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즐 #21. 햇살이 고요히 머무는 자리를 찾아서

“배우 박보검의 이미지는 볕이 좋은 날 창호문의 창호지 같아. 밝고 따스하지만, 결코 눈이 부시지 않은”.


참 이상하죠. 그를 직접 마주한 것도 아니고, 그저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웃음을 보았을 뿐인데 제 마음속에는 그런 문장이 툭 떨어졌습니다. 제 안의 감각이 그 단어들을 빚어낸 모양입니다.


'회사와 나 사이에는 일하고 돈을 받는다는 함수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정하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이 문장은 차가운 외면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필사적인 정직함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햇살의 투명도에 마음을 뺏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계의 군더더기를 도려낸 명료한 수식을 사랑하는 사람.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제 삶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취향'의 두 기둥입니다.


제 취향은 화려한 조명보다는 스탠드 불빛 아래의 아늑함을 선호합니다. 카페에 가도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직사광선보다는, 레이스 커튼이나 얇은 블라인드를 한 번 통과해 순해진 빛이 머무는 구석 자리를 먼저 찾게 되더군요.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요? 너무 강한 빛은 눈을 멀게 하고, 너무 명확한 진실은 때로 상처를 줍니다. 창호지처럼 한 번 걸러진 온기, 상대의 허물을 다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그 존재감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그 적당한 거리감을 저는 늘 동경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따스함을 유지하기 위해, 저는 일터에서만큼은 아주 냉정한 '함수'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제게 자아 실현의 성전이기보다, 제 소중한 일상을 지속하게 해주는 든든한 보급로입니다. 내가 제공하는 노동과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 이 함수 관계가 투명하고 깨끗할 때, 비로소 퇴근길의 노을이 아름다워 보이고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건네는 "사랑해"라는 말이 순수한 무게를 갖게 된다고 믿습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아야 할 곳에 감정을 쏟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나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인 셈이죠.


저는 종종 포스트잇에 오늘의 테마를 적어보곤 합니다. "오늘은 창호지 같은 날이었나, 아니면 함수 같은 날이었나." 사실 답은 늘 그 중간 어딘가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창호지가 되어주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함수처럼 군더더기 없는 삶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


사람들은 제 글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특별히 대단한 통찰이 있어서가 아닐 겁니다. 그저 일가에 핀 꽃 한 송이에서 삶의 유한함을 느끼고, 복잡한 엑셀 시트 안에서 관계의 본질을 고민하는, 당신과 닮은 지극히 평범한 시선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누군가의 눈을 부시게 하는 치열한 빛보다는, 그저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은은한 창호지 같은 온기를 품고 있나요? 혹은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끊어내고 단순 명료한 함수처럼 명쾌해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어떤 모습이든 괜찮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모여 당신이라는 고유한 취향의 무늬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저는 오늘도 제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노트에 적어봅니다. 오늘의 햇살은 어제보다 조금 더 창호지를 닮았고, 내 마음의 함수는 조금 더 단순해지기를 바란다고요.


이 글이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온기로 닿았기를 바랍니다. 혹시 당신의 일상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어떤 표현이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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