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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Jul 18. 2023

홀로 섬살이 [18주 차]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일이 잘 안 풀릴 때, 불안·초조·공포에 떨며 바쁘게 일을 이어가야 하는 극강의 스트레스 상황일 때,

내가 빠른 어조로 내뱉는 습관적인 물음이다.

나 자신에게 하는 혼잣말이기도 하고,

옆에 편한 누군가가 있다면 진심으로 기대고 싶어서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이 물음을 던져도 아랑곳 않고

"잘하면서 왜 그래, 이 사기꾼아."

해주던 무조건 내 편이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불안하다.

해소가 안 돼서, 

정말 뜬금없이 같이 일하던 선배 방 앞에 가서

똑똑,

1초의 기다림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서 물어봤다.


"제가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인데요,

이것도 지금 다 됐음 좋겠고요, 저건 저렇게 해야 하는 상황인데 해결이 안 나고 있고요,

또 요건 요렇게 당장 해야 하는데 제가 왜 이것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다고요."


큰 눈을 가진 선배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던 일에 다시 시선을 고정한다.

나도 일하는 선배의 옆통수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 어떻게든 되겠죠?"

"응."

"네, 알았어요."

문을 고이 닫아드렸다.


내가 생각해도 요즘 난 참 많이 힘든 내색을 한다.

이거 아닌데, 내 스타일.

전에는 더 과한 업무량에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내가 개인적으로 그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해소할 창구가 없어서

직장에서 그걸 다 표현하는가 보다.


피해를 주기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염시키기도 싫은데

요즘따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주 무너진다.

그래서 일하는 속도도 더디다.



한 주가 지나기 전에 웬만하면 글을 쓰려고 한다.

이젠 더는 글쟁이로 살지 않으니 글 쓰는 두뇌가 굳어버릴까 봐 연습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매일 일기(日記)를 쓰기엔 내가 너무 게으르고 한 주 있었던 일을 주기(週記)로나마 남겨두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영상으로 나를 표현하고 있는 만큼, 그 연장선상에서 글로도 나를 드러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자세로 살면 어떨까 하는 새로운 인생살이에 관한 다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게을리하게 되더니 의지가 박약해져

어젠 노트북을 침대 맡에 가지고 와서는 보듬고 한참을 졸았다.

뭘 써야 할지도 막막했다.


핑계를 좀 대자면 자도 자도 졸렸다.

한번에 깊이 있는 수면을 못 한 지 오래됐다.

그래서 피로하고 또 피로한가 보다.

특히나 멍 때리기를 할 줄 모르는 내 뇌는 분명 언젠가 지쳐서 gg 치고

내 두개골을 열고 도망가버릴 것 같다.


가뜩이나 인풋(Input)이 적고 아웃풋(Output)이 많은 인생을 살았는데,

- 그럴듯해 보여도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북 페어 때 책을 잔뜩 사놓고도 아직 제대로 읽은 책이 펴지도 않은 책들보다 많고,

활자를 읽는 데서 피로함을 벌써 느껴버리니 책장을 넘기기가 백화점 문 열기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체력적 여유가 생기면 남의 글을 읽는 것도 가뿐해진다.

그래서 더욱이 운동을 해야 하고, 나는 고강도 운동이 아니어도 요가 정도라도 꾸준히 다녀야 한다.



경영 팀에 불려 갔다.

지난달 초과근무를 너무 많이 해서, 정산을 할 수가 없단다.

208시간이 월 최대 근로 시간인데, 70여 시간을 초과했단다.

그래서 난 늘 그렇듯이 자초지종도 말하기 싫고, 왜 그랬냐는 푸념 따윈 당연히 듣기 싫어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먼저 물었다.


썼던 휴가를 반납하고 근로한 것으로 치고,

나머지 욱여넣을 수 없는 시간들은 다 버리기로 했다.

주말 촬영에, 조근과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했던 편집 업무에,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쌓였던 모양이다.

직장이라는 곳에 별 기대가 없어서인지, 섭섭함이나 답답함은 물론 분노도 없다.

회사가 다 그렇지 뭐.


208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이어서, 회사에 할 원망은 아니고,

다만 윗사람들이 내가 오랜 시간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태도를 존중해주고 도닥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인데,

어떤 아이템인지는 들어보지도 않고 주말엔 촬영 잡지 말라고 한다든가,

알아서 근무 시간을 줄이라고 한다든가 하는 말들로 내 사기를 꺾어버리는 것이

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신체적·정신적 체력을 겨우 안배해가다가도 김이 새서 쭈욱 힘이 빠진다.


경영 팀에도, 내 상사에게도 분명히 말은 했다.

"제가 그렇다고 갑자기 일을 줄일 순 없어요. 이대로 하긴 할 거예요.

다만, 앞으로 제가 시간은 잘 체크하겠습니다."


이곳이 내가 겪었던 다른 곳들에 비해 악한 사람들이 그리 없어서일 수도 있고,

이제는 내가 이 정도는 힘줘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와 태도가 갖춰져서일 수도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했던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멋지다고 생각한다.



카톡을 배우신 이후로는 매일 좋은 글귀와 축전 같은 사진을 보내주는 엄마는,

요즘 내가 전화가 뜸하니까 왜 이렇게 연락을 잘 안 하냐고 볼멘소리를 하신다.

한 통만 못 받아도 걱정을 하시고, 내 끼니를 늘 염려하신다.

알지, 알지.

나여도 하나밖에 없는 딸, 섬에 보내놓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이상 마음이 놓이지 않으리라.

자주 연락드려야 하는데, 머리가 복잡하니까 말수가 적어지고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주말에 일하느라고 한 달여를 집에 못 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동안 못 가도 3주에 한 번은 꼭 집에 갔던 걸 생각하면

꽤 내가 여기 녹아든 것 같기도 하다.

대신 사람들이 날 찾아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나 홀로 있고 싶었다면, 이제는 소통하고 싶다.

공유하고 싶고, 내가 기뻤고 즐거웠던 게 있다면 최대한 나누고 싶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고 싶다.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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