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09. 2024

미니멀리즘 이후 7년, 옷장은 그대로일까?

Empty my life Ep.1

#해보고아님말코 #emptymylife #비우기프로젝트 #두번째일지 #옷장비우기



7년 전, 한국에서 독일로 가기로 결정이 됐을 무렵, 나는 큰 맘 먹고 내 물건들을 정리했었다. 그 시기에는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행처럼 번졌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단순히 유행이라고 해서 쉽게 덤빌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러다 마침 먼 타국 땅으로 떠나야 할 일이 생겼으니, 이 때다 싶었다. ‘내 물건 00개 미만으로 줄이기’와 같은 챌린지를 하면서 물건을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냈더랬다.


그 때 써놓은 글이 혹시 없나 봤더니 17년에 미니멀리즘에 대해 쓴 글이 있었다.

https://brunch.co.kr/@noey/46



태어나서 그렇게 물건을 적게 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혈혈단신(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독일에 오고 나서 한동안은 옷가짓수를 잘 지켰지만,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조금씩 옷은 점점 늘어갔다. 매년 ’한 번 옷 정리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올 해 드디어 말코 작가님의  <해보고, 아님 말코> 에 참여하면서 비우기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심을 해버린 것이다. (온라인으로 이어진 연대감만으로도 이렇게 동기부여를 받게 되다니 정말 모임이란 신기하다)


’그런데… 결국 다시 옷장이 꽉 찼으니 도로 아미타불 된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미니멀리즘 그까이꺼, 바람 같은 거였지, 라고. 나도 정리하기 전 꽉찬 옷장을 보면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당시에 배웠고, 또 지키려고 했던 정리법의 규칙 중 하나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 비슷하거나 같은 용도의 물건을 버리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인데, 그것을 지키지 못했기에 옷의 가짓수가 늘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또 옷장이 차버렸구나…‘ 반성도 했다.


그런데 막상 팔을 걷어 붙이고 옷장을 정리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그 한 번의 ’큰 비우기‘ 이후로 제법 많이 달라져 있었다.




1. 옷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정리를 하는데 사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어떻게‘ 정리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7년 전에 처음 정리할 때는 영상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보고 그랬다. 가장 좋아했던 곤도 마리에의 여러가지 규칙을 적용했었다. 이번에는 안 찾아보고도 나름 나만의 방식으로 나누어 바로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1분 안에 물건 분류 기준을 정해 착착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2. 설레는 옷만 남기는 느낌을 좀 더 알 것 같다.

옷을 험하게 입는 편은 아니기 때문인지 낡은 옷보다는 멀쩡한 옷들이 많았다. 저렴하게 샀던 옷들도 십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멀쩡한 옷들이 많다. 그래서 보내기가 좀 어려웠다. 다시 한 번 책을 꺼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읽었다.

’만졌을 때 설레는가‘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 몇 년 전, 독일에서 중고로 1유로에 구입했다



아무리 멀쩡한 옷이어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보내주기로 한다. 7년 전 처음 이 작업을 할 때는 그 느낌이 뭔지 잘 몰랐는데, 이젠 좀 더 알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옷을 하나하나 만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만지면 이 옷을 입고 외출했을 때, 여행했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옷을 ‘필요에 의해서만’ 입어왔는지 아니면 입었을 때 제 기능도 하고 기분도 좋아지는 옷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는 구매를 할 때 부터 진짜 설레임을 느낄 수 있도록 옷설렘 감지 능력(?)을 더 키우고 싶다.





3. 옷은 버리기보다 나눠주거나 중고로 파는 것이 당연해졌다.

아주 어릴 땐 낡은 옷을 그저 버리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위에 나눠주거나 중고로 싸게 판다. 헌옷 수거함이 독일에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는 것은 ‘무료 나눔’이다. 독일에는 사람들이 쓸만한 물건이지만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집 근처에 박스에 담아두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필요하면 가져가는 문화가 있다. 돈을 내거나 물물교환이 아니라 그냥 나눔이다. 당근 마켓의 무료 나눔 같은 거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당근 마켓처럼 사진찍고 올리고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집 앞에 내다놓으면 되서 개인적으로는 이게 너무 좋다. 오늘 아침에 내다놓고 저녁에 봤더니 모든 물품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 상 내놓는다고 다 가져가는 게 아니라 남겨지는 물건들도 있는데, 내가 내놨던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싹 비워져 있는 걸 보니 이게 왜이리 뿌듯한지 모른다.



Zu verschenken은 ‘나눔’이라는 뜻이다. 우리 이웃들은 ‘나눔 공간’으로 쓰는 스팟이 따로 있다. 여름, 겨울옷, 에코백, 머리띠, 쿠션 등을 내놓았다.



그 외에 일상 속에서 생긴 변화

- 가끔 고삐가 풀린 것처럼 재정 생각 못하고 예뻐보이면 일단 구매하던 습관이 거의 사라졌다.  

- 싸다고 ‘일단’ 사던 습관도 많이 좋아졌다.

- ’옷장에 입을 옷이 없네‘ 하던 말버릇이 사라졌다. (좋아하는 옷만 남겨놓으니 입을 옷이 항상 있다)

- 스타일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옷만 남겨놓으니 매칭이 더 쉬워졌다)



좌: 자주 입는 옷들 / 우: 판매할 옷들은 예쁘게 걸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긴 옷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에 나온 옷들 말고도 오른쪽에 있는 옆칸과 복도의 외투 옷장에 걸린 옷들이 더 있긴 하다. 옆칸에는 후드집업이나, 샤워 가운, 길이가 좀 더 긴 점프수트 등이 사진보다는 좀 더 적게 2/3 정도 걸려있다. 복도에 있는 외투 전용 옷장에는 패딩 1, 겨울 코트 2(다른 디자인), 초겨울 외투 1, 가을 코드/재킷 2 등이 더 있다. 사진 아래의 서랍에는 세탁이 완료된 바지류가 5-6개 정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보기엔 여전히 많을 수도 있겠지만, 7년 전까지 맥시멀리즘으로 살던 예전의 내 옷장에 비하면 정말 정말 많이 간소화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옷장 정리하는 시간이 진짜 대폭 줄었다. 전에는 정리하는거 마음 먹는 시간부터 시작해서 진짜 최소 하루, 길게는 일주일씩도 걸리곤 했는데 (펼쳐놓으면 그냥 대환장 파티라 정리가 안되서 며칠을 질질 끌고는 했다) 이번에는 일요일에 딱 마음 먹고, 점심 먹고 오후에 느즈막하게 시작하고 유튜브 들으면서 설렁설렁했는데도 3-4시간 안에 끝난 것 같다 (중간 중간 휴식 시간 포함). 다음에는 옷정리가 더 짧게 끝날 수 있도록 앞으로는 구매에 더 신중을 기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미니멀리즘 그 이후 7년이 지난 내 옷장은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처음의 가짓수를 지키지 못했으니 실패일까?





ps.나름의 미니멀리즘을 유지하려 애써오면서 느꼈던 의외였던 장점은 신중하게 구매하게 되는 만큼 진짜 마음에 드는 걸 구매했을 때 기쁨이 전보다 두 배, 세 배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어떤 말로 위로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