이었다면, 한국은 7~8년 뒤인 2010년대 초 자아 회복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메시지 중심의 OST와 자립 서사가 부상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2005년 소비 트렌드는 한국에서 약 2012년경 비슷하게 나타났고, 이는 단순한 유사성을 넘은 구조적 반복처럼 보였다. 이 흐름은 2020년 이후에 들어서며 점차 시차가 축소된다. 홈 DIY, 웰니스, 다양성과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재는 양국 모두에서 비슷한 시점에 등장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정보 접근이 국가 간 문화 시차를 줄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보의 흐름과 실질적인 시장 소비는 다르다. 문화는 누군가가 '실현'해야 하는 것이며, 이를 구현한 기업과 호응한 소비자 없이는 상업적 트렌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종종 해외에서 들여온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시장에서 외면당한 사례도 있다.
결국 '히트(Hits)'는 '핫(Hots)'의 결과이고, '핫(Hots)'은 '힙(Hips)'이 먼저 감각적으로 반응한 후에야 비로소 시장에 닿는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가장 큰 비밀은 이 Hips-Hots-Hits의 흐름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다. 많은 이들이 이 철도에 올라타고 싶어 하지만, 정말 앞서가는 감각은 드물다.
사실 일본이 걸어온 길은 우리에게 많은 실마리를 주었다. 1980~90년대, 일본 문화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수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소비되고 있었다. 일본의 음악, 드라마, 아이돌은 당대 한국인들에게 큰 신선함과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오늘날 SNS와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문화의 전파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러한 비교는 단순한 과거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이 약 7~8년 전(2018~2019)에 경험한 소비 흐름을 살펴보면, 2026년 한국의 소비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 웰니스와 테크의 융합: 저자극 비건 화장품, 뷰티 디바이스, 멘탈 헬스 앱 등 일본에서 유행한 요소들이 한국에서도 정신 건강 디바이스, 비대면 셀프 케어기기, 감정 회복 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2. 정크푸드의 웰빙화: 일본에서는 건강하면서 맛있는 편의점 간편식과 저당 디저트가 인기를 끌었고, 이는 한국에서도 곤약젤리, 프로틴바, 건강 디저트로 이어질 전망이다.
3. 혼자 쓰는 고급 소비: 일본의 1인 프리미엄 소비는 이제 한국에서도 혼밥 전용기기, 개인 향기 제품, 감성 테이블웨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핵심은 '혼자지만 공감되는 혼자'다.
4. 정체성 소비의 부상: 팬덤을 넘어선 자기만의 이유로 특정 물건을 소장하고, 이를 공유하는 느슨한 커뮤니티—일종의 '소장단'—문화가 부상하고 있다.
이 흐름을 보면, 단지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는 한국이 새로운 선두주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로나19는 이 시차를 더욱 압축시켰다. 전 세계가 동시에 '집 안'으로 들어가며 비슷한 경험을 했고, 홈트레이닝, DIY, 비대면 활동은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한일 양국을 놓고 봤을 때, 또 하나의 변곡점은 K-Culture의 일본 내 확산이다. 드라마, 음악, 웹툰은 물론, 한국식 소비 방식과 감성 자체가 일본에서 일상으로 녹아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일본의 트렌드만 보고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지금부터는 한국이 '힙'을 만들고 '핫'을 이끌며, 스스로의 '히트'를 설계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는 걸까?
지금부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일본의 트렌드뿐 아니라 그들과 엮이는 우리의 위치다. 누가 먼저 흐름을 감지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철도 위에서의 좌석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