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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Oct 25. 2017

F**king France

프랑스는 과연 인종차별의 끝판인 나라다

2016년 2월 19일, 프랑스 니스에서 울면서 쓴 일기.


심지어 오늘이 프랑스 온지 딱 한 달 되는 날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

아닌 척 아무렇지 아는 척 괜찮은 척 해왔는데

오늘 모든게 무장해제 되었다

나는 갈기갈기 찢기고 와르르 무너졌다

난 아직도 너무나도 무르다

이유를 따질 수도 원인을 찾을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인종차별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자존감 아니

인간 본연의 존엄성이 바닥 친 것도 처음이다

여기를 너무 떠나고 싶고 매일이 벅차다

기분 좋은 일들, 좋은 사람들, 행복한 추억도

몇몇의 머저리들 때문에 다 지워지고 가려진다

통째로 이 나라가 미워지고 오만해 보인다

동시에 나는 살아오며 그러지 않았나 돌아본다

타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한국 사람들이

매일매일 존경스러운 나날이다

다가와서 얼굴 맞대고 눈 마주치며

"니하오"라고 외치는 아저씨는

왜 여행하는 중에 왜 하필 한 달 째인 오늘

나에게 그랬을까

속으로 수도 없이 프랑스를 욕했다

왜 하필 오늘







니스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은 날이었다. 카니발을 위해 니스에 들렀는데, 메인 쇼는 아니지만 이날 저녁에 전야 프로그램 개념으로 게이 카니발이 있는 날이었다.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 숙소에서 나갈 채비를 하다 핸드폰으로 어떤 기사를 접했다. 미국의 'American Idol'의 프랑스 판인 'Nouvelle Star'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어떤 한국인이 참가해 Edith Piaf 노래를 불렀는데, 심사위원들이 그를 대놓고 조롱했다는 기사였다.


프랑스에 온지 한 달 남짓되었지만, 그새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여러번 당한 나로서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뭐야?


일단 숙소를 나섰고, 저녁 카니발을 보러 가기 전 일정들을 소화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 먹을 거리를 사려고 마트의 일종인 Monoprix에 들어갔다. 일행들과 함께였지만 (어차피 나를 포함한 셋 다 여자였지만) 각각 떨어져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민소매를 입은 50대 남짓의 아저씨가 나에게 험상궂은 얼굴로 성큼 성큼 다가오더니 "Ni hao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지만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말리거나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며 위협적인 표정을 하고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더 다가왔다. 나는 숨이 멎었다. 손이 덜덜 떨렸고, 대응하기는 커녕 순간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반격이라도 하면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다. 한참을 날 노려보고 중얼거리며 그 아저씨는 떠나갔고, 멀리있던 일행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주고 한국말로 쌍욕을 소리쳐주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무슨 뜻인진 못알아 들었겠지만 직감적으로 욕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나에게 다가오려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달렸다. 허겁지겁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가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 여기서 뭐하고 있지? 내 쌩돈 주고 여기서 공부하고 돈 쓰고 있는데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지?


아직 해가 떠있는 낮이었고 실내였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가리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쓰고 그 곳을 빠져나와 숙소로 가는 길 내내 눈물을 흘렸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에 보기로 했던 카니발을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엉엉 울었다. 너무 속상하고 무섭고 우울했다. 여기에 최소 1년은 공부할 요량으로 왔는데,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조금 진정하고 시간이 지난 뒤 핸드폰을 들여다봤는데, 한국에 있을 때 나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셨던 프랑스인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Nouvelle Star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기사를 첨부해 업로드했다. 나는 화가 나서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 저 너무 억울해요. 힘들어요. 제 말 좀 들어주세요 하는 기분으로. 물론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이었다.

'나도 지금 프랑스인데, 내가 느낀 인종차별이 너무 심하고, 이런 사건 들도 너무 속상하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또 다른 한국에 체류하는 프랑스인들이,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나에게 공격적으로 답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두 세명이서 댓글을 다는데 죄다 내용이 '나도 한국와서 엄청난 인종차별을 당했어. 지구 어딜 가나 인종차별은 존재해.' 라고 '한국에 사는 백인 남성들'이 나를 다그치는게 아닌가?


나는 더 화가 났다. 아직 유창하지도 못한 불어로 쏘아붙였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당연히 당신이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차별을 당했을 수 있고 그 점에 대해선 나도 유감이며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 그런데 과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TV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조롱하거나, 길만 걸었다 하면 남성들이 귀에다 소리를 지르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마트에서 길을 막고 겁을 주거나, '나 방금 세 명의 중국인을 봤어!' 라고 면전에 소리치는 프랑스인들보다 더 한 한국인을 만났을까? 나에게 그들이 토로한 인종차별은 '외국인이라고 찜질방 입장을 거부당했다' 뭐 이런 거였다. 물론 부당한 대우이지만 당신은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가? 어떻게 나에게 '나도 한국에서 인종차별 당했거든?'이라는 말로 날 몰아세울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인간들.



니스에서 약 일주일간 머물렀지만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매일' 인종차별을 당했다. '매일'.

물론 여행을 다녀와서 앙제로 돌아와서도 매우 '자주' 인종차별을 당했다.


수백번이지만 가장 큰 경험을 나열해 보자면


1. 고등학생 남자 무리들이 길가며 수차례 야유


2. 기숙사 근처 마트에서 장보는데 남자 셋이서 나를 벽으로 몰아세우고 둘러싸며 협박


3. 시내 큰 마트에서 장보는데 내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서 양손으로 자기 귀를 늘리며 '끼끼! 끼끼!' 하며 원숭이 흉내


4. 기숙사 복도를 지나가는데 어떤 남자애가 '니하오!' 하고 뛰어가며 소리침. 그건 분명 인사가 아니었다. 모르는 사이라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프랑스이지만, 보통 'Bonjour'라고 인사한다. 그는 뛰어가며 봉주르가 아닌 니하오라고 소리쳤기 때문에, 그리고 표정만 봐도 저게 인사인지 조롱인지 확연히 구분되기에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였다. - 그래서 따라가서 너 나 아냐고, 넌 왜 나보고 니하오라고 했냐고, 난 중국인이 아닌데 무슨 근거로 니가 나한테 기분나쁘게 니하오라고 소리 치냐고 따지자 '내가 요즘 중국어를 배우는데 어쩌구 저쩌구... 연습하려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되도 않는 핑계를 대곤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


5. 옆 도시 낭뜨(Nantes)에서 프랑스어 자격증 시험을 치기 위해 야외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고등학교를 다니는 남학생들이 나를 보고 '칭챙총!!!' 을 여러번 외치며 도망갔다.


6. 까르푸에서 밤 9시 20분까지 장을 봤다. 계산하고 나와서 화장실을 가려는데 화장실 청소하고 막 나온 직원이 날 보고 "Putain..." 이라고 해서 빡쳐서 그냥 나와버렸다. 왠지 곧 마트 닫을 시간이라 청소 다해놨더니 사람 들어가려고 해서 그도 화난거 같은데 그렇다고 사람 면전에다 욕을 하나? 내가 건장한 백인 남자였어도 그랬을까? 


7. 기숙사 공동 주방에서 나와 한국 친구들, 홍콩/중국 친구들끼리 음식을 해먹으며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을 때 (당연히 나는 광동어나 중국어를 전혀 못하고, 홍콩 친구들은 불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옆 테이블에서 프랑스인 학부생들이 우리가 불어를 못하는 줄 알고 자기들끼리 우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 쟤네 중국 음식 냄새나. 으

- 중국인들끼리 왜 영어해?ㅋㅋㅋ 존나 웃긴다 (그들 눈에는 다 같은 중국인으로 보인다)

- 불어도 못하면서 왜 프랑스는 오고 난리야

- 쟤네 언제 나가? 짜증나 ㅋㅋ (우리가 사람 수가 많아서 자기들 일행이 앉을 곳이 부족했고 한 두명이 서있었다. 우리가 불법 점거를 한 것도 아니고, 억울하면 니들이 일찍 오지 그랬어)

- 쟤네 말하는 거 진짜 웃겨~


불어를 할 줄 아는 나와 한국 친구들만 일제히 표정이 굳어갔다. 우리는 다 알아들었으니까. 더 비참하고 우울하고 슬픈 건, 그 자리에서 우리는 따져 묻지 못했다는 거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들 무리를 우리가 어떻게 대적할까. 말싸움이 되지도 않을텐데. 하며 우리는 분노를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불어를 더 잘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함께 쌓여갔다.


이 외에도 많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웬만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여 지지도 않는다. 참 처절하고 비참한 사실을 하나 깨우쳤는데, 인종차별자들의 표적은 늘 '동양인 여자'라는 것. 가해자들은 늘 '프랑스인/아랍인 건장한 남자'라는 것.


이 세상은 혐오로 만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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