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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Aug 17. 2022

첫 P.T를 받고 내동댕이쳐진 썰

앞날의 고난이 스쿼트를 배울 때부터 예상되었다

2017년 1월 19일, 내 인생 첫 P.T에 서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뭔가를 많이 하지는 않았고 기본적인 몸풀기 정도만 했던 것 같다. 운동을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저질 체력에게는 그마저도 썩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시작 시간보다 약간 먼저 도착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 기다리는 동안 러닝머신에서 5분가량 몸풀기를 시키셨다. 그리고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내게 아픈 곳은 없는지 살피셨다. 내가 다리에 증상을 호소하자 그건 허리 때문일 수 있다는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내 평소 자세가 좋지 않아서일 수 있단다. 그러고는 매트에 누워 보라고 하셔서 누웠다. 선생님이 위에서 팔과 다리를 꾹꾹 누르고 다리에 알을 푸는 일을 하셨다. 처음 와서 매트에 수동적으로 누워있는 자세가 어쩐지 상당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웬 기구 같은 걸 운동에 사용할 거라고 보여주셨다. 기구의 용도를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마냥 다 신기해 보일 뿐이었다. 비스듬히 세워진 기구에 몸을 걸치고 허리랑 옆구리 운동을 몇 번 했다.


그다음에는 쌤이 "스쿼트"인가 하는 것을 할 줄 아냐고 물어보셨다. 그 말 자체가 처음 듣는 외국어처럼만 느껴져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쌤이 시범을 보이며 스쿼트 자세를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아무리 따라 하려고 해도 잘할 수가 없었다. 내가 쩔쩔매자 선생님은 괜찮다며 그게 원래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 묘하게 장난치는 투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쌤이 무척이나 답답하실 것 같아 괜히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앞날의 고난이 이때부터 예상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데드 리프트"인가 하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술까지 배웠는데 그건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쯤 되니까 내 다리가 계속 후덜거리기 시작했다. 뭘 하려고 할 때마다 다리가 계속 후들후들 떨렸다.


그러다 결국에는 다시 매트로 돌아가서 복부 운동으로 넘어갔다. 나는 내가 나름 복부 운동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몸에 힘을 려고 해도 힘이 나지를 않았고, 급기야 그냥 아무런 생각도 들지가 않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런 상태에 다다르자 마침내는 동작을 더 하지 못하고 매트 위에 아주 그냥 내동댕이 쳐진 모양새로 뻗어버렸다. 그때의 심정을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꽤나 절망적이었고... 솔직히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막 웃었는데, 그건 웃겨서 웃는다기보다는 민망하고 할 말이 없어서 웃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매트에 아주 내동댕이쳐진 채로 누워서 바라본 천장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쌤한테 민망한 마음에 내가 운동을 못 해서 그렇다고 막 항변을 했던 것 같다. 쌤이 그 말에 수긍하거나 놀릴 줄 알았는데, 뜻밖의 얘기를 하셨다. 나는 운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이제껏 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셨다. 나는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아닌 박지성 선수 이야기라고 하고 싶었지만, 딱히 그런 반론을 할 만큼 정신이 남아있지는 않았기에 그저 생각이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쌤은 더 나아가서 첫 수업은 이제껏 사용하지 않았던 몸의 다양한 근육들을 사용하고 몸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첫날의 대화가 잘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셨나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하셨다. 그런 말은 어쩐지 굉장히 감동적이고 뭉클한 소년 만화 엔딩에 볼 법한 대사 같았고 (참고로 나는 그런 말에 약하다) 나는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음 감동적이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지막으로 겨우 남은 내 이성적 판단이었고, 마음 깊이 느낄 감성까지는 힘이 들어서 남아 있지를 않았다. 그날 몸에서 혼처럼 뭔가가 쭉 빠져나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운동 끝나고 샤워도 겨우 했다.


쌤의 조언을 듣고도 운동을 좋아하게 되기란 나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운동 말고도 운동 가기를 좋아할 만한 다른 이유들이 생긴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좁은 인간관계 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운동을 하러 가는 것만으로도 할 일이 없는 잉여 신분에서는 잠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일정이 생겼다는 것 또한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소속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헤매면서도, 결국에는 다시 소속감이 있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모순적인 나는 운동은 별일 없는 한 계속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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