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섬살이 [16주 차]
마음의 휴가가 필요한 때
어느덧 타성에 젖는다.
고작 16주, 넉 달을 보냈을 뿐인데도 사람은 역시나 무섭게 적응한다.
처음 촬영을 나갈 때 너무 긴장이 돼 작가가 써준 구성안이 있는데도
내가 직접 장면을 쪼개고 쪼개 쓴 구성안을 밤새 보고 또 보면서 마음을 졸였던
그때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섬에 들어온 지 딱 넉 달이 되던 날,
일요일임에도 나는 촬영을 갔다.
주말에 찍을 수밖에 없는 아이템은 어쩔 수 없이 제작진을 어르고 달래
평일 여느 때처럼 촬영을 나간다.
이젠 첫 촬영날처럼 맘 졸이거나 만반의 준비를 하지는 않는다.
여섯일곱 번 정도 나가 보니 여유도 생겼고 걱정해서 되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도 촬영 전날 밤은 약간의 긴장감을 간직한 채 짧게 눈을 붙인다.
실은 몸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잠을 줄여가며 새벽같이 일어나 편집실을 향했고,
오라는 부서 회식에도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나니,
남은 건 만신창이 내 몸뚱이, 예전 같지 않은 고갈된 체력이 야속할 뿐.
부모님이 물려주신 신체가 아픈 데 없이 건강해서
믿는 거라곤 내 강철 체력과 튼튼한 운동 능력이었는데
이제는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진행되고 있어 그런가,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특히 회사에서 생기는 피로감은.
그 피로가 심해진 건 아마도 지난 촬영 때문인 듯싶다.
바다에 뛰어들 인원이 충분치 않았고,
물에 들어가 촬영을 할 사람도 없었다.
일단 내가 들어가겠다 했다.
그래야 구성도 풍성해질뿐더러 제작진도 바다 촬영 성가시다고 불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전날 회식으로 피곤했는데도 감행했다.
무리였나 보다.
그날도 피곤하더니, 그 다음 날도 피로가 가시질 않았고
그게 지금 한 2주째 지속하고 있다.
보다 못해 같은 프로그램 선배가 특명을 내리겠다며
사흘 휴가를 좀 다녀오라 했다.
하지만 난 일이 눈에 밟히는데 어떻게 가냐고,
그냥 무식한 소릴 해댔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간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휴가를 못 간다.
성격이다.
다만 휴가보다도,
일 끝나고 지친 몸 이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맥주 한 캔 같이 나눌 사람이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