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20. 체크리스트를 버릴 때, 비로소 시작되는

호텔 조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알람을 설정하고,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가 가장 많이 찍힌 포토 스폿을 지도에 저장하며, 남들이 꼭 먹어야 한다는 음식점의 대기 줄에 몸을 맡기는 일. 우리는 이것을 흔히 ‘여행’이라 부르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관광(Tourism)’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관광은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낯선 문화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행위입니다. 자본이 만들어낸 쾌적한 궤적을 따라가며 안락함을 사고, 이름난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것은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달콤한 휴식이자 훌륭한 레저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에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남는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최근 트렌드는 이러한 '소비하는 관광'에서 벗어나, 자기 탐구와 깊이 있는 몰입을 지향하는 ‘여행(Travel)’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많은 곳을 찍고 오는 '체크리스트 여행' 대신, 하나의 명확한 주제로 자신의 노정을 엮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지방의 오래된 서점들만을 찾아다니거나, 특정 작가의 문학적 발자취를 따라 걷는 식입니다.


여행은 소비가 아닌 ‘구성’입니다. 내가 선택한 하나의 테마가 지도가 되고, 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건들이 서사가 됩니다. 관광이 세상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돌리는 일이라면, 여행은 그 세상을 통과해 다시 나를 향해 거울을 비추는 일입니다. 정해진 루트를 이탈해 골목 끝에서 만난 이름 없는 카페의 고요함, 계획에 없던 비를 피하려 들어간 처마 밑에서 느낀 흙내음. 이런 무용한 순간들이 겹쳐질 때, 장소는 비로소 나만의 ‘기억’이 됩니다.


관광객은 길 위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여행자는 길 위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노정의 마디마디에 스며들 때, 우리의 이동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한 편의 에세이가 됩니다.


이제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 타인의 취향이 반영된 핫플레이스 목록 대신,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들고 길을 떠나보세요. 완벽하게 준비된 쾌적함보다는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목적지가 분명한 당신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관광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당신의 진짜 여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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