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고 있는 걸까요?
친구 커플이 왔다 갔다.
3박 4일 여정이 짧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걸 보니 즐겁게 지낸 듯했다.
나는 이 예쁜 커플에게 바다든 계곡이든 좋으니 일단 물에 들어가라고 일러줬더랬다.
내 오랜 수영 메이트이자 나만큼 물을 좋아하는 친구이므로,
한여름에 제주를 찾는다면 무조건 물놀이다, 강조 또 강조를 했다.
내가 토요일 아침 비니 요가 특강을 듣고 나오니 이 커플이 요가원까지 딱 맞게 나를 데리러 왔다.
아직 흑돼지를 안 먹었다기에 이전에 먹어보고 맛도 서비스도 좋았던 고깃집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10년 만에 투샷을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앞에서 내가 말은 안 했는데 둘의 모습이 참 안정돼 보였다.
벌써 10년이라고…?
이 둘이 이렇게 견고해질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지?
흐릿한 여러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던 치열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년이든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넌지시 내다본다.
난 뭘 해줘야 하지, 사회를 봐줘야 하나 촬영을 해줘야 하나.
내가 강력 추천한 프릳츠 성산점에 다녀왔다며, 내 선물을 또 바리바리 사들고 왔다.
무슨 게스트가 호스트한테 선물을 이렇게 해.
진주 가서 술 한 잔 제대로 사야겠다.
제주가 이런 건지, 올여름이 유독 이런 건지
더위를 전혀 안 타는 나도 이 여름은 힘들다.
원두값이 부담돼서 생두를 사다가 집에서 볶기 시작했는데,
20분 이상을 불 앞 있다 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주방의 열기가 어마어마해서 당분간 셔터를 내렸다.
프릳츠 신커피도 매일 마셨더니 금세 동이 났고
볶아둔 원두는 똑 떨어진 지 오래고
아무래도 이젠 로스팅을 해야 할 때가 왔지 싶었다.
그래도 태풍이 지나간 뒤로 한풀 꺾인 게 느껴져서 더워지기 전에 아침 일찍 볶아버렸다.
장비가 따로 없는지라 프라이팬에서 깨 볶듯 볶는데,
고루 볶이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타고 부분적으로는 덜 볶인다.
파핑이 두 차례 오고 나면 체프와 재로 온 주방이 뒤덮인다.
방앗간 꼬순내가 나고,
다 볶아 쿨링할 동안 주방을 청소하고 나면 나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쿨링할 선풍기 하나 없어서 몇 번 프라이팬과 용기를 왔다 갔다 옮겼다가
냉장고에 집어넣어버렸다.
잠시 식히고 꺼내 향을 맡으니 벌써 풋내가 사라지고 원두 향이 난다.
산미가 달큼하게 살아날지 일주일 뒤를 기대해보겠다.
촬영을 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 뭔가 더 예쁘다.
꿈이 있고 방향이 있고 일정 속력을 내기 위해 탄력을 받고 있는 게 보여서.
이번 촬영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울림이 컸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준비도 철저한 멋진 청년.
이미 촬영하면서 빅뱅 데뷔 전 연습생 시절 모습 다큐, '세상에 너를 소리쳐!' 축약본이 눈앞에 그려졌다.
방송은 9월 8일.
쉬이 잠이 들지 않는 밤이 있다.
벌써 두어 달 됐다.
밤잠을 설치며 상념에 사로잡히다 두세 시간 남짓 자고는 아침 운동을 갔다.
이렇게 피곤하나 저렇게 피곤하나 달라질 건 없어서 알람 소리에 예민한 몸을 이끌고
동이 트기 전 오늘 하루동안 필요한 모든 짐을 등 뒤에 바리바리 챙겨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자다 일어나면 예외 없이 다리에 쥐가 나 신경이 쓰였다.
마그네슘이 모자라 그런가,
분명 잠이 모자라 회복이 더뎌 잔고장이 나는 걸 테지만,
불안할 때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원래 내 사고 패턴대로 과학적으로 접근해본다.
근거, 원인을 찾고자 하면 맘은 편하다.
튼튼하게 살아왔고 내 몸 제어도 잘하는 편인데, 딱 하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몸인 건 걱정이 돼서
영양제 사느라 최근에 잘 안 하던 해외직구도 했다.
맨 정신인 게 초조해서 술에 기댈 때가 있다.
내 의지로 밤새 깨있을 수 있을 만큼 말똥말똥할 때,
정적이 감도는 내 잠자리가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싫을 때.
이 여름밤이 꼭 그렇다.
특히나 열기와 습도, 바깥의 어지러운 소음을 견뎌내야 잠들 수 있는 이 공간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은 아닌 듯하다.
자려고 애써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불을 켜놓고 침대 맡에 기대 밤 두 시에서 세 시를 향해갈 무렵,
문득 그때가 생각났다.
학교를 나와 나를 둘러싼 아무런 울타리도 없이 덩그러니 세상에 놓였을 때.
그때 참 글을 많이 썼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끝물에 접어들고 트위터로 넘어가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싸이월드에서는 블로그 형식으로 C-log라는 페이지를 제공했더랬다.
거기다 이런저런 글을 참 많이 썼고 시간은 늘 새벽 서너 시였다.
그 시간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고 그 시간엔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와 수다 떨듯이 글이 술술 써졌다.
그래서 잠깐 생겼다 히트 치지 못하고 사라진 C-log를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의 글이 아직 인터넷 어느 정보의 바다에 부유하고 있다면 꼭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다.
새로운 사회에 들어와 내가 그 속에 어울리기 위해 커뮤니티에 기웃댄다는 것이 아직도 영 마음이 안 간다.
목적이 있는 어울림이다 보니 인위적이기도 하고
단순히 귀찮기도 하고 그럴 시간에 일을 한 시간 더 하지, 하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고 주저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 이 좁은 사회에 속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매주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일을 하니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 게 늘 과제다.
그래서 그나마 가장 품이 덜 드는 공개시장(?) SNS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효과가 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핑계로 사람들과도 알아가고.
아침에 운동을 다니고, 동네에서 머리도 자르고, 중고시장 앱에서 과일도 사고,
또 어떻게든 내가 속한 곳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그래도 조금씩 이 동네 사람이 돼가는 걸 느낀다.
도민 소개로 새로운 사람을 알기도 하고, 그 새로운 사람은 내가 섭외했던 출연자들과 이미 아는 사이기도 한,
좁은 제주 사회를 경험하는 단계까지 왔다.
회사에서 준 상품권으로 대형마트에서 할인할 때 사온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다섯 모금,
영 잠들 것 같지 않아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작은 캔은 감질맛이 나 다 비운 후 큰 캔을 하나 더 땄다.
다 못 마시고 김 빠지게 둔 채 불 켜놓고 또 잠들겠지만.
생각나는 얼굴은 생각나는 대로 내버려 두자.
오늘의 곡,
듣고 있나요 - 케이시X조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