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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Jul 09. 2023

홀로 섬살이 [17주 차]

섬 생활 3분의 1을 보내며

"이로서 입도한 지 4개월이 됐습니다."


토요일 다녀온 북콘서트 촬영에서 배운 표현, '입도한 지 얼마가 됐습니다.'


주말 촬영이 연이어 생겼다.

그 때문에 상사나 제작진과 겪는 갈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볼멘소리를 들어줘야 하는 것도 나고, 그걸 헤쳐나가야 하는 것도 나고,

끝까지 남아서 제작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나다.


누군 뭐 남들 쉴 때 일하고 싶나,

나도 평일에 찍을 수 있는 아이템을 잡으면 좋겠지!

아이템 하나 잡기가 쉽지 않은 실정을 안다면

내게 이렇게 쉽게 불평불만을 할 수 없을 텐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삼달리의 사람을 잇는 공간에 가 오십여 명 모인 곳에서 영혼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고 왔다.

북콘서트가 10분 분량 영상의 전체를 차지할 것도 아닌데도 오후 내내 참 열심히 찍고 왔다.


내 보통 때의 편집 기준에선 잘라낼 법한 멘트인데 살리고 싶었던 토크도 있었다.

내 개인사와 결부돼 있어서, 내가 들으며 너무 눈물이 나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은 통으로 담으려고 벼르고 있다.



지난달 말, 올해 받을 수 있는 임직원 건강검진을 앞당겨 받았다.

가장 몸이 지쳐있던 순간이었고, 나와 같은 일을 하며 가까이서 지켜보던 선배가,

"처음엔 의지가 가득한 눈이었다면, 지금은 의지는 있는데 피곤한 눈을 하고 있네."라며

내 체력을 걱정해줬다. 그렇게 걱정해준 사람도 잘 없다. 처음이기도 했고.

"특명을 내리겠다, 삼일 정도 휴가 갔다 와."


하지만 휴가를 써봐야 작디작은 한 칸짜리 오피스텔 방에 누워 청승이나 떨고 있을 게 뻔하고,

정말 진심으로 눈앞에 할 일이 아른거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채로 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공가를 쓰고 건강검진이나 받고 오자는 거였다.


검진 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고 예전과는 달리 이상이 있을까 봐 걱정도 됐다.

일부 추적검사가 필요한 데가 있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꾸준히 진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어서 걱정은 한시름 놓기로 했다.


몸이 먼저 지치니 마음도 같이 무너지는 걸 지난주부터 크게 느끼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긍정회로를 돌리지 못하니 다른 사람에 관해서도 좋은 말이 안 나왔다.

이렇게 남 미워하고 험담하다가는 내 이미지도 이미지거니와 내 영혼을 갉아먹겠다 싶어

정신 수양 겸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일에만 치여 살 수도 없고, 그것이 더는 미덕이 아닌 세상 아닌가.

초과근무한다고 상사로부터 한 소리 들어 힘이 쭉 빠졌더랬다.



섬에 들어오기 전, 인터넷으로 매일 알아본 것이 오피스텔, 빌라 매물이기도 했지만

유명한 요가원이기도 했다.

제주 하면 또 요가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 수련을 하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제대로 요가를 배워봐야지 했지만, 웬 걸, 넉 달이 되도록 운동은 시작도 못 했다.

한라수목원 걷기, 바다까지 무작정 걷기 정도나 해봤을까.

드디어 내일부터 새벽 수업을 받는다.

바로 출근을 하기 위해 옷도 챙기고 목욕용품도 챙기면서 살짝 긴장도 됐다.

오랜만에 운동을 끊어 다니는 것이기도 하고, 내 마음가짐이 어떻게 변할지도 기대가 돼서다.


운동할 때 입을 티를 산다는 핑계로 옷가게가 모여 있는 칠성로로 향했다.

빨리 마르는 기능성 소재 옷을 각각 나이키, 아디다스에서 한 장씩 사고,

그 외에도 사고 싶은 옷을 샀다.

특히 여름철 입는 얇은 두께의 청바지를 사고 싶었는데, 딱 원하던 소재의 옷을 사 소원 풀었다.

90년대 말 1세대 아이돌들이 입던 통 넓은 바지가 다시 유행이 되면서

가만 지켜보니 회사에서 아이들(?)이 다 바닥에 질질 끌릴 법한 와이드 팬츠를 입고 다니더란 말이다.

테이퍼드 핏이나 맘 핏, 배기 핏을 좋아해 발목을 드러내고 다니던 내가 와이드 팬츠라니,

근데 바지 스타일 하나 바꿨다고 마법처럼 한결 어린 느낌이 났다.

통바지의 다리가 길어보이는 효과를 오늘 처음 경험했다.



매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하루종일 붙어있으면서 촬영을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조금은 보인다.

출연자의 하루를 같이 따라 다니고, 시간이 맞으면 중간에 같이 점심도 먹고,

시간이 뜨는 경우엔 카페에 가 커피도 같이 마신다.

또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인터뷰도 하다 보니 그 사람의 인생 축약본이 읽히는 셈인데,

그러면서 나도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저마다 소명을 갖고 있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기에

내 눈에, 또는 작가 눈에 띄어 TV에서 소개도 되고 하는 것이겠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건 무엇이고 앞으로 해야 할 건 무엇인가,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사람에 관해, 세상에 관해, 인생에 관해,

그리고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 일이

몸과 마음이 이토록 지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참 좋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생활이기에 나는 이 와중에 또 멈추지 않고 발전하는 거겠지.


요가 수업이 부디 내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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