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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ec 23. 2024

새 관찰이 취미가 된다면

이토록 무해하고 귀여운 탐조

겨울철에 느끼는 작은 재미가 있다면 단연코 개천에서 헤엄치는 오리 보기를 꼽는다. 고개를 물속에 푹 박고 꼬리를 떨며 바둥바둥하더니 먹이를 먹는다.

통통한 몸매와 귀여운 몸짓을 보면 현실에서의 잡념이 없어지는 것도 같다. 오리라고 다 같은 오리가 아니라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부리 끝이 노란 흰뺨검둥오리, 초록빛 깃털이 아름다운 청둥오리 등 서로 다르게 생긴 오리들이 같이 무리를 지어 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세계가 자뭇 궁금해진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새 사진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며 '탐조'의 세계를 궁금해했다. 탐조란 말 그대로 자연에 있는 새를 관찰하는 행위다. 영어로는 bird watching이라고 한다.


18세기부터 영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는 탐조가 알려진 지는 20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적 새’하면 TV프로그램에서 본 윤무부 새 박사 선생님만 기억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집 가까운 수목원에서 탐조활동을 한다기에 곧장 신청했다. '서울의 새'라는 시민모임이 여는 활동에 참가했는데, 이 서울의 새는 서울 곳곳에 있는 새를 관찰하는 순수한 탐조 클럽이다.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그냥 따뜻하게 옷만 챙겨 입고 나갔다.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모임 장소에 서 있었더니 그래도 다들 환영해 주셨다. 인생 첫 탐조라는 내 자기소개 멘트에 더 반갑게 맞아주셨다. 다행히 베테랑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본인의 쌍안경도 빌려주셨다.

이미 탐조 경험이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저팔계의 바주카포처럼 길고 큰 원통형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목에는 쌍안경을 걸었다. "저기 밀화부리가 있어요! " "오! 노란턱멧새도 보이네요! " "나무 끝에 박새가 매달려 있어요!" 사람들은 정말 생전 처음 듣는 새 이름을 턱턱 말했다. 암컷과 수컷을 능숙하게 구분해 내는가 하면, 새소리를 듣고 어떤 새 인지 맞추는 선생님도 있었다.

어디에 어떤 새가 있다고 하면 다들 그쪽을 향해 시야를 돌리고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나는 쌍안경을 처음 써보는 거라서 아무리 조절해도 초점은 맞추긴 하지만 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시야가 좁아져서 여기가 어딘지 위치감각도 상실하는 것 같았다. "먼저 새의 위치를 맨눈으로 확인한 다음, 그 시야를 고정한 채로 쌍안경을 보세요." 아하. 그렇게 설명해 주시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쌍안경으로 새를 관찰하는 게 익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졌다. 저만치 작게만 보던 새들이 눈앞에 동그란 틀 안에 확대되어 생생하게 보인다. 얇디얇은 발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거나 열매처럼 여러 마리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까치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야무지게 뜯어먹더니 맛이 없으면 퉤! 하고 뱉기도 했다. 와. 너무나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흔하디 흔하던 참새도 다르게 보였다. 저기에 뭐가 어떤 새가 있다며 가르쳐줘도 번번이 내가 그 위치를 놓쳐 새를 보지 못하면 너무 아쉬웠다.

이 수목원에는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여기에 원래 새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이날은 물이 꽝꽝 얼어서 새들이 앉아있지 않는다 했다. 그 이유인즉슨, 천적에게 바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물이 얼지 않은 곳에 가 있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게 낮이 되어 햇살이 드리우니 물이 녹았고, 그 자리에 새들이 앉았다. 어떤 새는 헤엄을 치는가 하면 어떤 새는 빙판 위를 살살 걷다가 살짝 녹은 얼음 사이로 먹이를 쪼아 먹었다.

휘리리리 ! 휘리리리! 오목눈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새매가 나타났어요. 원을 그리며 올라가고 있네요. 매가 나타났다고 알려주기 위해 오목눈이가 주변 새들에게 경고음을 보낸 것 같아요." 어떻게 새들의 행동까지 알 수가 있지? 끝도 없이 탐구할 수 있는 세계이구나, 엄청 무궁무진한 세계이구나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탐조를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전문 여행사도 있단다. 어떤 사람은 새 도감을 세계 곳곳에서 사 모으는 게 취미라고도 한다. 새를 보기 위해 국내의 어딘가로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무해하고 순수한 취미활동이 어디 있을까.  3시간 정도를 돌아다니고 나면 리뷰하는 시간을 가진다. 어떤 새를 몇 마리 보았는지 정리한다. 내가 보지 못한 새도 많았을뿐더러, 그 개체 수를 세어보았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밥을 먹고 우리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본 새 중에서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새 하나를 고르고, 각자 가져온 도감을 펼쳐 그 새에 대해 읽고 정보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도감이 많지 않을뿐더러, 도감마다 살짝 설명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우는지, 어떤 습성이 있는지, 어떤 계절에 어디에서 잘 보이는지 상세히 나누다 보면 그 새를 정말 '깊이' 알게 되는 것만 같았다.


초보인 나에게 참가자분들은 이것저것 더 알려주었다. 쌍안경은 어떤 브랜드의 어떤 가격대, 어떤 사양의 것으로 사야 하는지 본인의 모델을 보여주거나 손수 핸드폰으로 검색해 가며 알려줬다. 누가 쌍안경 사준다고 하면 이게 최고라며 가장 고가 라인, 400만 원을 훌쩍 넘긴 모델도 알려주었다. 새 하나 보는데 이렇게까지 장비를 갖추기도 하다니 놀랄 따름이었다.


각자 어떻게 탐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물어보았다. 누군 나처럼 강가의 오리를 보고, 누구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누구는 딸이 새를 좋아해 같이 즐기면서 시작했다고 했다. 공통점은 어떤 객체에 대한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싹이 트였고 그저 그 행동을 꾸준히 반복했다는 점이었다. 무언가를 5년, 아니 1년 넘게 진득하게 좋아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심 이 무해한 취미가 나에게도 평생 취미가 되길 바랐다.

참가자들은 하나 같이 첫 탐조를 겨울에 경험한 게 탁월한 선택이라 했다. 여름이면 덥기도 덥고 잎이 우거져 새를 찾기가 쉽지 않단다. 빈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 훨씬 잘 보이고, 철새도 많이 와서 특별하다고 했다. 탐조의 매력을 알려면 사계절 내내 꾸준히 다녀보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계절마다, 지역마다 만날 수 있는 새가 다르며, 번식기나 더운 때에 깃털 색이 바뀌는 새도 있다고 했다.

탐조는 단순히 새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베테랑 선생님은 지난달에 왔을 때보다 폭설 때문에 나무가 쓰러졌다며 단박에 달라진 서식지의 모습을 감지했다. 같은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다 보니 새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것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새만금 지역 갯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수라>가 생각났다. 새만금 일대에 개발되지 않은 마지막 갯벌, 수라 갯벌에는 도요새, 검은 머리물떼새 등 멸종위기종이 찾아온다. 하지만 점차 개체수가 줄고 있으며 개발이 계속된다면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 그때 새만금 생태를 지키는 시민연합 단장님인 오동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본 죄." 새들의 군무를 보고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죄책감이 곧 책임감이 되었으며, 그 새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여전히 수라 갯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그 말이 이제 무엇인지 정확히 알 것 같다. 아름다움을 한번 본 이상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탐조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가끔 가다 보이는 새, 아 새소리 참 좋다~ 하고 계속 지나쳤을 거다.

근데 이제는 지구상에 인간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걸 너무나 명확하게,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지는 걸 대충은 알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더 보기 위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조금 거창한가 싶긴 하지만 이렇게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기. 더 많은 새들이 멸종하기 전에 기록할 수 있다면 기록하고,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해보기.

이제 탐조 딱 한 번 해놓고 너무 거한 다짐을 하나 싶지만, 적어도 오늘 내가 느꼈던 감동과 마음은 진심이었다. 너무 행복했다. 돈의 논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순수한 자연 세계에서 흠뻑 빠진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그저 생태계의 일원, 지구의 일원으로서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열심히 바라본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 순수한 생명체를, 이 순수한 마음을 두고두고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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