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제 연애 실패담을 밖으로 꺼내기로 결심했다
고양이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카페의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지겨울 정도로 실컷 바라보다가 아이패드의 빈 페이지에 눈을 돌렸다. 나의 과거 연애사, 그중에서도 외국인 남자 친구를 만난 경험에 대해서 책을 써보기로 마음을 굳힌 날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과연 나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쓸만한 경험이 충분히 있는지, 또 왜 이 책을 내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우선은 지금까지 만나본 외국인 남자 사람들의 이름과 그 사람들의 국적을 한 번 적어보았다. 독일 나이로 30살 즈음부터 35살까지 약 6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의 기억을 모두 더듬었다. 미국, 독일, 헝가리, 스위스, 이스라엘... 적어놓고 보니 제법 다양했다. 아무래도 나의 해외 거주 기간의 대부분이 독일이다 보니 독일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났고,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그 외의 다른 국적의 사람들도 대부분 독일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다. 리스트에는 사귀었던 사람들만 적지는 않았다. 썸을 탄 것까지 포함했다. 썸도 상대를 이성으로 만난 기간이고, 썸도 연애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썸이 없다면 연애가 시작도 되기 힘든 법.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썸에 대해서도 앞으로 할 말이 참 많다.
어쨌든 기억을 되짚어보며 하나둘씩 적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적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적고 보니 제법 많은 것 같아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글을 써봐도 될까? 글쎄. 넓고 넓은 인간 세상사의 다양한 사례들을 고려하자면 많다고 해봐야 '고작' 10이라는 숫자의 소수 사례에 불과하다. 게다가 내가 만난 사람들이 그 나라 출신의 남자들을 모두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왜냐면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사랑한 한 독일 남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일 남자라는 이미지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맥주보다는 와인을 좋아하며,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기는커녕 약속 시간을 정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 심지어 내 연애의 대부분은 짧게 타오르다 끝나버린 '실패'의 총집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브런치북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나의 실패가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대부분 내가 온라인에서 접한 국제 연애 이야기는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해서 꽁냥꽁냥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런 연애를 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도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비혼의 생각이 컸지만, 아이러니하게 이혼율이 높다는 독일에 와서 주위에서 잘 사는 커플들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의 연애는 순탄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평범한 연애를 시작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오픈 릴레이션십, Friends with benefit을 위한 상대를 찾는 사람들만 점점 많아질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누가 그대에게 사랑을 가르쳤나'라는 매거진을 통해 몇 번인가 연애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늘 전체 스토리의 일부만 적을 수 있었을 뿐, 온전한 이야기를 담아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면 그 순간에는 이야기 하나하나와 나의 감정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풀어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년간 무수히 반복되었던 만남과 이별은 나를 점점 불타오르는 사랑과 가슴 아픈 이별의 감정으로부터 무뎌지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작은 불씨만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이라면, 그동안의 이야기를 좀 더 덤덤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오해는 말아주시길. 나는 꽁냥꽁냥한 국제연애의 이야기/인스타툰을 보고 읽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팬이다. 그저 누군가 나처럼 국제 연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해외에 나와 연애를 하게 된다면, 이것만큼은 알고 시작하기를 바라는 '아는 언니'의 마음에서 시작했다.
당신의 마음은 조금 덜 아프기를 바라며.
당신은 조금 더 존중받기를 바라며.
당신은 조금 더 사랑받기를 바라며.
글: 노이
사진: Photo by Khamkéo Vilaysi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