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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16. 2024

사람 만나는 게 지치는 나,
비정상인가요?

눈치와 자의식 과잉에 대하여

 게다가 사실 나는 눈치는 오히려 없는 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추가로 발견했다! 

오늘 유튜브에서 홀린 듯 한 영상을 클릭했다. 제목을 보자마자 내 얘기다 싶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이 유튜버님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이 채널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건 오늘이 처음.)





'사람 만나는 게 지나치게 기빨리고 피곤하다면, 
자의식 과잉' - 상담심리사웃따 -






영상을 보기 전까지도 자의식 과잉이 뭔지 잘 몰랐지만, 최근 들어 사람 만나는 일이 피곤하다고 느끼는 일이 잦았던 터라 어떤 내용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런데 '자의식'이란 게 뭘까?



자의식이란,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




웃따님의 설명에 의하면, 자의식이란 특정 상황 속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내가 최고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나르시시스트와는 결이 다르다. 이 '자기 자신 의식'이 긍정적으로 갈 수도 있지만, 자책처럼 불건강한 방향으로 향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의식 과잉이란 뭘까? 


간단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좀 과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자의식 과잉이 전문적인 심리학 용어는 아니라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이렇게 말해도 좀 확실히 와닿지 않는다. 아래 예를 통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만났을 때 '이 다음에 무슨 대화 해야하지?', '지금 내 표정 이상하지 않나?' 계속 생각하고, 밥을 먹고 있다면 '지금 나 밥먹는 모습 이상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 내 말투, 대화, 행동, 표정을 스스로 계속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상당히 신경을 쓰기에 보여지는 내 모습에 신경을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보니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조심하는 편이라 어쩔 때는 겉으로 봐서야 성격 좋고 이야기 하기 좋은 상대로 보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사람을 만나고 오면 기가 빨려 거의 탈진하다시피 힘이 빠져버린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자의식은 필요하다. 내 행동과 말투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들과 행동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상처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자의식이 과하면 스스로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면 만나는대로 진이 빠지고, 그렇다고 안만나자니 내 인간 관계가 무너지는 것 같고 외로워서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악순환인거다. 



자의식 과잉은 겉으로 보면 '남'을 신경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국 '나'로 귀결된다고 영상에서는 설명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 이런 생각에는 '내 자신'이 주어도 아니고 목적어도 아니다. 정말 상대가 궁금한 것.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그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이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근거로서 궁금하다는 느낌이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니까 나를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나는 스스로가 이정도까지 자의식 과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이 위의 사례였다. '내가 순수하게 상대방을 궁금해 한 적이 있던가?', 정확히는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 정말 그 사람을 궁금해 한 적이 있던가?'라고 질문해야 맞을 것 같다. 물론 궁금해 하긴 한다. 소개팅했을 때 상대가 마음에 들면...? 근데 그럴 때 조차도 상대의 '진짜 모습'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이 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나"에게 잘해주는지, "나"에게 상처줄 사람인지'에 더 초점이 가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내 할 말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이건 가족도 인정!) 그런데 대화 주제라는 것은 늘 다양하고 모든 대화가 상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아니기 마련이다. 


내가 내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는 것에 가깝다. 아주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상대를 잘 알게 되거나 또는 상대적으로 짧게 알았어도 서로 깊이있는 정서적 교류를 한 경우는 깊은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저런 생각을 가진 적은 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적당히 알고 지내야 하는 사람들(학교의 친구들, 직장의 동료들)과의 스몰 토크가 아주 어렵다. 20대 때는 이걸 인지하지도 못하고, 그냥 적당히 대처하고 적당히 피했던 것 같다. 30대가 되어서는 인지를 하기 시작했다. 인지를 하고 나니 새로 사람을 만나고 사귈 때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게 싫다고 사람들을 안만날 수는 없고, 만날 땐 좋긴 한데 집에 오면 너덜너덜하다. 그만큼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에 더 깐깐해졌다. 아예 과제를 해야한다거나, 프로젝트를 하는 등 주제가 있으면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그 과제나 프로젝트 중에도 스몰토크를 나누는 시간이 되면 그냥 핸드폰을 보면서 듣는 척 하는 것 같다(요건 외국에 살아서 사람들 말을 다 100% 알아듣기 어려워서도 있는 듯 하다).




출처: 유튜브 채널 '상담심리사웃따'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그냥 내가 내향적이어서 그런가보다, 그냥 생긴대로 살아야겠다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나니 여기서 제시하는 대안을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대안에 마침 '비우기'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무릎 탁!) 


요즘 <해보고, 아님 말코> 12기에서 비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보니 틈만나면 '오늘은 무엇을 비울지 고민하는 나'. 그런데 '나를 비운다고?', 꽤나 흥미로웠고, 그렇게 이 글까지 쓰게 된 것이다.



영상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이다. 어디서(주로 명상, 불교)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데, 그게 여기서 적용될 줄은 몰랐다.




출처: 유튜브 채널 '심리상담사웃따'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걸까? 아래 예시를 보자.



예) 카페에서 상대를 만난 상황

상대방의 안부, 상대방의 일과, 상대방의 생각들에 대해 정중한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기

카페 음료의 맛, 카페의 음악, 인테리어, 그 순간의 공간 안에서 느끼는 오감에 집중

즉, 지금 맺고 있는 '관계', 지금 있는 '공간'에 녹아드는 것 (자기초월 <-> 자의식)

자기초월: 자기를 초월해서 주변과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느낌 (자의식보다는 자기초월 발달이 더 건강하다고 봄)

팁: 잘 보이려고 신경 쓰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서 더 불편해짐!            



눈치와 자의식은 다르다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글을 쓰고 또 그 과정에서 영상을 반복해서 보다보니 어쩌면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사실 자의식 과잉이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은 이미 무의식 단계에서 0.000001초 만에 지나가서 내가 인식조차 못하는 것 같고, 의식적 레벨에서 '저 사람은 날 ㅇㅇ하게 생각할거야...' 라는 생각은 많이 하는 것 같다. 




예시) 회사에 지각하는데 팀장이 멀리서 날 본 것을 발견

눈치 보기 - '아 팀장이 나 봤나? 안봤나? 본 것 같은데? 아 이걸로 꼬투리 잡고 나 이용해 먹는 거 아냐?' (이 정도에서 끝)



예시2) 회사에 지각함 (팀장이 날 본 상황이 아님!)

자의식 발현 - 팀장님이 날 본 것도 아닌데 이미 걱정 시작

'팀장님이 나 오늘 지각한 거 아시겠지...?' (날 못봤어도 눈치껏 다 알겠거니, 아니면 주위사람한테 물어 알겠거니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로 깜)
'하.. 이따 혼나겠다;' (팀장님이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이 확실한 게 아닌데 이미 걱정 모드)
'날 안좋게 볼거야...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찍히겠다...'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고 자책함)

(사례 출처: 바카누TV '눈치 보는 사람이 자존감 낮은 이유 (자책형 자의식 과잉))



위 사례는 '눈치 보기'와 '자의식'을 구분하기 위한 사례이지, 예시2처럼 생각했다고 해서 무조건 자의식 과잉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 정도의 자의식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왜냐면, 스스로 그렇게 느껴야 지각한 만큼 일을 더 열심히 한다던가, 조직에서 불성실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다른 노력들을 할테니 말이다. 핵심은 이게 과해지면 문제가 되는 것. (그런데 사실 과하다는 기준이 모호하긴 하다.)

나같은 경우는 저 사례가 정말 와닿았던 게 예시2번 같은 상황을 회사 다닐 때 정말 많이 겪었다. 팀장님이 내 지각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지각한 날은 이미 죄인처럼 하루종일 쭈굴쭈굴하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동료 직원들이 눈치껏 사내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틈새 휴식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팀장님에게 걸리는 것이 두려워서 늘 책상을 지킨 적이 더 많았다. 


오히려 자의식이 너무 과해서 눈치를 못 보는 유형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진짜 눈치를 '잘' 보는 사람들은 상사 눈치를 스윽 보다가 '이 때다!' 싶어 동료들과 커피 한 잔 하고 오거나, 맘 편한 동료와 담배 한 대 피고 올 수 있다. 근데 나는 그 눈치를 '못' 봐서, 어쩌다 큰맘 먹고 농땡이를 피우면 그게 상사에게 딱 걸린다. 


행여 좀 걸렸다 해도 '내가 평소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 한 번은 상사도 이해해주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미 상사에게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책을 심하게 했었다. '이제부터 상사가 날 농땡이 피우는 직원이라고 생각하겠지' 라며 더더욱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사실은 상사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고, 어쩌면 나를 신경조차 안썼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 이후 내가 더 열심히 일한 것도 어쩌면 나의 상사는 눈치 못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갑자기 몰려드는 수치스러움.






사실 이런 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봐야 알긴 하겠으나, 어쨌든 오늘 이 글쓰기, 생각 정리를 통해 하나는 확실히 잡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은밀하게 숨어서 엄청나게 남 시선을 의식해왔던 "살찐 나의 자의식"!

(과잉까지는 모르겠지만 선을 좀 넘은... 그래서 '살 찐 자의식'으로 이름지었다)



'잡았다 요놈!'





물론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눈치를 보며 산다. 근데 그래서 더 알아채기 어려웠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아야 하는 문화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나는 눈치가 아니라 좀 자의식 발현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사실 나는 눈치는 오히려 없는 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추가로 발견했다! 



회사 다닐 때 나는 진짜 남 눈치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왜 이리 눈치가 없냐'는 말을 들을 때 억울했는데, 이제보니 그 분이 옳았다. 



모든 심리적 치료는 나의 불편한 감정, 내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저 호기심에 클릭한 영상을 본 것만으로 여기까지 생각이 오진 않았을 것 같다. 'Empty my life' 비우기 프로젝트로 묶어서 여기까지 글을 쓰다보니 나도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하고 비우기 초기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자의식 살빼기는 이제 막 인지한 거라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잘 비워나가 보자. 그래서 올 해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일도, 조금은 더 편해지기를 바래본다.







추신. 자의식 과잉이 뭔지 검색하다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기 할말만 계속 하는 사람'을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 정의들을 찾아보다보니 그건 좀 잘못 이용되는 케이스 같다. 굳이 따지자면 그건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운 것이라고.










Cover image: Unsplash Toni Kor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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