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 승인국들이 늘어나면서 내년부터는 코로나19의 공포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백신을 누구에게, 얼마나 접종할 것인지는 논란거리이고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되지 않았다. 제약사들의 개발 경쟁, 각국의 물량확보 경쟁 속에 정치 갈등이 벌어지는가 하면 독일처럼 ‘윤리 문제’를 검토하는 나라들도 있다.
‘유럽 백신’ 견제하는 미국
캐나다 보건부는 9일(현지시간)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사용을 승인했다. 영국과 바레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다. 캐나다 정부는 화이자와 2000만회 접중분 백신 구매를 계약했고, 올해 안에 약 25만회분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미국도 하루이틀 사이에 화이자 백신의 긴급사용승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 보건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포드대가 개발한 백신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승인 절차를 미루고 있다. 백악관이 주도한 백신 개발 프로그램인 ‘워프스피드 작전’으로 아스트라제네카 측에 연구개발 자금도 지원하고 3억회 접종분 주문까지 했는데, 화이자나 모더나의 mRNA 백신보다 가격이 싸고 저장과 보관도 쉬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승인을 늦춘 것이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미국 기업이고 아스트라제네카는 유럽 회사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임상 초반의 부작용 논란에 이어 미 식품의약국(FDA)이라는 장애물을 만났다”며 “미국 미디어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화이자, 모더나 백신과 비교하며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영국 임상에서 90% 예방효과를 보였지만 55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고령자들의 접종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들과 캐나다, 인도 등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곧 승인할 예정이다.
미국은 백신 물량확보에서는 앞서고 있지만 주별로 접종이 시작되면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용량을 접종할 것인지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공영라디오방송(NPR)은 특히 모더나 백신의 경우 얼마나 생산돼 언제 어떻게 배분될지 미지수여서 접종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드록 있다고 보도했다.
돈 문제도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보건장관 레이철 르바인은 이 방송에서 “각 주에 백신을 배포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책정한 예산은 3억4000만달러뿐”이라며 주마다 접종 비용을 확보하느라 애먹을 것으로 전망했다. 백신 기대감 속에서도 미국의 코로나19 하루 사망자는 9일 3000명이 넘어 최다를 기록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누적 사망자는 30만명에 육박한다.
‘나치 악몽’ 독일, “윤리위 검토”
독일도 이날 하루 사망자가 590명에 이르렀다. 내년 1월 10일까지 전국을 사실상 봉쇄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접촉을 줄이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프랑스(232만명), 이탈리아·영국·스페인(각기 170만명대)보다는 적지만 독일의 누적 감염자는 이미 120만명이 넘고 사망자도 2만명을 웃돈다. 유럽연합(EU)은 이달 29일 화이자 백신 승인을 결정할 계획이며 메르켈 총리는 “내년이 시작되고 며칠 안에”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에는 “승인이 나오면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7000만회분을 내년 1분기에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을 함께 개발한 바이오엔테크가 독일 회사임에도 영국이나 캐나다, 미국 등에 비하면 독일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AFP는 ‘나치의 악몽’ 탓이라고 지적했다. ‘누구에게 먼저 접종할 것인가’가 나치 시절의 우생학적 질문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윤리학자와 철학자, 법학자 등 21명으로 구성된 정부 윤리위원회에 이 문제를 넘기고 논의를 지시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극우파들은 메르켈 정부의 봉쇄와 접종 계획을 “코로나 독재”라며 비난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중국 국영 제약회사 시노팜의 백신을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인도네시아는 또 다른 중국 회사인 시노백의 ‘코로나백’ 백신 120만회분을 지난 7일 받아놓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당국 승인 뒤 내년 초부터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며,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 섬이 첫 집중 접종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노백은 발리가 “내년 초부터는 (코로나19 없는) 그린존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브라질 ‘중국 백신’ 갈등, 러시아 “술 마시지 마”
반면 브라질에서는 중국 백신을 놓고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갈등이 벌어졌다. 연방정부는 내년 2월말부터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상파울루주는 한달 앞선 1월 25일을 개시일로 잡았다. 상파울루가 접종하겠다는 것은 시노백 백신으로, 아직 연방 보건규제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2022년 대선 출마를 노리는 후앙 도리아 상파울루 주지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번번이 대립해온 인물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하며 중국 때리기에 열중해왔고, 중국 백신에 대해서도 “못 믿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브라질의 누적감염자는 670만명에 이르며 사망자는 약 18만명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이미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은 일부에서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화이자는 임상시험에서 알러지 유경험자를 제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임상시험에서도 안면 신경마비 증상을 보인 사람이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세계 최초 백신승인’을 주장하는 러시아에서는 ‘음주 경계령’이 나왔다. 연방정부 보건의료 감독기구 총책임자인 안나 포포바 박사는 8일 국영 라디오방송에 나와 “백신을 맞고 2주 동안은 술을 마시지 말라”며 접종 이후 6주 동안은 면역반응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 백신 개발자 알렉산드르 긴츠부르크는 트위터에 “샴페인 한 모금은 괜찮다”며 포포바 박사의 경고가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AFP는 전했다.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닉V’ 백신은 7일 극동 주둔군에게 배포됐고 의료진에게도 공급되기 시작했다. 11일부터는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접종에 들어간다.