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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르다 Apr 13. 2024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에게 미안해.

1990년에 이른둥이 쌍둥이를 독박육아로 키운 엄마에 대하여.



90년 1월 12일.

춥고 추웠을 그 날,


나와 언니는 일 분 차이로 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엄마 자궁 안에서 10달을 채우지 못하고 8개월 차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엄마가 임신 당시 매우 심각한 임신중독증 때문에 산모 뿐 아니라 태아 둘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대구 파티마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엄마가 죽을 수 있는데, 아기는 우리가 최대한 살려보겠다. 분만 도중 혹시 죽더라고 병원측 책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시고 분만 들어가시면 된다"고 했고 크리스쳔인 엄마는 회개 기도를 다 하고 죽을 각오(?)를 마친 뒤 분만실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때 엄마 나이가 스물 여섯, 정말 어리고 젊은 나이다.


나는 서른 다섯에 첫 출산을 했다. 난 대학 졸업도 전에 스물 넷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사와 한 학기 남은 학사일정을 회사와 병행하며 맞출 수 없어 스물 여섯에 여자치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스위스, 프랑스로 꽤 길게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모아둔 돈을 유럽여행에 쏟아 부으며 오로지 나를 위한 인생을 즐기고 있었던 스물 여섯, 그 나이에 엄마는 죽을 각오를 하고 뱃 속 쌍둥이를 할 수 있는 데까지 품다가 8개월차에 이른둥이 출산을 하셨던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무리 회개기도를 하고 천국 갈 준비 다 하고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었을까. 인간은 모두 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임신중독증으로 임신 전 4*kg에서 80kg까지 부으셨다는 엄마. 거의 막달까지 입덧이 심하셔서 귤이나 사과 등 과일만 드시면서 버티셨다는데, 디클렉틴이나 디너지아와 같은 입덧약도 없던 시절인데 임신 기간 내내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엄마도, 쌍둥이 언니인 써니도 1분 차이로 동생이 된 나도 살리셨다.

물론 나는 1.8kg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한 달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일찍 태어난 초미숙아치고 어렸을 땐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병원 입원도 대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해봤으니, 엄마가 날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게 분명하다. 감사하다. 


우리 아기도 작게 태어났다.

엄마는 내가 숨쉬는 게 잘 안 보여서 얘가 죽은 게 아닌가 몇 번 겁이 날 정도로 체구가 작은 나를 키우는 게 초반엔 무섭기도 하셨단다. 그 말이 뭔지 나도 조금은 알겠다. 사랑(딸 이름)이가 응애~ 하면서 울다가 얼굴이 한없이 빨개지면 혹시 숨을 못 쉬어서 위험하진 않을까? 청색증이 오면 안 된다던데 얼마나 얼굴이 까매지면 청색증이 오는 걸까? 모든 게 처음인 엄마는 혹여 무지함으로 인해 아기가 위험해질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산후조리원도, 산후도우미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도 없던 그 시절.

쌍둥이를 홀로 키우며 몸도 마음도 지친 그 시절을 오랜 기간 보냈을 엄마에게 왠지 한없이 미안해지는 요즘이다. 호르몬 때문인지는 몰라도 엄마 생각만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결혼하고 엄마한테 거금의 코트를 재작년 겨울 사드린 적이 있는데, 남편이 기꺼이 현금을 통크게 내줘서 나도 사본 적 없는 금액의 옷을 선물해드린 적이 있다. 엄마는 그 옷을 생각보다 자주 입진 않으시지만 그래도 얼마나 뿌듯하고 좋았던지, 백화점에서 가격 택 보지 않고 오롯이 디자인만 보고 고른 엄마의 첫 옷이 아닐까 싶어 지금도 생각하면 울 엄마가 짠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옷을 예쁘게 꾸미고 입고 다니는 걸 매우 좋아하시던 분이셨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그렇게 멋쟁이처럼 다녔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경산시장 초입에 있던 '꼼빠니아'에 엄마는 유치원생인 우리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방문하셔서 옷도 구경하고, 걸쳐보고, 사고 오셨다. 물론 교회에 친한 집사님이 하신 가게이긴 했다. 엄마를 닮아설까? 옷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철없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가 얼마나 아끼고 사셨는지 체감이 되어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도 여잔데, 우리 엄마는 거울공주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거울도 자주 보고, 예쁘게 옷 입는 걸 좋아하던 천상여자였다. 


그런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거의 내려놓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30년 넘게 살아 온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내 엄마. 이은희 씨에게 잘 하는 효녀가 되어야지 다짐하는 어제와 오늘이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그런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물질로,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는 딸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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